관리 메뉴

www.kinocine.com 박재환 영화이야기 (페이지 리뉴얼 중)

썸머 타임 (박재호 감독, 김지현 류수영, 2001) 본문

AV ※ 19금영화

썸머 타임 (박재호 감독, 김지현 류수영, 2001)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2.15 22:36

[썸머 타임] 김지현의 로망 포르노

이 스틸만 보면 무슨 문예물...


[리뷰 by 박재환 2001/5/16]   <썸머 타임>은 그 태생부터 불순한 영화였다. 아무리 '고품격'이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홍보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룰라'의 섹시스타 김지현을 적당히 벗겨서 눈요기 감의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리고, 영화 제작 기간에 조금씩 공개된 스틸 컷들을 통해 '김지현의 섹시춤', '김지현의 놀라운 변신' 같은 판에 박힌 호기심을 잔뜩 키워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홍보회사는 기막힌 인터넷 홍보전술까지 펼쳤다. 온갖 '18禁' 이미지로 도배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고서는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되었다는 선정적인 보도자료까지 내놓았다. 기자시사회 때 배포된 보도자료에 포함된 영화스틸 컷 엽서 아홉 장 가운데 여덟 장이 김지현의 섹스 씬이다. 그렇게, 분홍빛 소문의 <썸머 타임>이 공개된 것이다. 

  영화는 예상했던 것, 혹은 기대했던 것 그대로, 김지현과 출연배우를 마구 발가벗겨 놓고, <미인>과 <청춘>이 돌파한 영상 한계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 영화 스토리의 출발점이자 근원인 훔쳐보기(peep-show)에서 시작하여 .............. 별걸 다 보여준다.

  자. 이 정도면 이 영화의 사전 홍보효과만큼이나 구미당기는 감상의 첫 문단이 아닌가? 그럼, 이 영화는 순전히 욕정 해소용 영화인가? 만약 그렇게만 본다면 제작자나 감독이 무척 나쁜 놈이고, 영화판에 뛰어든 배우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이 영화는 적어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보다는 낫고 재미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제제 다카하사나 와카마츠 코지 같은 일본 감독이 만들던 '로망 포르노'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알다시피 제작자의 눈치를 봐가며 틈틈이 볼거리를 '야한 장면'을 집어넣고, 한정된 시나리오 속에서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발버둥치는 일본의 불쌍한 영화작가들이 하였던 것처럼 박재호 감독은 오로지' 훔쳐보기'와 '올라타기' 속에서 낯간지럽지만 그런 대로 볼만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영화가 시작되고 곧바로 들려오는 라디오 방송에 의해 짐작할 수 있다. 라디오에서는 분명 어용-관제 시대의 조작된 방송 멘트인, 그러나 그 당시엔 그러한 것의 진위여부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않을 내용이 계속 된다. "광주폭동의 주동자가 잡혔으며.... 우리 군의 희생적인.... " 공간적 배경은 '목포식당'이라는 가게 상호만이 있을 뿐, 그들의 어투로 보아 결코 전라도 지역이 아닌 정체불명의 지역의 빈민가를 보게 된다. 이 곳에 한 젊은이가 흘러 들어온다. 그 학생은 2층 단칸방에 숨어들고 이 영화의 폐쇄적 공간 속의 극단적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이 젊은이는 곧 아래층을 훔쳐볼 수 있는 바닥의 구멍을 얻게 된다. 물론, 그 구멍의 모양은 묘하게도 여성의 생식기를 담았고 청년은 밤이고 낮이고 아래층의 여자와, 그 여자의 남편과, 그 부부의 관계를 훔쳐보게 된다. 욕정은 부풀어 오르고, 어느 날 청년은 아래층에 스며든다. 그리고, 그 여자와 위태로운 섹스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 여자의 남편은 경찰에서 '오직'으로 해직된 사람. 야간 경비원으로 영화에서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나서 젊은 아내와 섹스를 나누고는 또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 틈에 2층의 젊은이는 아내로 내려와서 그 아내와 또 섹스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불안정한 동거, 혹은 남녀 관계는 조금씩 파국으로 다가가고 시대의 상처를 느끼게 할 만큼 충격적으로 끝나게 된다.

  물론, 이야기는 전형적인 로망 포르노 스타일이다. 하지만, 몇 가지 섬뜩한 주제를 교묘하게도 숨기고 있다. 몇 안 되는 한정된 출연자들은 모두 한 시절 억압받던 민초의 전형성을 띈다. 특히 목공소의 사람들과 미싱 여공들의 존재는 이 영화를 적어도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사회적 시각에 맞춘다. 특히, 반쯤 정신장애 증세를 보이는 존재는 이 불안정한 시대의 대변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허술한 변소의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아줌마의 용변을 훔쳐보는 존재가 있고, 그러한 치한에 대한 대접과 (여기서 표현되는 '광주사태'와 같은) 국가를 전복하려는 불순한 의도의 사람이 동급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전혀 뜻밖의 해후이며 놀라운 해석인 것이다. 해직된 경찰은 자신이 감시하던 민주인사의 여고생 딸을 강간하고 데리고 살며 방안에 가둬둔다. 시위의 주동인물도 아닌 민주투사는 이곳에 몰래 와서는 그 여자를 겁탈한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는 그 사람이 남편인 줄 알았지만, 두 번째는 이 젊은 남자와 알면서 섹스를 한다. 이들 관계들 속에서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모두들 절박한 현실에 내몰렸고, 그러한 불안한 현실을 타파하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 받으려는 듯이 섹스에 팀닉하게 된다. 특히, 조금 전 섹스를 나눈 젊은이는 침대 밑으로 숨어 들어가고 그 침대 위에서는 또다시 방황하는 여자와 세상을 증오하는 남편이 섹스를 나누는 부조리한 장면에서는 이 위험한 존재들의 끝을 '살짝' 훔쳐볼 수도 있을 정도이다.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는 치한과 부부의 섹스를 훔쳐보는 운동권, 그리고 어디선가 구해온 권총을 숨겨놓고 사는 경비원, 남편 같은 사람을 두고 치한 같은 남자와 순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여자.. 단순한 인물들이 펼치는 복잡한 욕망의 갈등구조는 당연히 파멸이다. <우나기>의 첫 장면처럼 아내의 부정에 대한 남편의 분노로 모든 존재가 허망하게 사라지는 결말은, 이 영화의 덧없는 '포르노그래피 이미지'에 '시대적' 무게감을 얹어준다. (박재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