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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꽃의 이름을 짓다 본문

일본영화리뷰

행복한 사전. 꽃의 이름을 짓다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4.02.19 11:41

 

 

인터넷이 일상화되면서 좋은 영화를 추천할 경우 '강추한다'고 한다. ‘강력추천’의 줄임말일 것이다. “변호인 강추”라고 쓰인다. ‘렛 잇 고~’ 노래만 흥얼거리고 안 본 사람에게는 “겨울왕국 초강추”라고도 할 것이다. 그런데 '개강추'라는 말도 사용된다. 우리나라 말에서 접두사 '개-'가 붙어 좋은 뜻, 귀한 의미로 쓰인 예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인터넷 세상에서는 ‘개-’가 ‘아주아주’의 의미로 사용된다. (‘캐’‘도 사용된다!) 반려동물 애호자가 많아서 언어의 의미가 바뀐 것일까. 아님 인터넷 세대의 독특한 언어유희 탓일까. 적어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수록되어있지 않다. 네이버 오픈사전이나 지식인에는 올라있다. 그럼 누가 이런 단어를 찾고(채록), 알맞은 뜻풀이를 하여 사전에 집어넣을까. 작년 부천국제영화제(PiFan)에서 소개되었던 일본영화가 오늘 개봉된다. 아주 흥미로운 영화이다. 일본 서점관계자들이 뽑은 ’일본서점대상‘을 수상한 미우라 시온 작가의 소설 '배를 엮다'(舟を編む)라는 작품을 이시이 유야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옮긴 것이다. 우리나라 개봉제목은 ’행복한 사전‘이다. 장인정신이 넘치는 일본의 한 출판사 사전편찬부 사람들의 '집념과 끈기의 새 사전 출판기'를 다룬 영화이다. 사전을, 언어를, 사람을, 사랑을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고, 이 원작소설을을 읽고, 이런 연애를 해 보시기를 미리 권하며 영화를 소개한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삐삐(무선호출기)시절을 지나 사무실에 PCS폰을 가진 사람이 한둘 생기면 그 디지털기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던 1995년 무렵. 겐부쇼보 출판사의 별관 사전편집부에 변화가 생긴다. 아라키 선생이 물러날 준비를 하며 영업부의 투명인간 마지메 미쓰야를 새로 끌어들인다. 서점을 돌아다니며 “우리 출판사 책 사 달라”고 영업해야하는데 전혀 소질이 없던 마지메는 출판사의 명운을 걸고 준비 중인 새 사전 ‘대도해’의 편찬부에 전입오면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대도해’(大渡海)!  언어(생활)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 올바른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배를 만드는 곳이다. 그러나 이 새 사전 편찬프로젝트가 언제 끝날지, 완성할 수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출판사 입장도 돈만 드는 사전출간에 회의적이고, 사전편찬부 사람들의 능력도 미지수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전편찬부의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장신정신’에 ‘소명감’으로 새로운 언어를 채집하여 용례카드를 빼곡히 채우며, 한정된 페이지에 최대한의 어휘와 가장 적확한 뜻풀이를 채워넣기 위한 시간과 공간의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무려 15년 동안! 그 사이 사전편찬부 사람들은 살며, 사랑하며, 부대끼며, 병들고, 죽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의 언어를 담은 ‘대도해’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
 
멋진 ‘오다기리 조’가 주인공일 것이라 예상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가, ‘더 멋진 마쓰다 류헤이’가 부스스한 머리에 맹한 안경 쓴 마지메로 등장하는 것에 당황하게 된다. 저 남자가 마츠다 류헤이라니. 그리고, 오다기리 조가 날라리 마사시로 나오다니.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필견의 작품일 것이다. 이런 영화, 저런 일드에서 본 미야자기 아오이, 쿠로키 하루, 와타나베 미사코, 이케와키 치즈루, 츠루미 신고 등 등장인물을 보며 "어~" 할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니 말이다. (쿠로키 하루는 최근 막을 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야마다 요지 감독의 작품 <작은 집>으로 은곰상(여자연기자상)을 받았다)

 

편찬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문자중독자’ 특유의 행태를 보인다.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사전에 쏟아 부으면서 ‘사전 이외의’ 그러나 ‘사전과 연관된’ 인생을 펼친다. 주인공 마지메는 말을 좋아하고, 사전 만드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행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책을 만든 사람들
 
'행복한 사전'의 원작 '배를 엮다'는 일본에서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일본서점대상수상작으로 국내에서는 권남희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권남희 번역작품을 찾아보는 사람이라면 후기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책(영화)의 배경이 되는 출판사는 겐부쇼보 출판사로 등장하지만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을 모델로 하였단다. 일본과 콘텐츠관련 비즈니스를 해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일본인 특유의 꼼꼼함과 장인정신이 당연히 사전출판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예상 외로 정말 단출한 인력으로 방대한 사전이 만들어진다. 대신 끝없는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다. 사전은 단어를 찾고, 그 뜻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마치 성경책처럼) 그 많은 분량을 한권에 밀어 넣기 위해 사전의 크기와 종이의 재질, 장정작업 등이 또 하나의 도전이다. 이 작품에는 그 모든 과정이 소개된다. 보고 있으면, 독자가 교열 아르바이트생으로 먼지투성이 겐부쇼보 별관 편찬부사무실에 앉아있는 것 같다.

 

작가 미우라 시온은 책을 준비하며 사전을 출판 관계자에 대한 리서치를 많이 했단다. 24만 항목, 3049페이지짜리 코지엔(広辞苑)을 편찬한 이와나미서점 사전편집장과 1990년부터 10년 동안 쇼가쿠칸(小学館)의 ‘일본국어대사전’의 편집장 도움을 받았단다. 소학관 일본국어대사전은 13권에 걸쳐 50만 항목이 수록되어있다.

 

인터넷과 국제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일상 언어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니 사전편찬자는 새로운 단어를 넣을까말까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한글단어(재벌,한류... 같은)가 수록되었다는 것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이와나미의 ‘코지엔’은 2008년 10년만의 개정판에서 처음으로 ‘히키코모리’를 수록했단다.
 
영화에서 마지메는 중세일본어 전공교수가 울고 갈 만큼 엄청난 ‘말’의 채집자이다. 그런데, 출판사 별관 구석방의 종이더미에 10여 년을 파묻혀 살다보니 약점이이 있다. 최신패션 용어를 '잘' 모르거나, 옛날 용례만 아는 경우가 있다는 것. 사전에는 '가체(다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항패션'류도 들어가야 할 터이니 말이다.

 

물론, 요즘 시대 누가 두꺼운 사전을 들추고, 단어의 명확한 사전적 의미를 확인하겠는가. 네이버 지식인에 가면, 더 모던한, 더 파격적인, 더 자세한, 더 풍성한 용례를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사전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더~.  이 영화는 ‘사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사랑’의 이야기이고 ‘사람’의 이야기이다. 연인의 이야기이며, 인생의 선배가 몸소 보여주는 삶의 희로애락이다.

 

또 하나 '행복한 사전'은 홍보실 사람이 아니라 인력관리부 사람이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지 모른다. 사람은 자기가 위치할 자리가 있는 모양이다. ‘날라리’ 마사시는 홍보실이 제격이고, 꼼꼼한 마지메는 곰팡이라도 필 것 같은 사전편찬실 자리가 최적이듯이, 카구야의 짝은 마지메인 것이다.  (박재환, 201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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