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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1985] 김근태에게 바치는 때늦은 헌사 본문

한국영화리뷰

[남영동 1985] 김근태에게 바치는 때늦은 헌사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2.10.06 08:51

 

 

김근태라는 인물이 있다. 2011년 12월 30일 유명을 달리한 정치가이다.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셨다. 26년 전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이다. 우리는 그렇게 기억한다.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과 정치개혁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민주투사이며 재야인사의 영적 지도자였다고. 그가 26년 전 당한 고문을 생생하게 재연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바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이다. 정지영 감독은 작년 <부러진 화살>로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을 통렬하게 비판한 의식 있는 감독 아닌가. 그가 가슴에 칼을 품고 만든 작품 <남영동 1985>는 관객에게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다. 김근태를 몰랐던 사람들, 1980년대의 한국을 몰랐던 젊은이에게 이 영화를 꼭 권한다.

 

김근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하다

 

극중에서 김근태는 김종태라는 인물로 나온다. 김종태, 아니 김근태는 1983년 학생운동 출신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여 초대 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확산시켜나갔다. 그가 의장직을 사퇴하고 가족들과 오붓한 생활을 누린다. 하지만 그의 주위에는 항상 경찰이 지켜보고 전화는 도청 당한다. 그는 가족과 함께 목욕탕을 가고 바다로 놀려가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짜장면을 먹으러 가다가 정체모를 사람에게 잡혀간다. 그리고 눈이 가려진채 어디론가 끌려간다. 1985년 9월 4일. 마치 사채업자 사무실 같은 살벌한 분위기. 서로를 사장, 전무, 과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그에게 종이뭉치를 던져주며 “네가 살아온 인생을 남김없이 써라!”고 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는 갖은 고문을 당한다. 몽둥이찜질, 물고문, 전기고문. 영화의 대부분은 그가 육체적으로 고스란히 받아야하는 고문의 연속이다. 고문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강도가 세지면서 인간 김근태는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가 이곳에 끌려온 것은 그의 후배가 그의 이름을 자백했기 때문. 김근태는 똑같은 입장에 놓인다. 칠성판에 누여 얼굴에는 물 먹은 수건이 덮이고 샤워꼭지로 끊임없이 물이 쏟아진다. 발가벗겨 놓고 갖은 모욕을 당한다. 도저히 개명천지 문명화된 대한민국의 공안기관에서 행해졌으리라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이다. 특히 이경영이 연기하는 고문전문가의 등장은 관객에게 충격 그 자체이다. 우리는 ‘이근안’이라는 경찰을 기억한다. 그가 어떻게 김근태를 고문하며 그의 영혼을 개밥그릇의 말라비틀어진 음식 찌꺼기보다도 못한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버리는지를, 분노마저 소실하게 만드는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김근태는 그의 후배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름을 불고, 조직을 만들고, 배후를 ‘자백’하게 된다. 그러면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는 ‘대규모 간첩단조직 적발’이라는 공안 분위기기가 조성된다. ‘북괴의 사주를 받아 매판자본독재 군부독재를 타도하자’는 민주나부랭이를 박멸시키는 여건이 조성이 되는 것이다. 김근태는 그렇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인간의 극한을 체험하고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다.

 

김근태의 배후

 

1985년 9월 4일, 김근태가  남영동으로 끌려갈 때 당시 대통령은 전두환이었다. 김근태는 광주 대학살을 자행한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그의 배후가 북한이고, 김일성이고 그의 목적이 대한민국의 전복이 아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의 사장과 전무, 과장들은 하나같이 김근태라는 존재를 증오하고 경멸한다. “당신같은 인텔리겐치아가 순진한 대학생을 물들여 빨갱이혁명을 사주한다”는 것이다. 김근태는 그런 암흑의 시대에 올곧은 생각으로 시대정신을 이끈 민주화투사였던 것이다. 그는 세상이 바뀐 뒤 정치가로 변신, 아니 어쩔 수 없이 정치인의 길로 나선다. 당시 그는 정치부기자들이 뽑은 가장 훌륭한 국회의원이라는 평가를 항상 받았다. 노무현 정권시절에도 FTA에 반대하며 단식을 펼쳤던 정치가가 바로 김근태였다. 그의 배후에는 북괴빨갱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전체 국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김근태 정신의 진실한 배후가 누군지 아는 순간 대한민국의 미래와 시대정신, 국격과 국민의지는 강고해질 것이다.

 

이근안의 배후

 

남영동 대공분실은 남영동에 있다. 지하철 남영역에 내려서 조금 걸어가면 아직도 그 건물이 남아있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변신해서 대한민국의 암울한 시절에 행해졌던 인권침해 실태를 생생하게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하고 있다. 김근태가 끌려가서 고초를 당한 것은 5층 15호실이다. 김근태가 물고문을 당한 그 건물에서 서울대 박종철 군(당시 21세)이 물고문을 받아 죽은 것은 1987년 1월 14일이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그 현장도 보존되어있다. 이근안 같은 사람들이 모두 처벌받고, 대한민국은 과거로부터 완전히 광명을 찾았을까? 그것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더 먼 과거의 그림자에 묶여있는 국민정서가 존재하는 이상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지영의 배후

 

정지영 감독은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천작하는데 고뇌해온 사람이다. 한국전쟁의 한 면을 담은 <남부군>(90), 월남전을 다룬 <하얀전쟁>(92), 그리고 무척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아 대한민국 사법부을 우롱한 <부러진 화살>까지. 이런 영화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제작이 요원하다. 흥행은 비관적이고 말이다. 다행히 <부러진 화살>의 대중적 성공으로 <남영동>까지 온 것이다. <남영동1985>는 마치 김기덕 영화를 보듯 저비용의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독방과 칠성판, 몽둥이만 있으면 웬만한 장면은 커버되니 말이다. 그 음침한 공간에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물고문을 받았고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정지영 감독이 순진한 세대들에게 독재와 부정에 항거하는 의식화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맞는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모두들 의식의 교정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 투쟁은 그들의 피와 희생으로 얻은 소중한 씨앗이니까. (박재환, 201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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