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www.kinocine.com 박재환 영화이야기 (페이지 리뉴얼 중)

[조조:황제의 반란] 삼국지, 이야기는 계속된다 본문

중국영화리뷰

[조조:황제의 반란] 삼국지, 이야기는 계속된다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2.10.22 15:28

 

 

 

누구나 몇 번씩은 읽어봤을 중국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는 실제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한(漢)나라 말기 삼국(위-촉-오)의 정립이 대강 마무리되는 서기 200년 경에서 1,000년이 더 지난 명나라 때 나관중이 쓴 소설이다. 이야기 속 역사인물은 이미 흙과 먼지가 되었고 정권(왕조)도 몇 차례 바뀌었다. 그러면서 중국 인민들 속에는 삼국지 인물에 대한 대강의 품평이 끝났다. 유비는 충절을 지키고, 관우는 용감하며, 조조는 간교한 자라는 그런 인식. 그리고 또 7~800년이 지나면서 그런 인식은 동아시아계 식자층에 완전히 고착화되었다. 당사자에게는 해명을 들을 기회도 없이 말이다. 그러다가 최근 중국에 대작영화 붐이 일고, 삼국지 열풍이 불면서 ‘조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하나둘씩 시도되었다. 조조는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었다고. 과연 그럴까. 지난 달 중국에서 개봉되고 지난 주 한국에서도 개봉된 따끈따끈한 신작 <조조 황제의 반란>을 보자.

 

동작대: 조조의 무덤

 

영화 <조조 황제의 반란>의 중국어 원제는 ‘동작대’(銅雀臺)이다. ‘동작대’는 ‘청와대’가 대통령 사는 곳처럼 그 옛날 조조(曹操, AD 150~220)가 머물던 곳이다. 조조가 원소를 무찌르고 당시 업성(鄴城, 中國河北省邯鄲市臨漳縣三台村)에서 좋은 꿈 하나를 꾸고선 그곳에 궁궐을 지은 것이다. 당시 정치적으로는 한(東漢)의 헌제(獻帝)가 황제 자리를 유지하고는 있었다. 사방에서 제후들이 제각기 군사력을 믿고 일어설 때 조조는 한 헌제를 ‘겉으로는’ 모시면서 천하를 장악할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그런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일격을 맞고는 이곳에서 동작대를 세우고는 천하를 관망한다. 영화는 그 때 즈음하여 그곳에서 펼쳐지던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소설 삼국지(연의)처럼 7할은 순전한 창작이고, 3할 정도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스토리로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최근 비(정지훈)가 나왔던 <닌자 어세신>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 소년소녀들이 납치되어 살인기계로 키워진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최후의 살인병기로 선택된 여자와 남자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거대한 암살게임에 던져진다. 여자(靈雎,유역비)는 조조의 침소로, 남자(穆顺,타마키 히로시)는 거세되어 한 헌제의 곁으로 잠입한다.

 

조조가 동작대에 눌러앉으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위의 무리들이 그에게 ‘한 헌제를 폐위시키고’ 직접 황제 자리에 오르라고 들쑤신다. 하늘의 별이 한데 모이는 것은 하늘의 명이라며 조조가 황제가 되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조조는 자신의 본심을 쉽게 드러내 놓지 않는다. 아들 조비(曹丕)는 그런 아버지가 한편으로는 두렵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려움에 떠는 것은 허수아비 황제 헌제.

 

전 인생을 오직 조조를 죽이기 위해 훈련받아온 영저는 조조의 곁에서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조조 바로 곁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혼란을 겪는다. 조조가 당대의 혼란의 근원이 아닐 뿐더러 조조의 존재감이 역사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조의 생명을 노리는 수많은 음모가 진행되면서 영저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조조, 소설에서 역사로, 다시 영화로

 

 

 

소설 삼국지가 고착시킨 조조의 이미지는 시대의 간웅/효웅이다. 영웅스런 면모를 갖춘 흉포한 자이다. 하지만 최근 100년 동안, 지난 1000년 이상 욕만 들어온 조조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그 어려웠고 혼란스런 시절의 조조의 업적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당시 시대는 분열의 시대였고 분열의 시대에서 그는 통일을 추구했으며 그 마지막 순간까지 역사를 이끌어간 인물이란 것이다. 뛰어난 용인술과 민심을 얻는 정치술수를 보여주면서. 이미 허수아비에 불과한 황제를 죽이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은 것도, 밑바닥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뛰어난 재능이란 것이다.

 

실제 조조에 대한 암살 음모는 많이 진행되었다. 그것은 한 헌제가 시도한 것일 수도 있고 사그라지는 한의 권력자들이 마지막 몸부림일 수도 있다.

 

‘의심 많았던’ 조조는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결국 명의 ‘화타’를 죽음에 내몰았다. 영화에선 ‘길본’(吉本)이라는 태의가 등장한다. 조조는 사방에 적, 아니면 암살자를 두고 있었다. 그런 상황의 조조는 영저에게서 옛날의 여인을 떠올린다. 역시 <삼국지>에서 빠져선 안 되는 미인 ‘초선’이다.

 

<삼국지>를 다룬 영화는 근래 들어 많이 만들어졌다. 오우삼의 <적벽대전>, 홍콩 장문강-맥조휘 감독의 <삼국지 명장 관우>, 조자량을 다룬 <삼국지 용의 부활>까지. 이들 영화가 정말 ‘중국스런’ 엄청난 전쟁장면, 액션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궁중 권력다툼’에 공력을 들인다. 대만출신 배우 소유붕이 연기하는 한 헌제는 조조의 위엄에 눌려 바보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밟으면 찍소리라도 낼 것 같은’ 분노와 울화를 연기한다. 한 헌제의 후궁과 조조의 아들 조비가 펼치는 위험한 정사도 그런 궁중음모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삼국지> 콘텐츠를 좋아하거나 조조의 역사적 재평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그런데 영화는 중반부에 들어가면서 흐지부지되는 감이 없지 않다. 조조의 역사적 존재감이 ‘중원의 통일’이라는 정치적 명분에 접근하면서 마치 장예모 감독의 <영웅>처럼 쓸데없는 논란을 야기한 것 같다.

 

왕년에 한국극장가를 호령하였던 ‘홍콩 느와르의 따거’ 주윤발이 연기하는 조조는 카리스마 넘친다. 물론 장예모의 <황후화>에 등장한 황제와 비교하자면 인간적 고뇌감이 떨어진다. 이 영화의 원제는 <동작대>이지만 영어제목은 <암살자>(The Assassins)이다. 아마 영어권에 수출될 경우 <삼국지>라는 문학성이나 역사성보다는 ‘중국고대 궁중활극’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전략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암살자 유역비나 타마키 히로시에게서는 암살의 절박함이나 투철함, 프로페셔널한 헌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조의 주위를 맴돌다 후반부에 본색을 드러내는 요로(姚櫓,야오루)나 황후(이능정), 아들 조비 역의 배우(구심지)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소유붕의 유약하면서도 때로는 자포자기적인 한 헌제 연기가 일품이다.

 

그리고 <삼국지> 소재 영화를 포함해서 역사 콘텐츠를 다룬 중국의 대작 영화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세익스피어의 향기라는 것이다. 그게 햄릿이 되었든 맥베스가 되었던 아쉬운 것은 피로 얼룩진 왕좌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갈등, 고뇌 등이 다채롭게 언급되지만 문학적 깊이가 느껴지지 않고 산화된다는 것이다.

 

무려 1900년 전에 세워진 조조의 동작대는 이미 폐허가 되었고 먼지만 휘날린다. 관광대국 중국답게, 그리고 몇 해 전 조조의 진짜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호재에 힘입어 대규모 역사유적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단다. 실제 동작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곧 영화 세트장 같은 동작대를 관람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참, 조조는 ‘간사’할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의 아들 조비, 조식도 중국문학사에선 유명하다. 조조가 지었다는 시는 많이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글씨체는 딱 하나 전해진다. 중국 섬서성 한중시 포곡에 있는 석각에 남아있다. 건안 12년(215년)에 조조가 이곳을 유람하다가 대자연의 풍광, 특히 포수(褒水)의 물결에 반해서 즉석에서 ‘곤설’(袞雪)이라고 쓴다. 곤(袞)은 곤룡포이다. 따르던 자들이 삼수변이 있는 ‘곤’(滾 물이 세차게 흐르는 모습)을 써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니 조조가 이런 말을 했단다. “물이 이렇게 많은데 또 물을 쓸 필요가 있나?”했단다. 도도한 자연의 황홀함 앞에서 한낱 인간적 오타 하나를 이야기하느냐 라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조조의 간사함을 이야기하는 1,000년의 역사는 그가 왕좌를 탐낸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왔다) 이 영화에서 ‘곤설’이 순식간에 등장한다. 초반부에 조조가 폐쇄시키는 동작대의 지하 공간에서 말이다. 꼭 챙겨 감상하도록. (박재환, 2012.10.2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