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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리뷰

[위험한 관계] 상해지련 (上海之戀)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2.10.23 17:34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는 장동건, 장백지, 장쯔이가 주연을 맡은 멜로드라마 <위험한 관계>이었다. 이 영화는 지난 달 중국에서 개봉되었고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된 후 곧바로 국내에서도 극장개봉 되었다. 출연배우들의 면면만 보아도 이 영화는 2012년 아시아의 대표영화로 손꼽을만하다. 게다가 감독이 허진호라니. 이 영화는 중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잔잔한 멜로에 재능이 있는 한국 영화감독에, 아시아 시장에 통할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검증받은 콘텐츠를 활용한 작품이다. 18세기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쇼데를르 드 라클로의 원작소설 <위험한 관계>는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질투와 배신에 눈이 먼 남자와 여자의 사랑놀이가 기본구조이지만 다양한 변형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이재용 감독이 배용준을 캐스팅한 <스캔들>의 경우는 조선시대 규방마님을 주인공으로 했다. 이번 중국판 <위험한 관계>는 뜻밖에도 1930년대 상하이를 끌고 왔다. 어떤 사랑놀이가 펼쳐질까.

 

화화공자(花花公子), 미망인을 희롱하다

 

 

셰이판(謝易梵,장동건 분)은 상하이의 소문난 플레이보이이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상하이 중심가에 호화로운 호텔을 경영하며 한가로이 걸 헌팅을 하는 것이 취미이자 일상이다. 그의 유혹에 세상의 모든 여자는 100% 넘어온다. 한편 모졔위(莫婕妤, 장백지 분)는 상하이의 유명한 여자 사업가. 뛰어난 미모와 타고난 붙임성으로 사교계의 여왕으로 통한다. 이 둘은 서로의 재능과 취미를 인정하면서 위험한 게임에 빠져든다. 어느 날 이들 앞에 나타난 두펀위(杜芬玉,장쯔이 분)라는 여인 때문에. 두펀위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 조신하게 살고 있는 미모의 여인이다. 플레이보이와 유한마담은 이 정숙한 여자를 두고 한심한 내기를 건다. 한없이 조신하고 우아하고 정숙한, 그래서 이 두 사람이 보기엔 너무나 꽉 막힌 두펀위를 정복(!)하면 이기는 것이라고. 그런데 천하의 플레이보이 세이판이 마음 한 구석에는 모졔위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도 불타고 있다. 하룻밤 놀이상대가 아니라 말이다. 세이판은 간단하게 두펀위를 유혹하여 하룻밤 장난감으로 삼은 뒤 그 전리품으로 모졔위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여인에게 접근할수록, 작업을 걸수록, 가까워질수록 자신도 모르게 이 여인네에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게 사랑인지 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말이다. 정숙한 여인네냐 아니면 정염의 여인이냐. 천하의 플레이보이는 사랑을 갖기 위해 사랑을 희롱하다가 그 사랑에 빠지고 만다.

 

올드 상하이,  모던 러브

 

원작소설의 배경은 프랑스혁명 전야이다. 그런 격랑의 시대 속에서 한심한 귀족 나부랭이들이 사랑을 희롱하던 것이다. 이런 미증유의 시대적 배경은 퇴폐적 감정놀이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중국판 <위험한 관계>는 1930년대의 상하이를 택한다. 한바탕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던 중국대륙은 여전히 풍전등화 같은 신세이다. 일본군들이 동북쪽에서부터 내려오고 있건만 상하이의 한량들은 계집질이나 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에겐 애국심이나 민족감정 같은 것은 웃긴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랑에 빠지면 세상만사가 먼지같이 가벼운 존재가 되어버리든지. 아니면, 그 시절 할 수 있는게 사랑놀음밖에 안 남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프로의 세계, 아마추어의 감정

 

원작소설이 여러 차례 영화화된 데는 이유가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의 감정을 순수하게, 혹은 잔인하게 파헤치기 때문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인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물인 절망감.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고, 또 한 여자가 있을 경우. 그 여자를 통해 사랑을 시험받고 사랑에 통곡하는 경우는 많다. 물론 이 원작소설이 아니어도 사랑의 감정은 배반이 잦다. 영화에서처럼  천하의 플레이보이가 사랑에 흔들리거나 감정의 바닥에 주저앉는 경우는 드물지만 있긴 하다. 중국판 <위험한 관계>는 특이하다.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사랑이 묘사되는 것도 아니고 오랜 세월 숙성되는 그리움이 끼어든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런 감정은 부르주와의 값싼 사랑놀이임에 분명하다. 자살을 하든, 치정에 얽힌 살인이 되었든 통속적인 결말은 정해져있다. 프로가 아마의 세계에 뛰어든 것도 그렇고,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칼을 꽂는 것도 정상적이진 않다.

 

2046과 장애령 사이

 

허진호의 <위험한 관계>는 제목만큼 ‘관계의 위험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인간관계에선, 특히 남녀관계에선 ‘위험성’보다는 그 ‘절박함’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장난으로 시작된 사이가 어느새 죽음과 희롱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랑의 불가능성이나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의 집착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 많이 보아왔다. 아무리 절박한 사랑이야기라도 시간이 지나가면 하나같이 봉인되고 말 그런 하찮은 과거 말이다.

 

<위험한 관계>를 보노라면 중국의 작가 장애령(張愛玲)의 작품이 떠오른다. 허진호 감독이 1930년대 상하이의 정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이전에 만들어진 <위험한 관계>를 볼 것이 아니라 장애령의 소설을 읽었음 더 애절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당장 내일 지구의 종말, 아니 상하이의 몰락이 오더라도 오늘 이 사랑의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간들이 가득한 게 1930년 그 시절의 상하이였으니 말이다. 


영화 <위험한 관계>에서 장동건, 장백지, 장쯔이라는 빅 스타를 보느라 조연들을 홀시할지 모르겠다. 미대생으로 나온 배우는 ‘두효’(竇驍,또시아오)이다. 2010년 부산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산사나무 아래>(山楂树之恋)(▶박재환영화리뷰보기)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이다. 그와 사랑에 빠지는 맹랑한 소녀는 왕혁근(王奕瑾, 왕이진)이라는 신인이다. (박재환, 20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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