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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나날들] 아름다운 시절, 고난의 시절 본문

미국영화리뷰

[천국의 나날들] 아름다운 시절, 고난의 시절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2.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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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1999-2-2] 시카고의 공장지대. 빌(리처드 기어)은 제철소에서 석탄과 불을 상대로 노동을 하는 노동자-그 시대 언어로는 ‘프롤레타리아’이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공장 감독관과 싸움이 붙는다. 단지 한번 거세게 몰아붙였을 뿐인데 그만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는 허둥지둥 도망 나온다. 그를 따라 나선 것은 그의 연인 애비(브룩 아담스)와 그의 여동생 린다(린다 만츠)이다. 이들은 지붕까지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찬 기차에 올라타서는 텍사스까지 흘러들어온다. 그곳에서 그들은 한철 가을 수확을 돕게 된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황금물결에서 그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노동을 하게 된다. 이 농장의 젊고 병약한 주인(샘 세퍼드)은 애비를 처음 보는 순간 사로잡히고 만다.

수확은 끝나고 추위가 닥쳐오자, 모든 노동자들은 다른 일거리를 찾아 농장을 떠나게 되지만 이들은 눌러앉게 된다. 농장 주인이 애비에게 머물러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빌은 농장주인과 의사가 나누던 이야기를 엿들었다. 농장주인의 병이 너무 위중하여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농장주인이 보기엔 빌과 애비의 관계는 의심스러웠지만 오누이라기에 그렇게 받아들일 뿐이다. 빌은 무슨 속셈인지 애비에게 농장에 머무르자는데 동의할 뿐 아니라 둘의 결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의사의 말과는 달리 농장주인은 병약한 모습이지만 빨리 죽지 않고 살아간다. 이듬해 수확 철. 빌과 애비의 관계는 더욱 모호해지고 농장주인은 배신감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수확을 눈앞에 두고 메뚜기 떼들이 온 들판을 덮고, 잘못 던진 불씨로 인해 메마른 들판은 하룻밤 사이에 폐허로 변해 버린다. 빌과 애비가 함께 있는 것을 본 농장주인은 권총을 빼들고 빌에게 달려든다. 빌은 칼로 그를 죽인다. 그리곤 빌, 애비, 린다는 또다시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을 쫓는 추격자들의 포위망은 좁혀만 들고... 결국 빌은 강가에서 보안관의 총에 죽는다. 애비는 슬프게 매달려 운다. 그리고 린다와 애비는 각자의 운명에 내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테렌스 말릭이라는 감독이 있다. 우리나라에뿐만 아니라 사실 미국에서도 잊혀져가는 감독 중의 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작품 <황무지>, <천국의 나날들> - 단 두 작품 뿐이었다-로 인해 굉장한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올 초 <씬 레드 라인 Thin Red Line 가늘고 붉은 선>으로 다시 등장할 때까지 그에 대한 분분한 이야기가 있어왔다. “파리에 살고 있다.” “죽었다” 등등의 소문들. 하지만 그가 1978년 이후 오랫도록 은둔해 있을 동안 세계의 많은 팬들은 그의 작품을 다시 찾아보며 일반 헐리우드 감독에게서 느낄 수 없는 놀라운 영상과 감동을 새록새록 되새김질 하는 것이다. 내 기억으론 이 영화가 오래 전에 주말의 영화 시간쯤에 방영되었던 것으로 안다. <황무지>도 구해 보려고 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고, 이 영화는 다행히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씬 레드라인>을 보기 전에 다시 한번 보니 역시 좋은 영화였다. 아마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스케일은 없지만 - 물론 그에 버금가는 장대한 자연풍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황금빛 들판을 보면 분명 해리슨 포드가 나왔던 <위트니스>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촬영에서도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들판이 황금빛으로 빛날 때, 해질 무렵, 그야말로 예술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장관들. 그런 자연의 신비로운 풍경을 테렌스 말릭 감독은 모두 담아내었다. 강물, 자연, 꿩, 토끼, 사냥개, 말... 카메라에 비친 모든 풍경은 그야말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과 경외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족했다. 바람에 이리저리 술렁이는 밀밭의 황금빛 발레를 보라. 저 너머 지평선 끝에는 천국이 있을 것 같고, 가끔가다 롱 샷으로 잡히는 고딕풍의 농장주인의 저택은 시대를 초월하는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저녁놀이 질 무렵의 평화란 지구 위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마지막 화평의 시간 같고, 해진 후의 고적함이란 죽은 자의 진정한 안식이라도 되는 듯하다. 이 모든 장면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자연의 풍경임에 분명하다. 작은 모니터가 이처럼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그럼, 영화로 들어가 보자.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차 대전 전이라고 한다. 아마도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의 시대적 배경과 엇비슷한 모양이다. 미국의 대도시에는 공장이 들어서고, 기계가 돌아가고, 자본주의의 활력이 독기를 내뿜고 있지만, 그 밑바닥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역시 가난하고, 내일이 없고, 희망이 없는 그러한 삶을 살 뿐이었다. 석탄가루를 뒤집어 서고, 석탄 가루를 마셔가며 노동을 하던 리처드 기어는 본의 아니게 살인을 하고 달아난다. 그를 따라 나선 것은 애비, 린다이다. 빌은 다른 사람들에게 애비를 여동생이라고 하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그것은 영화시작하자마자, 이 영화의 나레이터 역인 어린 여동생 린다의 설명에 의해서 더욱 굳어진다. 린다는 "빌 오빠는 애비를 여동생이라 불렀다.."이다. 그래서 한 철 수확할 때 다른 사람이 빌에게 "그래, 빌, 동생이 밤에는 따뜻하게 해 주던?" 이런 말에 빌은 또 달라붙어 싸운다. 그런 애매모호한 관계설정은 소설적 매력이 있다. 아마도 어릴 때 부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이라면 가족적 유대감마저 느낄 수 있으리라. (앗! 갑자기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의 안성기와 이미숙 관계가 생각난다) 그래서 농장주인은 의혹을 무릅쓰고 애비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식이 있은 후에도 빌과 애비와 린다는 들판을 뛰어다니고, 자연을 호흡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빌은 농장주인이 죽고 나면 분명 돈과 자유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병약하고 숫기 없어보이던 농장주인이 총을 들고 들이닥치며 영화는 또다시 그들에게 천국의 공간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셋은 다시 도망가고,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셋은 정말 행복을 느낀다. 자연과 함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리처드 기어가 그 자연의 푸르름과 강물의 잔잔함을 뒤로 남기고 죽을 때 우리는 천국이 과연 어디에 있었던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레이터인 린다는 오빠의 죽음이후 그러한 경향을 좀더 확실히 보여준다. 영화는 단지 삼각관계의 멜로적 드라마를 이끌 뿐이지만, 관객은 자연의 풍경만큼 멋진 이야기와 여백의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감독의 역량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굉장한 촬영, 굉장한 음악의 덕을 보았지만 말이다. 엔리오 모리코네가 생상의 클래식 소품을 잘도 믹싱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이 있기 전,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있었던 고향은 어디였을까. 그들이 가난하지만 꿈꾸었던 행복이란 무엇이었을까. 영화는 그렇게 미국의 가난했던 한시절의 공백을 꿈꾸듯 보여주었다.

테렌스 말릭이 <천국의 나날들>이후 20년 만에 내놓은 <씬레드라인>은 개봉하자마자 달려가서 보아야 영화같다. (박재환 1999/2/2) 
 
Days of Heaven (1978)
감독: 테렌스 말릭 (Terrence Malick)
출연: 리처드 기어, 브룩 아담스, 샘 세퍼드, 린다 만츠
2002/1/4 EBS-TV방송 
위키피디아-천국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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