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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세상이 사랑한 황태자비 “내 인생은 나의 것” 본문

미국영화리뷰

‘다이애나’ 세상이 사랑한 황태자비 “내 인생은 나의 것”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4.03.25 12:10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가 곧잘 만들어지고 국내에 소개된다. 워낙 옛날 사람이라서 고증 자체가 불가능한 인물일 경우도 있지만 동시대의 인물이라 왠지 친근감이 가는 작품도 있다. 아마도 영국 찰스 왕세자와 동화 같은 결혼식을 올렸던 다이애나(1961~1997.8.31.)라는 인물도 그러할 것이다. 다이애나는 1981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으면)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 왕세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이들의 결혼식은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발을 딛는 순간을 전한 것만큼 전 세계적 미디어 이벤트였었다. 그렇게 결혼한 세기의 로열 커플은 결혼 후 끊임없이 언론에 이름과 사진이 오르내렸다. 기품 있는 왕실의 여인으로. 그리고 대영제국의 빛나는 아이콘으로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1996년 이혼하였고, 더 충격적인 것은 이듬해, 다이애나를 태운 벤츠 자동차가 파리 시내의 한 지하도로 교각을 들이받고 절명했다는 것이다. 다이애나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고 이후 다이애나와 찰스의 잔인한 삶을 적나라하게 다룬 기사가 넘쳐났다. 살아생전  만면에 미소를 띠웠던 다이애나는 그때 정말로 행복했을까. 바로 그 다이애나의 마지막 몇 달의 삶을 담은 영화가 개봉되었다. 2004년에 히틀러가 죽기 전 열흘간의 지하벙크 속 삶을 드라마틱하게 담았던 영화 ‘다운폴’을 만든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의 제목부터 성스러운 ‘다이애나’라는 영화이다.

 

다이애나, 이혼하고 사랑에 빠지다

 

다이애나는 그야말로 전 세계 모든 사람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대중적 인물이었다. 교황보다도 유명했고 웬만한 할리우드 스타보다 더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1981년 7월 29일 영국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열린 두 사람은 결혼식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어 7억 5천만 명이 지켜봤단다. 당시 찰스 왕세자는 32살, 다이애나는 꽃다운 19살이었다. 그런데 15년의 결혼생활은 다이애나에게 있어선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 불행의 기억들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카밀라 파커 볼스’라는 여자가 존재했다. 다이애나는 어이없게도 찰스가 카밀라가 불륜인 사실을 알고도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대중 앞에서 ’영국 최고의 로얄 패밀리‘로서 만면에 화사한 웃음을 띠어야했다. (그리고, 다이애나도 맞바람을 핀다!) 참을 수 없는 결혼생활, 그리고, 감옥 같은 궁중생활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이혼이었다. 다이애나는 BBC와의 단독인터뷰를 통해 끔찍한 사실을 전체 대중에게 터뜨린다. 자신의 자살기도나 남편의 간통 사실 등을 이야기하면서 “이 결혼에는 늘 세 사람이 있었죠. 그러니 좀 붐비는 편이죠.”라는 유명한 말을 한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영국왕실의 숨 막히는 압박에서 벗어난 자유인이 된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으로부터는 단 하루도, 파파라치들의 카메라에서는 단 1초도 벗어날 수가 없는 나머지 삶을 살아야했다. 세상 사람들은 다이애나가 파키스탄 출신의 부호 ‘도디 알 파예드’와 사랑에 빠진 것으로 아나, 이 영화는 또 다른 인물 파키스탄 출신의 외과의사 ’하스낫 칸‘과의 로맨스를 담는데 주력한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보수적 사고방식의 파키스탄인 하스낫 칸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좌절해야만 했다. 그리고, 운명의 그 날(1997.8.31), 다이애나는 프랑스 파리의 리츠호텔에서 나와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다. 파파라치의 카메라 공세를 피해 메르세레츠 벤츠에 오른다. 앙리 폴이 모는 차는 질주했고, 그 교각에 부딪친다. 다이애나는 37살의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다.

 

이방인이 보는 다이애나

 

의외로 왕실제도가 존속하는 나라는 꽤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일본보단 영국왕실이 더 친밀할지 모른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을 직접 찾았었고, 다이애나 왕세자비 생전에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영국 왕실 남자들이 전장에라도 나서면 우리나라 언론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며 찬양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다이애나는 결혼이 야기한 개인적 불행을 대외적 봉사활동으로 삶의 숨통을 트려고 했다. 그녀는 정말 많은 시간을 자선활동과 세계평화에 대한 호소, 그리고 인도적 관심사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런 대외행사에는 언제나 파리 떼처럼 따라붙은 기자들이 따라붙었다. 그들이 찍은 사진과 그들이 보도한 기사들 가운데 다이애나의 진실한 삶과 그녀 가슴속 사랑을 정확히 전달한 게 얼마나 될까. 이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지뢰밭을 걷는 다이애나의 퍼포먼스’는 위태로운 그녀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파파라치와 전기작가 사이에서

 

 

 

 

영국 언론계에는 ‘왕실전문기자’를 둔 매체가 꽤 된다. BBC나 메이저 신문사들은 오직 왕실의 이야기만 전하는 ‘전문기자’가 있다. 아시다시피 왕실전문기자는 외교적이며, 사교적이며, 국제적인 문제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다이애나의 패션과 왕세손의 교육문제도 다룬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국 신문독자와 세계의 호사가들은 로얄패밀 리가 얽힌 스캔들과 사건사고에 더 관심이 많다. 이른바 타블로이드 기사에 열광한다.  다이애나의 삶과 사랑을 다룬 책은 꽤 된다. 살았을 때도 많았고 죽고 나서는 더 많았다. 다이애나를 모셨던, 알았던, 그리고 쫓아다녔던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사실을 충분히 부풀러 책을 쓰고, (타블로이드신문에) 기사를 팔고, 다이애나라는 허상을 갖고 놀았다.

 

이 영화는 다이애나를 순수하게, 아름답게, 열정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끔찍한 영화일 수도 있다. 실제 다이애나의 연인 – 타블로이드 식으로 표현하자면 섹스 파트너-의 존재는 충격적일수도 있으니 말이다.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은 또 다른 의미에서 우상파괴라 할 만큼 다이애나비를 ‘인간, 여성, 혹은 평범한 존재’로 끌어내린 셈이다. 다이애나가 궁중에 있을 때 ‘그 계집애’라고 했듯이, 영국 아가씨의 삶을 보여준다. 비록 경호원과 호텔과 카메라 플래쉬에 휩싸인 셀렙으로 화면에 등장하지만 말이다.

 

다이애나가 살아생전, 그나마 믿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보아야할 앤드루 모튼이 쓴 책 ‘다이애나 사랑을 찾아서’를 보면 다이애나의 비극을 더 잘 알 수 있다.

 

다이애나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도청당한다고 믿었고, 나중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다이애나는 1995년 11월에 방송된 BBC의 시사탐사프로그램인 ‘파노라마’의 제작진(마틴 배셔)과 접촉했고 마침내 경천동지할 내용을 폭로하면서 ‘이혼에 성공한다’

 

이혼하고 나서 다이애나의 삶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채로워진다. 영화에서는 주로 ‘하스낫 칸’과의 삐걱대는 연애담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위에 언급한 앤드루 모튼 책 서문에는 다이애나가 파리에서 교통사고 당한 그 순간을 언급한다. 런던의 (타블로이드 신문)  <<선>>지의 사진부장은 파리에서 걸려온 파파라치의 전화 한통을 받는다. 다급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교통사고 있었소. 도디는 아주 심한 중상인데 다이애나는 괜찮아 보입디다. 그들이 아직 차 안에 있는 사진들을 가지고 있소.” (세상에 사람이 죽어 가는데 특종사진의 거래가 이어진다) “신문에 가장 먼저 내보낼 수 있고 딱 하루만 쓰는  걸로 해서 300만 프랑!!!” 선지의 사진부장은 두말할 것 없이 “O.K”한다. 자동차는 완전히 부서지고 다이애나는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의 리얼타임 스토리이다. 

 

다이애나는 1997년 초 어느 날 군주제에 대한 TV시청자 전화참여 토론 프로그램을 보다가 몇 번씩이나 익명으로 영국에서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제가 되어야한다는데 찬성표를 던졌던 사실을 이야기한다.

 

 하스낫 칸과의 관계가 종지부를 찍은 뒤의 일이다. 다이애나는 억만장자 테디 포츠만의 배려로 두 아들(윌리엄, 해리)과 함께 미국의 별장에서 주말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왕위 상속자 및 예비 상속자’가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보안국의 조사를 거쳐야했다. 보안국에서 다이애나의 휴가계획을 반대했다고 한다. 다이애나가 8월 31일 파리에서 죽지 않았을 수도 있는 운명의 순간이었다고 한다.

 

 왕세자비는 도청에 대해서는 노이로제 수준이었다. 그래서 지인과의 통화중에 딸각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영국의 보안국인 MI5와 MI6에 대한 이야기란다) “이봐요 총각, 테이프를 갈아 넣을 시간이에요.”라고 .

 

다이애나와 연인 도디가 탄 메르세데스 S280이 리츠호텔을 나와 파파라치에 쫓겨 내달리다 알마교 지하차도 열세 번째 교각에 들이받는다. 도디와 운전사 앙리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다이애나는 의식을 잃는다.

 

다이애나가 죽은 뒤 함께 죽은 도디의 아버지 모하메드 파예드는 500만 파운드를 써가며 “자신의 아들과 다이애나가 살해되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사고사로 일단락 났지만 다이애나의 죽음은 수많은 음모론의 각광받는 주제가 된다. 영국왕실에서 회교도가 왕세자비와 결혼하는 것을 원치않았다는 생각은 아랍 세계에서는 흔한 이야기란다. 리비아의 가다피도 영국과 프랑스의 정보기관이 획책한 암살이라고 말하기도 했단다. 흔한 음모론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지뢰사용반대를 지원했기에 국제무기상에게 살해되었다는 음모, 그녀가 회교도 여자들에게 나쁜 역할모델이 되었기에 오사마 빈 라덴이 살해했다는 주장, 다이이내라는 이름이 ‘달의 여신’이고 그녀가 사고가 당한 지하차도 알마교가 달의 여신의 통로라는 의미를 지녔기에 바빌로니아 형제단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황당한 설도 있다.

 

슬프게도 다이애나 사후의 영국 왕실의 태도나, 다이애나의 유물을 둘러싼 추잡스런 이야기는 다이애나의 삶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다이애나가 죽은 뒤, 2005년 4월 찰스 왕세자는 카밀라 파커 볼스와 결국 재혼한다. 확실한 것은 찰스가 카밀라를 정말 사랑한 모양이다.   (박재환, 2014.3.25)

 

 


다이애나( Diana, 2013)
감독: 올리버 히르비겔
출연: 나오미 왓츠(다이애나 왕세자비 역), 나빈 앤드류스(하스낫 칸 역), 더글러스 호지(폴 버렐 역), 카스 앤바(도디 파예드 역)
15세 관람가/ 2014.3.6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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