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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초] 문혁, 청춘잔혹사 본문

중국영화리뷰

[미인초] 문혁, 청춘잔혹사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2.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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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4-4-13]    중국 현대문학사를 보면 '상흔문학(傷痕文學)'이란 게 나온다. 이른바 문화대혁명시기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이 광란의 세월이 지나간 뒤 자신의 경험담을 문학의 형태로 고발한 내용들이다.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이나 영화 [부용진], 장국영이 나왔던 [패왕별희] 등을 보면 이 당시의 혼란상을 이해할 수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 정치적 문제와 관련하여 '홍위병'이란 용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실제 중국인들은 이 '홍위병'이란 말 자체를 '나찌'보다 더 치욕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과거의 어두운 유산이다. 근래 들어 이 시절을 다룬 영화가 몇 편 중국에서 제작되었다. [미인초]고 그러하다.

  모택동의 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 세력을 대만으로 쫓아낸 후 중국 대륙은 공산주의 땅이 된다. 하지만 10년도 안 되어 이 신생 대국은 가난과 시행착오와 천재지변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모택동은 이 비상시국에 비상한 방법의 정치적 선택을 한다. 이른바 '동란의 10년', '잃어버린 역사의 10년' 등의 평가를 받는 인류역사상 가장 이해하기 힘든 집단광기의 산물인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 문혁 기간동안 도시의 젊은 학생들, 지식분자는 모두 시골로 내몰린다. 이른바 하방(下放)이다. 그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두메산골로 내몰린다. 기차 타고 1주일, 버스 타고 1주일, 그리고 다시 걸어서 1주일 더 들어가야하는 오지까지 보내져서 기약 없이 몇년동안 그곳 낙후된 환경의 인민들에게 모 주석의 영광스런 어록과 삶의 터전을 일구어야 했다. [미인초]는 바로 이 시기에 살았던 하방당한 중국 지식청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1974년 운남성에서 시작된다. 쿤밍 출신의 엽성우(葉星雨;서기)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만나고 다시 자신이 소속된 연대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떠났다. 짐꾸러미를 든 엽성우는 차를 세우기 위해 애처롭게 소리지르며 뛰어간다. 버스 지붕위에 앉아가던 유사몽(劉思夢;유엽)의 기지로 엽성우는 겨우 버스를 타게 된다. 울창한 수풀의 산으로 가로막힌 이 동네에서 서기와 유엽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오랫동안 엽성우를 사랑하는 원정국(袁定國;방빈)은 산악지역에 터를 잡은 5단연대의 리더. 반면 유사몽은 강 건너 읍내 마을에 진을 치고 있는 8단연대의 리더이다. 서기를 둘러싼 삼각관계-치정극이 펼쳐진다. 결국 위태로운 상황은 패싸움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갈등 관계가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날 엽성우는 고이 간직하던 자신의 처녀성(무슨 신파극?)을 유사몽에게 바치고, 이를 알게된 정국은 유사몽을 저주하게 된다.

  영화 제목 [미인초]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의 배경이 된 운남성의 이족 (?族) 마을에는 '미인초'라는 식물이 있다고 한다. 이 꽃은 연인에게 바치면 영원한 사랑을 얻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또다른 마을에선 남자가 이 미인초를 여자에게 주는 것은 헤어지자는 뜻이 내포되었다고도 한다. 이런 이야기는 그냥 이 영화의 신비감 정도로 이해하며 될듯하다. 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Years Without Epidemic](상흔없는 시대)이다. 광기의 하방시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또한 중국 영화 포스터에는 '激情如夢 美人如草'이라고 나와있다. 광기의 시기에 격정적 사랑이 꿈처럼 지나가고 한때 아름다웠던 여인네도 결국 풀처럼 사그라진다는 중국철학적 이야기이리라.

  과연 그런가. 이 영화를 보면 모택동의 거룩한 사상이라든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열정은 없다. 단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젊디젊은, 혈기왕성한 청춘이 산골짜기 움막에서 옹기종기 모여, 같이 밭 메고 논 메고 길닦는 공동작업을 할 뿐이다. 인민의 친구이면서도 강 건너 같은 젊은 무리와는 여자 하나를 두고 죽자사자 싸운다. 이 당시 홍위병의 위세는 주먹질에 코피 내는 것이 아니다. 총으로 쏘아죽이고 죽창으로 찔러죽여도 '조반유리(造反有理)'만 외치면 되는 살벌한 시기였다. 이 시절 혁명의 열정 뒤에는 당연히 청춘의 열정, 남녀간의 욕정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기와 유엽의 위태로운 연애담에 막혀 이런 시대상은 쉽게 찾아볼 수는 없을지 모른다. 영화가 시작되면 당 관계자는 서기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조직을 찾아라"고 말한다. 그 조직이란 것이 결국 당성과 혁명의지의 조직이 아니라 은밀한 거래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엽성우가 여자동료 웨이훙과 함께 읍내 공판장에 갔을 때 웨이훙이 피임도구를 찾는 장면이 있다. 문혁의 뒤안길은 이처럼 은밀하며, 어찌보면 지극히 인간적이란 말일 것이다. 그 시절 그들은 그렇게 은밀한 거래와 생존방식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영화는 문혁의 광풍이 지나간 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엽성우(서기)와 원정국(방빈)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둘이 결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 정국이 죽은 뒤 그의 유분을 운남성 산에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산, 그 다리 위에서 서기는 어디선가 돌아온 유엽과 재회한다. 이들 사이에 한 스님이 합장을 하고 지나간다. 언젠가 그 다리 위에서 한 스님에게 그들이 서로 인연이 있는가라고 물었었다. 스님의 대답은 "인연이 있다면 있고, 인연이 없다고 해도 그게 인연인 셈"이라고 알 듯 모를듯한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리고 처음 두 사람이 만난 상황이 재연된다. 버스는 출발하고 짐을 한 보따리 짊어진 서기가 버스를 향해 달려간다. 유엽은 그런 서기를 바라만 본다. 처음처럼 둘은 같은 버스를 타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연은 처음부터 그렇게 어긋날 모양이었다.

  [미인초]는 현재 미국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석소극(石小克)의 원작소설[첫사랑](初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석소극도 실제 운남지역에서 하방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감독 여락(呂樂)은 장예모 감독의 [인생], [상하이 트라이어드]의 촬영감독으로 더 유명하다. 특히 [상하이 트라이어드]로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에 오르기 까지했다. 중국인 최초의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기록이다. 여락 감독도 젊은 시절 2년 정도 하방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서기는 40도를 오르내리는 산악지역에서 심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유엽은 작년에도 하방당한 지식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발자크와 소재봉]에 출연하였었다.

  암울한 역사의 순간에 스쳐 지나간 사랑의 감정을 미묘하게 잡아내려는 감독의 의도가 아쉬움으로 남는 작품이다. 문혁시기 '하방'에 대해 좀더 알고 싶으면 천카이거 감독의 자서전을 읽어보는 게 효과적일 것 같다.  (박재환 2004/4/13)

美人草 (2004)  Years Without Epidemic
감독: 여락 
출연: 서기,유엽
원작소설: 石小克 [初戀]
중국개봉: 20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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