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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力拔山氣蓋世라도 어찌하리오.... 본문

중국영화리뷰

[패왕별희] 力拔山氣蓋世라도 어찌하리오....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2.15 12:52


[박재환 2003/4/14]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는 깐느영화제에서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와 함께 황금종려상을 공동수상했고,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외국어작품상 후보에 오르기까지한 '국제적으로' 꽤 유명한 영화이다. 물론, 장국영의 사후 장국영 팬들이 가장 '장국영의 숨결을 넘길 수 있는 작품'으로 꼽은 영화이기도 하고 말이다.
 
  <<패왕별희>>는 홍콩의 베스트셀러작가 이벽화(李碧華)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벽화는 <인지구>, <청사>, <진용>, <반금련 전세금생> 등과 같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운명과 사랑의 드라마를 즐겨 소설로 내놓은 사람이다. <패왕별희> 또한 그러한 역사의 소용돌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파트너와의 사랑의 슬픔을 그린 것이다. 원래 '패왕별희'라 함은 진시황 사후 또다시 갈갈이 찢길 중국을 두고 대격돌을 벌였던 한나라 유방과 초패왕 항우의 이야기에서 연유한다. 유방은 결국 항우를 무찌르고 중국을 또다시 통일한다. 그게 바로 '漢'제국이다.

  (중국문화사나 예술사, 희곡사를 잠깐 들여다보면 베이징오페라라 일컫는 경극의 역사가 그다지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그 유사 퍼포먼스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수도 북경에서 융성한 경극은 당시 고관대작의 즐거운 볼거리였고 일반 서민에게도 환상을 안겨주는 놀이문화였다.)



  영화는 1924년 겨울, (이미 황제의 지배는 무너지고 겉으로는 민주공화정이라는 분장을 하였지만, 실속은 외세에 의해, 군벌에 의해 갈갈이 찢어진 중국의) 북경을 배경으로하여 펼쳐진다. 찬바람이 불던 어느날 기녀의 어린 꼬마애가 경극단에 넘겨진다. 이 '여자애'같이 생긴 꼬마애의 이름은 '샤오뚜오즈(小豆子-콩돌이--;)'. 그 콩돌이를 친형처럼, 오빠처럼 돌봐주는 경극단 사형은 샤오셔토우(小石頭-돌대가리 --;). 경극단 아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격한 관 사부의 지도 아래 내일의 '경극스타'가 되기 위해 하드 트레이닝을 한다. 이 꼬마들의 스파르타식 훈련은 비인간적일 수 밖에 없다. 어느날 몰래 훔쳐본 경극의 '우희'를 보며, 한 녀석이 "흑흑.. 저렇게 되기 위해 얼마나 얻어맞았을까.." 라며 흐느낀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뒤, '돌대가리'는 '단샤오루로우(段小樓)'로, '콩돌이'는 '청디에이'(程蝶依)'라는 경극의 수퍼스타로 성장한다. (중국어 이름을 '우리식으로' 부드럽게 읽다보니 장국영은 '데이'로 장풍의는 '살로'라는 국적불명의 영어이름이 되고 말았다!)

  샤오로우는 '초패왕 항우'로, 디에이는 '우희'로 경극 <패왕별희>의 최고의 스타가 된다. 물론, 당시 경극 배우들의 지위는 오늘날 엔터테이너와는 다르다. 17세기 모짜르트같은 광대 - 딴따라이다. 그들은 공연이 끝나면 돈많은 고관대작에게 불려가 '기쁨조'역할까지 해줘야 한다. 여흥을 돋궈줄 뿐만 아니라 호색한에게 몸까지 바쳐야한다. (경극은 남자만이 할 수 있다. 여자 역할 또한 남자배우가 여자분장으로 행한다!)

  문제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 험난한 세상을 함께 부대끼며 함께 생활하다보니 둘 사이에 '사형-사제'의 감정을 뛰어넘어 극중 연인같은 환상과 착각에 빠지게 된 것이다. 장국영은 자신이 영원한 우희이고, 장풍의가 자신에게는 일생을 함께할 패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생을 함께 하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건 동성애적 애정이라고보기에는 정신적 집착에 가까울 듯하다. 어릴적 힘들었을때 자신을 돌봐준 '남자'에 대한 이유있는 경도!)

  영화는 장국영의 사랑과 집착을 다루면서 그와 동시에 그를 둘러싼 시대적 격랑을 다룬다. 군벌시대 뒤를 이어 일본 군인이 휩쓸고, 그 뒤를 국민당군이 차지한다. 그리고는 공산군에 의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지만 안정도 잠깐. 곧이어 문화대혁명이라는 미증유의 광풍이 몰아닥친다.

  그 시대의 고비고비마다 불쌍한 두 경극배우는 이리 밀리고, 저리 댕기며 원치 않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에서 서로를 부정하고, 서로를 저주하는 독설을 퍼부어야만했고 세월은 또다시 단절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문화대혁명'은 '중국학도'에게 관심있는 부분이다. 1966년 모택동에게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어린 홍위병들의 광란의 퍼레이드는 그후 중국을 '동탕의 10년'으로 이끈다. 학교는 문을 닫고, 군대는 계급이 없어지고, 오직 '혁명'과 '모 주석'이라는 기이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진 것이다. 그 반대편에 대한 숙청과 처형은 이성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야만적인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문혁 당시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죽어나갔고 그런 식으로 인간성이 상실되었다.

  감독 천 카이거도 열 세살 때 아버지를 부정하고 농촌으로 하방되어 10여 년을 고생한다. 그의 자서전 <나의 홍위병시절: 어느 영화감독의 청춘>을 읽어보면 오늘날 영화감독으로서의 영광을 누리는 천카이거 감독의 암울했던 어린시절을 엿볼 수 있다.

  장국영 사후, 이 영화를 찍었던 중국 영화인들이 이런 저런 회상을 한 것이 보도되었다. 그들은 장국영이 <패왕별희> 촬영당시 이미 톱스타였지만 겸손하고, 쾌활하였다고 회고한다. 그는 연기에 있어 감독보다 더한 자기요구를 하였다고 한다. 우희 역할을 할때 감독이 오케이 했지만 자신이 마음에 안든다며 무려 30차례나 재촬영했다고도 한다. <패왕별희> 촬영 당시 장국영의 중국어(표준어, 보통화, 북경어)발음이 문제였단다. 자료를 뒤져보니 '양립신(楊立新)'이라는 사람이 장국영의 발성을 일부 더빙했다고 한다. 주제가 <當愛已成往事>는 대만 가수 이종성이 작곡하여 임억련과 듀엣으로 불렸다. 이 영화의 제작은 대만의 유명한 영화인 슈펑(徐楓)이 맡았다. <와호장룡> 이전까지 이 영화는 '중국-홍콩-대만'의 영화인들의 힘을 합쳐 만든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된다. 





장국영이 <패왕별희>를 위해 경극 연습하는 동영상


 霸王別姬  (1993)   Farewell to My Concubine
 감독: 천카이거(陳凱歌) 출연: 장국영, 공리, 장풍의,갈우, 오대우
 원작: 이벽화(李碧華)
 홍콩개봉: 1993/1/1
http://www.mtime.com/movie/10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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