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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 ‘대단한’ 영화제의 ‘소소한’ 심사 메커니즘 본문

한국영화리뷰

[주리] ‘대단한’ 영화제의 ‘소소한’ 심사 메커니즘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3.03.12 10:43

 

김기덕 감독이 있다. 아무리 한국 충무로영화계를 모른다해도 김기덕 감독이 해외영화제에 나가 많은 상을 받았다는 것은 다 안다. 홍상수 감독이 있다. 해마다 깐느 국제영화제가 열리면 우리 언론(주로 영화/연예쪽 저널)은 이번에는 무슨 큰 상이라도 받을 듯이 떠든다. 과연 영화제 심사위원은 누구이고 어떤 심사과정을 거쳐 어떤 상이 주어질까. 노벨평화상처럼 무슨 정치적 음모라도 있는 것일까? 작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경우처럼 한 영화가 상들을 싹쓸이해가는 경우에도 심사위원들이 중간에서 조정도 안/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넘쳐나는 영화제에서 영예의 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주어지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영화제 심사위원’을 직접 인터뷰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런 공식적인 접근이라면 심사위원들은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좋은 작품이 많았고요.”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을 펼쳤고.. 한 편을 선정했어요.” 그런 점에서 이 영화 ‘주리’는 굉장히 재미있다. 영화제 심사과정의 그 치열함과 고단함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수많은 국제영화제에 직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영화제의 제왕’이 감독한 작품이다. 바로 김동호 감독이다.

 

문화부관료에서 영화제수장,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그렇다. 김동호 감독이다.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원장으로 15년을 활동하다가 재작년 명예위원장으로 물러난 그 분이시다. 이 사람은 문화부에서 오랜 관료생활을 하셨고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역임했고 부산영화제 수장을 거친 사람이다. 특이하게도 대한민국 모든 영화인들이 ‘정말로’, ‘진심으로’ 존경해마지 않는 영화계 거물이다. 오래 연세가 75세. 부산영화제 수장 자리를 후임에게 넘겨주고 김동호 위원장은 열심히 제2의, 아니 제3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진촬영에 심취하여 사진전도 열었다. 서예에도 정진하셨다. 그런데, 이분이 영화감독을 하신다더니... 정말 영화감독을 했다. ‘주리’는 단편영화이다.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영화제 심사위원’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그 자신이 수십 년 보아온 영화제 메커니즘, 영화심사의 법칙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다. 해외 영화제에 상 탈 욕심이 있는 영화감독이라면 이 영화 꼭 보시라! 그리고, 영화제만 열리면 우리나라 영화가 상 받기를 기대하는 저널들은 ‘영화제 메커니즘’을 공부하시기 바란다.

 

심사위원들, 격돌하다

 

지금 작은 상영관에서 영화 하나가 끝난다. 서울에서 열리는 한 국제영화제 현장이다. 객석에서 편안한 자세로, 혹은 몸을 비비 꼬며 영화를 보던 사람이 로비로 나와서는 이런저런 감상평을 나눈다. 이들은 지금 영화제 대상 작품을 선정하고 있다. 심사위원은 모두 다섯 명. “영화는 마음”이라고 말하며 그 진정성을 주장하는 정 감독, 마음보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강수연, 요즘 한국영화의 경향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유명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 무슨 이유인지 자기의 주장을 뚜렷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는 ‘일본 독립영화계의 대모’ 토미야마 카츠에,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심사위원장 안성기. 난상토론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토니 레인즈는 영화심사 때문에 한국 온 것 보다는 한국에 온 김에 한국음식 먹고 술 마실 생각이 앞서는 모양이다. 정 감독과 의견충돌이 계속되더니 강수연은 술잔을 집어던지고 고함을 지른다. “정 감독, 나 강수연이야. 임권택 감독이랑 영화 찍을 때 너 이 자식 뭐하고 있었어?” 새파란 영화계 후배 정 감독은 후다닥 무릎을 꿇고 백배사죄한다. 일본인 심사위원이 우물쭈물한 것은 영어가 딸려, 그게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저러는 것이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걸작들 사이에서, 혹은 고만고만 작품들에서 하나를 택하기 위해서 심사위원들은 저마다의 미학과, 저마다의 영화경험과, 저마다의 철학을 내세우며 충돌한다. 어중간한 심사위원장은 이래도 허허, 저래도 허허.... 심사는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김동호의 영화, 김동호를 위한 영화

 

이 영화는 거물 김동호의 영화인생이 철저히 투영된 작품이다. 비록 24분짜리 단편이지만 그 어느 영화보다도 영화제 속사정을 잘 표현한 영화이다. 김동호 위원장이 부산영화제 위원장 자리를 내놓고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하자 많은 영화인들이 자기 일같이 달려왔다. 대상을 두고 다투는 영화 속 영화에서부터 그런 영화인들이 등장한다. 양익준 감독과 박정범 감독, 윤성현 감독, 이채은, 김꽃비, 그리고 박희본. 물론 강수연, 안성기도 실명 출연하였다. 영화를 보다보면 임권택 감독도 쓰~윽 지나간다. 김동호 감독과의 인연 때문인지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도 얼굴을 비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은 ‘영화는 꿈’이라는 것을 믿는 그런 영화인들의 환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감독의 고뇌, 영화제 심사위원의 고민

 

작년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이런 기사가 나왔다. ‘원래 조민수가 여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이 기타 주요부문 수상을 탈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여우주연상은 이스라엘 여배우 하다스 야론에게 돌아갔다.......’ 그러니까 대종상의 광해처럼 한 영화가 싹쓸이 할 수 없는 ‘인위적 나눠먹기’(?)가 규정화되었다는 말이다. 그 해 베니스 심사위원장은 미국의 영화감독 마이클 만이었고 홍콩의 진가신 감독, 영국 여배우 사만다 모튼, 이스라엘 감독 아리 폴만(바시르와 왈츠를)이 심사위원이었다. 아마 그들도 이 영화에서처럼 “그 영화는 어떻고..” “저 배우는 어떻고..” 이렇게 각자의 철학과 미학과 인생을 되새기며 논쟁을 펼치고 한 작품을 선정했을 것이다. 실제 베니스 수상작 발표 후 이런 저런 보도가 많이 났었다. 심사위원장 마이클 만은 ‘피에타’보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더 마스터’를 선호했다고. (더 마스터는 감독상, 남우주연상, 그것도 호아킨 피닉스, 세이무어 호프먼이 공동수상했음) 그리고 그런 뉴스를 전하는 기사 가운데 3년 전 베니스 심사결과도 소개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심사위원장이었고 대상(금곰상)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Somewhere’에게 돌아갔는데.. 소피아는 쿠엔틴의 전 여친이었다며 ‘스캔들’이라고 보도하는 기사도 났었다.

 

언젠가 김동호 위원장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위원장님은 지금도 해외영화제에 나가시면 아침부터 영화보러 다니시고, 하루종일 행사 참석하시고, 밤늦도록 영화인들이랑 어울러 술 마시는데....... 영화심사하는데 지장 없으세요?” 그랬더니 김 위원장님의 말씀. “아이고, 여기 오는 영화가 다 좋을라고. 정말 잠 오는 영화 많아. 그땐 별수 있나. 자야지. 그리고... 심사위원들 보면 코 골며 자는 사람도 많아...”  영화제는 그렇게 인간적이다. 해외영화제 수상작에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야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절대적일 필요는 없다. 단지, 심사위원, 아니 한 영화팬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작은 결과일 뿐이니 말이다. (박재환 201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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