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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기행④ 소림탑림, 소림스님의 마지막 안식처 본문

중국기행

허난기행④ 소림탑림, 소림스님의 마지막 안식처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2.04.25 17:05

 

 중국 하남성, 허난을 가다(4) 소림사 탑림을 가다

 

 

 

 

지난 2010년 성불하신 법정 큰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법정스님의 의자>를 보면 스님의 다비(茶毘/茶毗) 모습이 있다. 스님은 나무땔감 위에서 한줌 재로 화한다. 그리고 그 재, 사리는 조용히 수습되어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된다. (▶관련뉴스:법정스님, 한줌 유골 비공개 장소에 뿌려져

 

원래 불가에서는 이렇게 화장을 하는 모양이다. 사바세계 대중을 많이 인도한 훌륭한 고승일수록 사리가 많이 남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는 마치 아폴로 우주선이 가져온 월석처럼 세계각지로 분배되었다. 석가모니와 법정 스님은 그렇다 치고, 천년고찰 소림사의 그 많은 스님들의 유해는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소림사 근처에는 공동묘지라도 있을까. 있다. 소림사 옆에 탑림(塔林)이 있다. 탑림은 스님들을 다비식을 끝내고 남은 재를 담은 탑들의 집합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도(浮屠)라고 알려진 불교식 매장형태이다. 사전에는 '부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고승(高僧)의 사리를 안치한 탑. 비슷한 말은 승탑(僧塔)’이라고 나와 있다.

 

 

 중암사(中巖寺)부도

 

 

아마도 주지 스님이나 큰 스님이 성불한 뒤 화장하고 남은 재 부스러기는 옹기 등에 잘 수습하여 부도탑의 어느 부분에 잘 건사해 두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예를 찾아보니 인터넷에 중암사(中巖寺)부도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띤다. 오랜 세월 많은 스님들의 육신의 마지막 티끌이 저렇게 안장된 모양이다.

 

 

중국 하남성 등봉현 소림사 절 입구에서 10분 거리에 탑림이 있다. 처음 이 탑들의 용처(?)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탑을 저리 빽빽하게 세워 놓았을까 의아해할 것이다. (▶百度:少林寺 塔林)

 

 

 

 

소림사 탑림은 서기 495년 소림사가 건립된 이후 이곳에서 입적(원적/성불)한 수많은 고승들의 사리를 모신 곳이다. 오늘날 확인가 능한 탑 수는 232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 불교미술사는 이런 책을 보면 탑(塔)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원래 인도에서 기원한 것으로 석가모니를 화장하고 그 사리를 땅에 묻고(봉안) 공경의 의미로 그 위에 조형물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양한 형태로 불교신도들에게 신앙의 대상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탑림은 전형적인 묘탑이며, 진신사리 소장건축물인 것이다. *

 

소림사 탑림은 21,000평방미터에 232개의 탑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제각각 특이한 형태를 갖고 있어 전문가들이 살펴보면 시대적 특성을 찾을 수 있단다. 그리고 탑과 함께 있는 비문을 통해 그 묘탑의 주인공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단다.

 

 

 

 

탑림 입구의 안내도를 보니 건조시기가 당나라 묘탑부터 시작하여 송, 금, 원, 명, 청대까지 다양한 시기로 분포되어 있다. 시기를 확정지을 수 있는 것들은 당대 2기, 송대 2기,  금대 10기, 원대 46기, 명대 148기, 그리고 현대 들어 2기란다. 

 

 

 

 

탑림에 있는 '묘'탑 232기의 형태는 다양한다. 설명으로는 스님의 생전 불학에 대한 조예의 깊이, 인망의 높고 낮음, 공덕으 정도 등에 따라 탑의 규모가 달라졌단다. 그렇다면 1층짜리는 시원찮고 15미터, 7층석탑은 석가모니급이란 말야? 아니. 불교에서조차 죽어서도 사람차별한단 말야? 흠흠.... 여하튼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병모양, 누각식, 정각식, 라마식, 첩탐식 등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탑들을 분류할 수 있다. 고고학자나 미술사학자는 이곳에 오면 신날 것이다. 한곳에 다 모여있으니 말이다. 비문의 서체도 다양하니 서예가나 서지학자들도 신나긴 마찬가지일 터이고...

 

 

 

 

전형적인 묘탑 모습. 앞에 비석이 있다 비문을 통해 주인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문은 정말 해독할 수 없을 정도로 풍진에 바랬다. 나로선 해독불능. 그렇다고 옆에 친절하게 안내해놓지도 않았다.

 

 

 

 

북송 연간(서기 1121년)에 세워진 탑이다. 사각형 전탑 구조로 명칭이 심플하게 '보통탑'이란다. 명칭으로 보아 일반 보통의 스님이 묻힌 것으로 보인다. 탑림에 묻힌 대부분의 스님은 주지, 방장, 장로 등 고승이기에 이런 해석을 한다고. 또 하나의 해석으로는 이 탑의 건조시기가 송나라이고 남은게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하나를 같이 썼을 것이라는 해석도 한다.

 

 

 

 

 

법완선사탑(法玩禪師塔/法玩禅师塔)

 

탑림에 있는 묘탑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법완(法玩)선사탑이라고 한다. 당 정원 7년(791년)에 세워진 것이다. 8미터 높이의 전탑(磚塔)구조이다. 즉 벽돌을 쌓아만든 형태란다. 아마도 흙으로 빚고 구운 단단한 전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구조이리다. 어느 게 법원선사탑인지 몰랐는데... 인터넷 뒤져 그 탑의 정체를 알아냈다. 내가 찍어온 사진 중 가장 위태로운 모습의 탑이었다.

 

 

 

 

그럼 가장 최근의 탑은?  232기 중 최근(현대) 것이 두 개란다. 내가 찍은 사진에는 ‘숭산 소림사 29대 주지 석덕선(釋德禪) 법사의 영탑’이 있다. 위키피디아 찾아보니 석덕선 법사는 1993년 3월에 원적하셨다고. 아마.. 2년 뒤에 이 비석이 선 모양. 지금 소림사 주지 석영신 스님이 30대 주지로 1999년 8월에 주지가 되었다고. 그럼 몇 년간 소림사에는 공식적인 주지가 공석으로 있었던 모양.  (▶중문 위키피디아:释德禅)

 

 

괜히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현 주지인 석영신 스님 직전에 석소희(释素喜)라는 스님이 계셨다. 이 노승은 1937년에 소림사에 출가한 인물로 중국이 공산화된 후 마지막에 절에 들어간 승려라고 한다. 2006년 3월 8일 입적한 뒤 역시 탑림에 모셔졌단다.  (▶소희선사 원적관련기사 보기: 传奇少林高僧高僧素喜圆寂) 이 기사를 보면서 알게된 것은 중국에선 소림사 고승이 입적해도 함부로 들판에서 화장(다비)을 할수 없는 모양. 소희선사는 등봉시 화장장에서 화장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중국에선 법이 엄하다고 한다. 티벳에서도 티벳식 장례법-이건 아는 사람은 알터이다-이 엄금되어 있지만 사천성이나 티벳에서는 아직도 옛날식 장례법이 이루어지고 있다니 말이다.)

찾다보니 소림사 29대 주지에 석덕선 법사가 아니라 행정(行正)대사란 인물도 있다. 왜 이런 착오가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석영신 방장에게 전화로 물어볼까? 앗. 명함을 안 받았네.. 이런. 흠흠...  (▶百度:行正方丈)

 

 

 

 

 

안타까운 것은.. 허난 관광가서 웬만한 유적유물관련 책자는 사왔는데 ‘탑림’에 대한 책은 사오지 않았다.  그 땐(2008년) ‘탑림’에 대해 그 중요성을 몰랐고, 아마도 책값이 비쌌던 모양. 그래서 뒤늦게 인터넷 뒤져 개별 탑들의 정보를 찾아봐도. 그다지 영양가 있는 정보가 없다.. --;

 

 

각 탑들의 건축양식을 통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고 비문을 통해 서법 등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탑림에 있는 탑 중에 조공스님(照公和尚)의 묘탑이 있다. (▶百度:照公和尚塔铭)

 

 

 

显教圆通大禅师照公和尚塔铭(元后至元五年1339)

 


원대(1339년)에 세워진 이 비문에는 모두 1000여 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 명문(銘文)이 진짜 명문(名文)이라고 한다. 글쓴이는 소원(邵元) 스님이라고 당시 소림사에 와 있던 일본의 승려였다. 당시 중국은 불교선진국이었던 셈. 일본승려 소원 스님이 중국고승에 대한 헌사를 남겼으니....   소림사 탑림의 비문 하나로 중국과 일본의 불교교류 및 문화교류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소원’이라는 이름을 보고나서야.. 허난기행(3)에서 소개한 곽말약의 그 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서지학자이기도한 곽말약이 1973년에 이곳에 와서 소원 스님의 글을 보고 감회를 읊은 것이다. "조공스님에 대해 쓴 글을 보니 어쩌구저쩌구....." 하는 내용이리라... "안되 안되.. 이거. 사람 불러야 되.."

 

 

 

 

아마도 이 탑의 주인공은....

 

 

또 하나 특색있는 묘탑으로는 유공탑(裕公塔)이다. 유공은 복유(福裕) 선사이다. 원대 인물이고 1274년에 입적하였다. 그런데 이 사람의 불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원나라 황제가 그에게 태사공을 추봉(追封)하였다. 죽은 사람에게 진국공(晉國公)으로 봉하였다고 한다.  중국 불교사상 나라에서 국공으로 봉해진 유일한 케이스란다. 유공은 살아생전, 그리고 죽어서도 소림사에 불멸의 지위를 남긴 셈이다. 그런데, 저 탑림에서 어느게 유공탑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정보를 알고 갔더라면 열심히 찾아보기라도 했을 터인데 말이다. 아깝도다! 6각형 7층탑이란다. 아마 이 탑이 맞을 듯 하다.  (▶百度:福裕)

 


 

 


마치. 피라미드의 봉인된 시간의 문이 열리는 느낌?

 

 

 

세월의 무상함. 풍상에 노출된 세월이 오래되다보니 곧 무너질 것 같은 탑도 있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런 역사적 유물이 이렇게 허술하게 받쳐져 있다니 조금 충격적이었다. (2008년 찍은 사진임)

 

 

 

 

 

이 글 쓰면서 중국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소림사 탑림 관련기사가 하나 눈에 띤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탑림을 찾다보니 문물보호에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탑에 기대어 기념사진을 찍는다거나 “철수, 영희 왔다간다” 같은 낙서하거나...  소림사 측에선 특단의 대책으로 철책 난간을 설치하였단다. 내가 4년 전 갔을 때는 없었는데.. 혹시 최근 가 보신 분 진짜 이래요? (▶관련기사: 소림사, 월담금지 少林寺塔林拒绝“飞檐走壁”)

 

 

 따라하지 마~ 보이.

 


그런데 탑림 보호에 있어 골칫거리는 관광객만이 아닌 듯. 이곳에서 영화와 TV드라마를 많이 찍는데 그 과정에서 많이 훼손되어 이렇게 철책을 둘렀단다. 그런데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여유국(관광국)에서 펴낸 <<허난여행가이드>> 책자를 보다가 재밌는 사진을 하나 발견했다. 관광안내도 사진에 이런 반문화적 포즈를 취하다니.... 쯧쯧..

 

 

 


소림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 중에는 한국관광객이 많다. 탑림에도 많이 왔다갔을 것이다. 단체관광객도 있을 것이고 배낭여행 온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글 낙서도 눈에 띤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찍힌다! 조심하자!!

 

 


 

소림사에 가면 특별히 사올 기념품이 없다. 소림사특제 연고약을 사오는 사람이 있을려나... 그런데 인터넷 보니 이런게 사진 있다. 이런걸 초일봉피라나... 우표도 그렇고... 난 이런데 더 관심이 간다. 담에 소림사 갈 일 또 있음.. 탑림.. 하나하나 다 세밀하게 찍어와야겠다.   (박재환, 201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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