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www.kinocine.com 박재환 영화이야기 (페이지 리뉴얼 중)

[화양연화]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순간들 본문

중국영화리뷰

[화양연화]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순간들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2.22 15:57

확대
[Reviewed by 박재환 2000-10-5]   <키노> 최고의 인기감독이라할 수 있는 왕가위 감독이 신작 <화양연화>를 가지고 부산을 찾았다. 그의 예전영화가 모두 그러하듯이 엄청난 산고(産苦) 끝에 영화제 관계자(물론, 깐느를 포함하여)의 애를 달굴대로 달궈놓고 마침내 기다림에 지친 영화팬들앞에 그 전모를 드러낸 것이다. 어제 서울에서는 왕가위 감독과 두 주연배우 장만옥, 양조위가 참석한 가운데 서울 프리미어를 진행하였다. <키노>의 정성일 편집장은 <화양연화>의 상영에 앞서 이 영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 영화를 본 영화관계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도저히 영화의 내용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왕가위감독 영화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것'이라고. 그리고, 온갖 소문과 온갖 사전 정보로 무장한 열성 팬앞에서 <화양연화>의 고색창연한 이미지와 음악들이 97분에 거쳐 관객의 넋을 빼앗아갔다.

물론, <화양연화>는 양조위, 장만옥이라는 두 슈퍼 홍콩스타의 매력과 연기력만으로도 모든 것을 커버하는 굉장히 매력적인 사(私)영화이다. 소규모영화임에 불구하고 14개월의 제작기간이 말해주듯 장인의 꼼꼼함과 영상기교의 극치를 동시에 선사한다. 요즘은 너무나 흔해빠진 소위 '왕가위표 카메라워킹'의 정통을 <화양연화>에서 여전히 찾을 수 있다. 왕가위 감독이 넘어야할 산은 항상 그 자신의 전작들이었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어떠한 방식이든 분명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었다. 올 깐느영화제 심사단이 채 완성되지도 않은 이 영화에 고등기술상을 안겨준 것은 그러한 왕가위의 '기술적' 창의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리라.

왕가위 감독은 배우들에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건네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주연배우들조차 '이 영화가 도대체 어떻게 끝나는가'하고 촬영에 임한다는 것이다. <화양연화>도 그러한 방식을 택했다. 어쩜 왕가위 자신이 마지막 순간까지 이 영화의 결말을 고민한 듯하다. 장만옥과 양조위는 촬영 초, 각각 정부와 애인의 이중연기에 이 영화의 전체를 짐작했다고 한다. 순전히 왕가위의 변덕(!)에 의해 촬영되는 매 장면에서 주인공의 감정의 흐름은 변화무쌍하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다 본 후에 느끼는 이 영화의 미스테리함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왕가위 감독은 둘 사람의 도덕적 행위와 감정의 북받침을 어떤 식으로 결론지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고,그 결과 이처럼 우유부단하게 미확정인 상태로 남겨두는 방식을 택하였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보는 시각에 따라, 아니 너무나 자세한 사전설명을 들었기에 너무 많은 느낌을 갖게된다. 1962년부터 시작된 홍콩에서의 흔해빠진 외도담(談)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그리고 너무나 뻔뻔스럽게 로맨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분명 양조위와 장만옥은 각각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되며 동병상련의 걷잡을 수없는 감정의 격랑에 휘말리게 된다.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의 넥타이와 핸드백에서 그러한 '배우자의 외도가능성'을 눈치채고, 그 수습방안을 강구하기보다는 더 복잡한 해결방식을 택한다. 서로가 배우자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각자 분풀이와 혹은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깨닫게 될수도 있는 구조를 띄는 것이다.

그럼, 다음 단계는? 왕가위 감독은 신경질적인 부부싸움이나, 홧김에 저지르는 두 사람의 외도를 결코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이들 둘 사이에 무언가 충분히 어떤 일이 있었음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장만옥은 감정의 기복을 "영화보고 왔어요"라는 대사로 숨긴다. 양조위는 자신의 용기없음을 깔끔한 양복에 어울리는 자제력으로 미화시킨다. 그러면서, 감독은 너무나 용의주도하게 모든 비난과 추측을 뒤집을 장치를 해 놓는다. 늦은 밤 귀가길의 택시 안에서 양조위가 슬그머니 뻗치는 손을 애써 외면하는 장만옥을 보여주거나, 장만옥이 "우리는 깨끗하잖아요"라는 대사를 읊조림으로써 관객은 보지 않은 이상, 이들에게서 그 어떤 불미스런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왕가위 감독이 마지막 편집과정에서 둘의 섹스 씬을 잘라버렸다는 말을 전해듣고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 이상의 복잡한 관계를 다루고 있음을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중년의 '숨겨진 사랑'이라는 또한면의 사랑이야기를 다루면서, 불륜과 외설과 음란이 잠입할 수 있는 나머지 한 면을 숨겨버린 것이다.

어느날 언제나처럼 오고가던 두 사람의 공간에서 마치, 정사 후 옷깃을 여미는 장면 같은, 그리고, 불륜의 순간을 덮어두는 불안한 감정의 교차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미세한 사랑의 감정이 이 영화의 영어제목인 "In the Mood for Love'일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초반부 두 사람의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부터 왕가위는 관객의 시선을 잡고 감정의 이탈을 붙들어멘다. 마치 변함없는 일상처럼,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던 인간의 믿음이 조금씩 무너져가는 것에는 주위 등장인물의 역할도 크다. 양조위의 직장동료는 아펑은 양조위의 도덕적 기반을 조금씩 허무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장만옥의 직장 상사는 용의주도하게 부인과 애인을 오고간다.

언제부터인가 급속도로 가까와진 이들은 너무나 위태로운 사랑의 시간을 갖는다. 장만옥이 화려한 치파오를 입고 화면에 나오는 순간순간은 관객이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왕가위 영화의 점프 컷처럼 또다른 의미를 주는 것이다.

양조위의 성격의 복잡성은 그가 아내에게서 사랑을 잃은 것이 오래 전일수도 있다는 사실과 양조위는 그러한 사실을 감지하면서, 갓 이사온 이웃에 마음을 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의 애매모호한 성격은 쉽게 떠나가거나, 혹은 마지막까지 연민의 정을 불려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줄거리는 결국 헤어짐을 예상한다. 그리고 그들이 결코 헤어져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운명적 사랑일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양조위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사원의 쓰러져가는 담벼락에 그들 사랑의 비밀을 털어놓았다하더라도 관객은 그러한 사실마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왕가위 감독이 말한대로 사라져버린 모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아쉬움과 애련함인 것이다. 영화시작 전 자막은 이러했다. "그 시절은 이미 가 버렸다. 그 시대에 속했던 모든 것이 이제 더 이상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내상영본에서 마지막 자막이 번역처리되지 않았지만 내용은 이러했다.

"사라져버린 세월은 한 무더기 벽같다. 먼지쌓인 유리벽처럼. 볼수는 있어도 만질 수는 없다. 그는 줄곧 과거의 모든 것에 사로잡혀있었다. 만약 그가 먼지쌓인 벽을 깨뜨릴 수만 있다면, 그는 이미 사라진 세월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화양연화>는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일지라도 양조위는 아내의 불륜과 외도의 즐거움도 만끽하지 못하고, 세월이 한참이나 흘려서도 여전히 이국땅 벽에 기대어 속삭일만큼 불행한 것이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아마도, 양조위는 <우나기>의 '야쿠쇼 코지'인지 모른다.

양조위가 소설작업을 위해 구한 은밀한 밀회장소의 방 번호는 <2046>이다. 관객들은 그때 가벼운 웃음을 보낸다.  (박재환 2000/10/5)  

花樣年華 (2000)
감독: 왕가위
주연: 양조위, 장만옥
개봉: 2000년 10월 21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