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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정체성의 문제 본문

일본영화리뷰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정체성의 문제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2.19 12:55


[Reviewed by 박재환 1999/?/?]

이 리뷰는 1999년 경에 쓴 것 같군요. 최양일 감독의 <수> 개봉에 맞춰 다시 올립니다(2007-3-26)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살아가며 느끼는 것 중 가장 매력적인 문제의 하나가 바로 자아인식의 혼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왕자가 거지가 되고, 거지가 왕자가 되는 시추에이션부터, 왜 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게 되지? 왜 예쁜 '여자' 줄리엣 팰트로우는 무대에 오를 수가 없지(이건 영화 <셰익스피어의 사랑>이야기임-저자 주)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인간이기에 자신의 존재를 내세워, 사회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태생의 한계는 인간사회의 또 다른 속박이긴 하지만 창작 산물의 거름이 되기도 한다. 우리 주위를 둘려보자. 우리나라야 8대조 할아버지가 이조판서를 지낸 것 외에는 전부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아직도 우리 핏줄이란 것이 자기들의 평생의 업보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재일교포 말이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 재일교포가 만든 그러한 정체성 모색의 영화이다. 굉장한 것 같지 않은가. 사실 굉장한 영화이다. 키타노 타케시 영화랑 이와이 슈운지 영화를 한꺼번에 본 것 같은 뿌듯한 만족감이 드는, 영화 감상의 포만감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감독 최양일은 1949년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일본영화감독이다. 물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재일교포이다. 그는 일본에선 '사이 요우이치'로 불린다. 동경의 조총련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영화판에 뛰어든 그는 조명 조수와 소도구 담당 등의 허드렛일을 하다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이란 ‘황당’한 영화의 조감독으로 영화판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다 보니 감독이 되었고, 살다보니 일본인이 된 그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 영화는 원래 일본 위성방송 WOWOW(우리나라 사람에겐 포르노物 방영으로만 알려진 위성채널)에서 1992년 말부터 몇 달 동안 6명의 영화감독에게 단편 연작물 제작을 의뢰하여 "J MOVIE WARS"란 특집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 여섯 편의 단편물 중의 하나였다. 최양일 감독은 같은 재일교포인 정의신의 시나리오로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를 네 편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곤 이걸 바탕으로 극장용 영화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를 만들어내었다.

이 영화에는 많은 일본인이 등장하고, 많은 조선인이 등장하며, 또 그만큼 많은 동남아인들이 나온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서로의 정체를 알고 있고, 서로 상대에 대해 그러한 출신성분에 대한 호불호의 선호감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이란 게, 사회생활이란 게 감추어진 욕망처럼 그러한 느낌과 감정을 교묘히 숨겨야하거나, 은폐, 혹은 연극 같은 말들로 위장하게 된다. 그것이 감정 과잉의 상태가 되거나, 술이라도 들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져서, 심지에 불붙은 다이너마이트만큼 위험천만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누군가 그런다. "우리 일본은 다민족 국가를 지향한다!"라고. 그것은 미국 같은 인종 용광로로서의 다민족 국가가 아니다. 일본이란 국가가 부유해지고, 과거-특히나 채 백 년도 안 되는 근대사에 있어서-의 역사가 만들어놓은 현실적인 사회분포도에 기인한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은 크게 두 개의 공간이다. 하나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감싸는 택시 회사-하네다(金田)택시. 그리고 택시기사인 주인공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술집(룸쌀롱 같은..). 택시회사에는 일본인 기사뿐만 아니라, 조선인 기사, 그리고, 불법체류 중인 덩지 큰 서구인도 있다. 룸살롱의 아가씨는 필리핀 쪽 여자가 많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복잡한 인종적 대화가 재미있는 상황설정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남자 주인공 간다 다다오(한국명 강충남)는 자신이 조선인의 핏줄임을 굳이 숨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난 조선인이다. 자랑스럽다"라고 떠드는 사람도 아니다. 택시회사 동료들 중에는 입만 열면 그러는 사람이 있다. "난 조선족은 정말 싫어. 하지만, 다다오상은 너무 좋아. 돈 좀 빌려줘.." 영화는 쉽게 생각하여 일본내 조선인의 차별을 다룬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는 한 차원 더 심각한 상황을 보여준다. 바로 일본 내 조선인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다. 바로 민단과 조총련의 관계이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흔치 않은 광경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일본에서 살다보면 흔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친구 결혼식장에 참석했던 다다오는 이러한 갈등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다. 단지 학교 동창친구의 결혼식이라서 참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분명 그 피로연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두 단체 간의 보이지 않는 암투와 경쟁의식인 것이다. 조총련소속 사람이 축가를 불려주겠다며 "김일성 찬가(이런 노래는 난생 처음 들어본다... 우리의 수령 아버지 어쩌고저쩌고.. 찬양하세...라는 내용이었다)"를 부른다. 그러자, 술이 거나하게 취한 민단 쪽에서 사회자에게 화를 낸다. 왜, 우리에겐 마이크 안 주냐고. 우리도 노래하겠다며 바득바득 우겨서는 무슨 타령을 부른다. 무대 위에서는 이렇게 같은 핏줄의 다른 두 집단이 유치할 정도의, 소아병적 애국애족심의 발로로, 서로의 경쟁우위를 주장하며 노래판을 벌일 동안 우리의 젊은 주인공은 단지 연애상대를 찾아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 본다. 그 여자가 조총련이든, 민단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자, 그럼, 어머니가 운영하는 술집은 어떤가.

조총련계인 어머니는 이 펍(술집)을 운영하기 위해 동남아 여자들을 데려다 놓지만 맘에 안 든다. 하나같이 게으르고, 손님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술집 종업원(호스티스)에게 통역해주는 필리핀 여자가 있었으니 바로 "코니"이다. 코니도 필리핀 여자이며 같은 호스티스이다. "너네들, 그런 식으로 일하면 이곳 일본에서 성공할 수 없어. 나를 봐. 나처럼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어. 이래라 저래라...." 그럼 코니는 시큰둥하여 같은 필리핀 호스티스들에게 통역해준다. "우리 마담 아줌마처럼 하면 인생 조지는 거야. 알았지.." 그럼 호스티스들이 손톱 다듬다말고는 까르르~ 웃는다. 다다오 상이 어느 날 코니를 보게 되고는 첫눈에 반한다. 그러고는 불같은 열정으로 다가가서는, 불같은 첫 키스를 하고는, 불같은 하룻밤을 보내고는, 불같은 동거생활에 들어간다. 이에 대해 어머니는 불같은 화를 내고 말이다. 불같은 사랑은 곧 사그라질 운명에 처하게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난 줄곧 두 사람이 잘 되었음 하는 생각이 불같이 났다. 남자는 조국의 운명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사람이고, 여자는 줄곧 돈 벌어 고향 필리핀으로 갈 생각만 하는 사람이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인물들의 운명이 급박하게 맞물러 돌아간다. 택시회사 사장은 사기꾼 교포 친구의 말에 투자를 잘못했다가 부도나게 생기고, 만날 다다오상이 좋다고 쫓아다니던 미친 동료 기사는 결국 정신병원 신세가 되고, 집나간 마누라 때문에 아기 업고 회사에 나오는 동료기사가 생기고... 불같은 사랑은 계속되고 - 티격태격 싸웠다간 헤어지고, 그러곤 다시 만나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 와중에 주인공 어머니는 북쪽에 보낼 소포 꾸러미를 열심히 꾸린다. 마치 우리가 어린 시절 국군아저씨에게 위문품 보내듯이 말이다. 이런 것은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어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 교수님이 중국에 여전히 살고 계셨을 때, 동생은 평양에 계셨단다. 조금 부유한 중국 측 핏줄기는 평양에 있는 친척들을 위해 이런저런 생필품을 보낸다고 한다. 어느 날 동생에게서 편지가 왔단다. "... 형님 잘 계시죠. 여기도 잘 지내고 있어요. 어제는 배급이 나왔어요. 신발이 한 짝 밖에 안 나왔어요. 왼쪽만 신고 다녀야 하는가 봐요..." 그러곤 또 세월이 얼마간 흘려서는 편지가 왔단다. "..형님 잘 계시죠. 이곳도 잘 지내고 있어요. 어제 다시 배급보충이 있었어요. 이번에도 왼쪽 한 짝 신발만 나왔어요. 우리 인민은 왼쪽 발만 있는 모양이에요...." 뭐. 그 교수님은 참 말씀을 잘하시는 분이었고, 난 기억력이 좀 떨어지는 대신 창작력이 있다 보니, 실제와는 좀 다른 말일 수는 있지만, 어쨌든 저런 내용이었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목까지 어떤 슬픔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쉬리>에서 최민식이 대갈 일성할 때 마음으로 감동했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적십자사에서 북한에 이것저것 보내고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제 뉴스를 들어보니, 우리나라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이것저것 줄 수는 없는 입장이어서, 우리나라 정부가 적십자사에 뭘 주면, 적십자사가 그걸 북한에 건네주는 방식을 택할 모양이었다. 어떤 방식이었든 굶주린 동포를 위해 눈만 감고 있을 순 없겠다는 생각도 난 가끔 하기는 한다. 특히 한 짝만 덩그러니 놓인 신발을 볼 때마다 말이다. 어머니가 그렇게 소포를 살 동안 아들은 지켜만 본다. 왜 우리 엄만 저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나 하는 시선으로. 그러다간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는 도와준다. 포장상자 밑바닥에 돈 봉투랑 편지 같은 것을 몰래 숨기는 것까지 말이다. 그네들의 고향이 이북이면, 소속도 자연스레 그런 식으로 조총련이 되는 식이다. 일종의 세습인 셈이다.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자, 제목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의 의미를 알아보자. 하네다 택시회사에 신입사원 기사 택시가 한명 들어왔다. 이름은 안뽀. 안뽀 상은 동경지리를 잘 모른다. 그래서 언제나 회사에 전화를 해서는 길을 물어본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와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그럼 회사 사무실에선 한심하다는 듯이 "그곳 주위에 무슨 큰 건물이 있나?" "없고요. 저기 산이 있고, 물이 있고..... 하늘엔 달이 있네요." 그럼, "달이 어디에 떠 있어?" "아, 달이요? 남쪽인가, 북쪽인가. 아니 동쪽인 것 같군요." 이 친구는 영화에서 네댓 번 자신의 위치를 물어본다. 그럼 택시회사는 "달의 위치"로 넌 지금 북쪽으로 차를 몰고 오면 되. 그렇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처음엔 웃어넘길 상황이었지만, 이 장면은 우리나라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오발탄>의 마지막 장면은 혼란에 빠진 주인공이 택시를 탄다. 기사가 어디로 갈까요 묻자. 영등포로 갑시다. 아니, 여의도로 갑시다. 아니 차라리 청량리로 갑시다. 식으로 우왕좌왕한다. 그러자 기사가 중얼거린다. "에잉 또 오발탄이네 그려" 그것은 다름 아닌, 분단한국의 현실이 만든 현대인의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의 하나였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달은 하늘에 떠 있는 것이지만, 일본열도에 있는 모든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심각한 자아인식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영화는 이와이 슈운지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의식을, 훨씬 재미있게 풀어나간 것이다. 작년에 한차례 화젯거리가 되었던 <본명선언>을 보고, 정체성의 문제, 재일교포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을 법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꼭 보기 바란다. 보여주는 것만큼 재미있고,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참 좋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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