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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리뷰

[우나기] 어른들을 위한 사랑이야기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2.19 12:58


[Reviewed by 박재환 1999-5-2]
 
하나비 6만명, 가케무샤 7만 2천명. 우리나라에 일본영화가 정식으로 수입되고 나서 들어온 영화의 흥행성적은 보잘것 없다.(서울개봉관관객기준) 그리고, 이번엔 세번째로 최근 깐느 그랑프리 수상작인 <우나기>이다. 이래도 안 볼 것이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몇가지 의문을 던져준다. '깐느면 다인가'와, '왜 4대영화제 수상작으로 한정하는가'이다. 외국영화제에서 상을 못 탄 것은 작품도 아니며, 모든 감독들은 자기영화를 그런 식으로 남들에게 인기순위 매기듯 상을 타 와야만하는 것인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영화팬들은 그만큼 정해진 잣대로 영화를 감상해야하는 단세포로 전락했고 말이다.

우선, 이 영화가 깐느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 그해 깐느 그랑프리는 두 작품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향기>와 이 <우나기>이다. 두 편 모두 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깐느라는 것이 그렇게 중압감의 권위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란 걸 느낄 것이다. 갈수록 아카데미와 베니스와 깐느는 상호 경쟁과 상호 눈치보기로 평준화되어가는 느낌마저 없지않다. 아니면 제 멋에 엉뚱한 작품에다가 경배의 술잔을 높이든지... 이 영화가 형편없냐고? 노. 그럼, 이 영화가 굉장하냐고? 노.

영화란 것이 영화제에서 키재기가 될수 없는 것은 이 영화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감독은 감독나름대로 무언가 말을 할려고 한다. 그리고 배우들은 자신들의 연기가 구현해내는 새로운 생명에 대해 무한한 감정을 쏟아붇고,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비로소 그러한 형상화된 인생에 대해 감동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영화들 중 소수의 몇 편만이 진정으로 감독과 배우가 협연해놓은 삶의 진실한 면에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영화이다. 상을 받았던말았던 상관없이 관객들은 그러한 삶과 그러한 이야기에서 깊고 그윽한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미 나이 70의 이마무라 쇼헤이. 이미 깐느 그랑프리를 받은 적이 있는 대가가 그려놓은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이야기-질투와 살인의 8년후의 담담한 세상은 일본선종 불교의 고즈늑한 분위기만큼이나 관객에겐 숨죽이는 긴장감과 야릇한 기대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와 아내의 관계는 이 영화에서 철저히 숨겨진다. 결혼한지 얼마나 되었는지, 부부관계가 행복했는지.. 오직 마지막 날, 밤낚시 갈때의 도시락 하나에 애정이냐 증오냐만이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도시락은 곧 다른사람에게 넘겨지고, 남편은 불륜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남편은 의외로 침착하게, 어쩜 제 정신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내와 뒹굴고 있던 남자는 무시하고 단지 아내만을 살해한다. (이런 경우 그럴까?) 그리고 자수한다. 그리고 8년을 감옥생활한다. 그가 감옥에서 정을 붙인 것은 감옥이 주는 규제와 절도, 그리고 절제일 것이다. 그가 출옥후 제식훈련받는 군인처럼 행동하는 것 하나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모든 것을 위임받는 셈이다. 관객은 이제 저 사람은 평상심을 잃고, 절제로 채워진 하나의 인간이란 것을 느낀다. 그가 감옥에서 얻은 하나의 위안이 있다면 우나기를 키우게 된 것. 그는 우나기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다. 아니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정말 우나기는 그에게 그만큼 인생의 비밀을 들어주는가. 우나기는 어항 속에서 따로 노는 자신의 세상을 가진 존재이다. 그리고 야마시타는 여전히 타인에게 정을 주지 않는 이발사이고 말이다.

자, 여기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사시미질하듯 마구 아내를 찌른 남편이 있다. 본론부터 들어가자면 그는 왜 아내를 죽였는가. 영화는 그렇게 시작했다. 남편이 누군가로부터 전해진 편지를 통해 아내의 불륜을 알게되고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질투와 증오로 아내를 죽인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신음소리에서 그 아내가 한 동안 자기에게서는 못 느꼈을 어떤 환희를 느끼고 있었음을 알 것이고,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면서도 남편을 향한 싸늘한 시선이 "불쌍한 남자!"라고 말하고 있음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후반부에 그 남자에게 그런다. "자네 섹스에 문제가 있는 것 아냐?" 그리고 관객들은 줄곧 게이코와의 서먹서먹한 관계를 눈치채고는, 그리고 무엇보다고 마지막에 다른 사람의 씨가 분명한 임신한 게이코를 받아들이는 야마시타에게 분명 육체적인 불안감을 연상시킬 수 있다. 오래 전에 <스캉달>이란 영화가 있었다. 남편은 교수이다. 하지만 그는 거의 아내를 만족시켜줄 수가 없다(性的으로...) 그럼, 이 경우에 이야기는 더욱 무거워진다.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눈감아줄 수 밖에. 아내는 점점더 다른 남자에게 이끌리고 빠져들고 부부관계는 무너져내려가는 것이다.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때문에 남편은 끝까지 그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가 끝에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파멸이었을 것이다.

20대 감독은 영화를 산뜻하고 아름답게 그릴 수는 있지만, 무겁고 감동적이게 그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70대 감독은 자신의 삶의 무게만큼 영화를 폭넓게 해석할수 있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10대의 꿈과 20대의 객기와 30대의 방황과 40대 이후의 현실적 안정감을 그려낸다. 그것이 이 영화를 현실적으로 무게감이 있는 영화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비록 살인은 있었지만, 그는 충분히 벌을 받았고- 어쩜 영원히 짖눌릴 자신만의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냥 조용한 새생활을 원할 뿐이다. 새출발의 그에게는 이미 많은 친구가 있다. 우나기뿐만 아니라, 어부, 보호사(가석방기간중 그 사람의 신원을 보장해주는 사람. 아무런 사고를 저지르지 않고 조용히 지내도록 하겠다는 보증을 서는 사람)인 대처승 내외, 그리고 빨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놈팽이. UFO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젊은이.... 그리고, 한 여자. 게이코. 그리고 게이코를 노리는 건달.....

마지막엔 좀 우스쾅스러운 복잡성을 희화적으로 간단히 해결시켜준다. 건달같지 않은 건달과 용감하지 않은 사람들의 주먹질과 난장판이 있고, 이 어수선함을 통해, 가족이 구성되고, 문제는 깔끔히 해결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의 피와 더 이상의 시체 없이, 야마시타에겐 평온과 이 마을엔 평화가 정착되는 것이다.

기다림의 미덕.... 게이코는 도시락을 싼다. 그리곤 새벽 낚시를 가는 야마시타에게 건네주러 다리위에서 기다린다. 하지만, 야마시타는 언제나 그녀를 외면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게이코의 도시락은 끝내 야마시타의 손에 전해진다. 소년이 하나 있다. 공터에서 UFO를 맞기 위해 전선과 전구로 치장하고, 언젠가는 유에프오가 자기를 데려갈 것이라 믿는 소년이 있다. 게이코와 마야시타는 그에게 그런다. "진정 기다리는 사람에겐 나타날 것이다"라고. 그리고, 야마시타는 감옥으로 돌아간다. 남은 감옥생활을 마치고, 1년쯤 뒤에 출소할 것이라고. 게이코는 그런다. 기다리겠다고. 돌아올 거죠?라고, 야마시타는 그런다. "아기 잘 키워..."라고... 영화는 끝없는 기다림을 조용히 기원하는 것이다.

소도구적 아름다움.... 게이코가 손을 벤 날. 야마시타는 자전거에 그녀를 태우고 읍내 병원으로 데려간다. 자전거는 여전히 아름다운 두 사람의 이신전심의 공간이다. 두 바퀴가 굴러가고, 뒤에 탄 사람이 앞사람의 허리를 감싸안는 동안, 두 사람은 정신적으로 이미 어떤 교류를 하는 것이다. 야마시타가 통발낚시로 우나기를 잡는 것과 작살로 잡는 것은 확실히 다른 이미지를 남겨둔다.(물론 물통색깔의 변화는 예외로 하고...)

일본식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야마시타는 아내를 죽이고, 또다른 부도덕한 아내를 맞이하는 셈이다. 게이코는 어머니를 병원에 보내고, 이전 건달 남자를 차버리고, 무작정 한 남자를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추잡하고, 지저분한 이 모든 인간 관계들은 단지 영화주인공이라서, 기다림이라느 미덕으로 치장되어 아름다와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삶이란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과거는 그렇게 잊혀져가는 것이다.

이마무라 감독이 칸 기자회견에서 "나이가 들면서 실제로 나 자신이 낙관적이 됐다.이전에는 참을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포용할 수 있으며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도 재미있는 면과 감동스런 면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단다. 그런 식으로 삶을 보면, 이런 식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뱀장어-장어가 정력의 상징이다. ('비얌'만 그런게 아니라...) 일본에서도 그런 인식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래서 그런 식으로 이 영화에서 사용되었다면, 이 영화는 회귀의 영화, 가족-가정의 복원뿐만 아니라, 性과 능력의 문제, 중년의 좌절과 그 극복을 그려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다음에 기회있음 이와무라 감독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출연: 야쿠쇼 고지(役所廣司) 시미즈 미사(淸水美砂)
한국개봉: 1999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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