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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기행③ 소림사 완전정복 본문

중국기행

허난기행③ 소림사 완전정복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2.04.24 09:02


하남(河南,허난)성을 가다(3) 소림사 완전정복 편


소림사(少林寺)는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에 세워진 절이다. 북위(北魏)시절이다. 그러니까 유비와 조조의 삼국시대가 지나고 16국 시절을 넘긴 뒤의 남북조시대이다. 이후 수(隋)에 의해 다시 통일될 때까지 엎치락치락하던 그 시절이다. 북위라고 하는 이유는 북쪽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남쪽에는 제가 있어 남제(南齊)라 불렀다. 북위는 북쪽에서 일어선 왕조였고 원래 선비어(鲜卑语)를 사용하던 무리였는데 효문제(孝文帝) 때 공용어로 한어(漢語)를 삼았다. 그리고 인도에서 발타(跋陀) 선사를 모셔 불교보급에 나선다. 왕은 특별히 발타 선사를 위해 소림사를 세운 것이다. 그때가 북위 태화(太和) 19년. 서기 495년이었다! (▶중문 위키피디아:少林寺) (▶百度 : 嵩山·少林寺)

 

 

 

요게 진짜 소림사 전경이다. 그런데 단체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소림무술쇼, 대형주차장 등 현대화된 건물은 소림사를 둘러싼 또 하나의 소림사관광특구가 되어있다.

 

 

 

 

 

그리고 30년 쯤 지나 효명제(527년)때 그 유명한 달마(達磨) 선사가 소림사를 찾은 것이다. 달마대사는 소림사 뒷산 소실산의 한 동굴 속에 9년동안 벽만 쳐다보고 도를 닦는 면벽수행을 했다. 달마대사 이전까진 소승불교였는데 이 사람 이후 대승불교가 대세를 이룬 것이다. 소림사가 선종(禪宗)의 조정(祖庭)이 된 것은 당연한 일. (▶중문 위키피디아:菩提达摩)

 

* 그럼 중국 최고의 절이 소림사일까? 아니다.  하남성 낙양에 있는 백마사(白馬寺)라는 절이다. 소림사보다 400년 앞선 동한 연간(68년)에 세워진 절이다. 같은 하남성에 있다보니 기본 관광코스에 포함된다. 여기도 나중에 소개~ (▶중문 위키피디아:白馬寺)

 

 

 소림사 주지 (방장) 석영신 스님 (2008년 내가 직접 찍은 사진임!)

 

여하튼 소림사는 세워질 때부터 왕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절이다. 나중에 당 태종이 되는 진왕(진왕) 이세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른바 소림사 13곤승이 그의 편에 선다. 이후 소림사는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된다. 그리고 20세기 들어와서 군벌전쟁시기에 절이 홀라랑 불 타고, 문혁시절을 거치면서 폐허가 되었다가 신중국 들어서면서 또 다시 중국의 대표적 불교명승지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석영신 방장(주지)의 노련한 사찰 경영 능력이 있다. 광대한 소림사를 최고의 관광명소로 발전시켜 돈을 끌어 모을 뿐만 아니라 각종 프랜차이즈 사업도 펼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소림무술의 국제화, 영화 속 이야기로 웃어넘길 게 아닌 소림축구단, 요즘은 소림사 비책의 약품까지 만들어 팔고 있다. 요즘은 소림사를 역사적 배경으로한 진경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 공연은 따로 소개하겠다. (▶百度 : 释永信)

 

실제 석영신 방장은 중국의 여러 단체/매체에서 주는 CEO경영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소림사에 가면 불교의 철학적 깨우침이나, 불경해석의 신기원 같은 ‘정신적 감응’을 얻기 보다는 소림무술의 대중화 성과, 불교사찰 관광사업의 현주소 등을 보게 되어 씁쓸할 뿐이다.

 

소림사가 돈벌이에 급급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소림사엔 볼거리가 많다. 하나씩 구경하자.
 

 

 

 

허난기행(2)소림사입문에서 보게된 산문은 진짜 산문은 아니고, 나중에 세운 거대한 관광 게이트인 셈이다.  소림사가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된 후 원래 소림사는 관광객으로 미어터진다. 진짜 1500년 된 소림사가 한쪽에 있고, 또 한쪽에는 소림무술을 보여주는 show장과 대형 주차장 등이 마련되어 있다.

 

 

 

 

소림사 입구치고는 너무나 조촐하여 놀라게 된다. 그런데 이연걸이 출연했던 그 옛날의 영화 <소림사>에도 등장하고 러시아의 푸틴이 소림사를 찾았을 때도 이 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요즘도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여기서 기념 촬영한다. 물론, 나도...

 

 

 

 블라드미드 푸틴은 러시아 대통령(1기)이었던 지난 2006년 3월 22일 소림사를 찾았다. 소림사를 찾은 최초의 외국 국가원수란다. 그런데 당시 중국언론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렸다. 푸틴이야 유도도 하고, 사냥도 하고.. 뭐 그런 마초풍의  남자인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인데 그가 소림사를 특별히 찾은 것은 딸 때문이었다고. 당시 푸틴의 두 딸이 중국 가면 소림사 가자고 요구했고 결국 성사되었다고. 한국 남자와 연애한다고 소문났고 결혼할 뻔했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던 그 푸틴의 딸 말이다. 위키피디아 찾아보니 푸틴에게는 딸이 둘 있다. 마리아와 예카테리나이다. 둘다 중국문화에 심취했었다고. 특히 소림사가 일찌기 러시아에 소림사분원을 세웠고 소림쿵푸 교습소도 열었다고. 그런데 푸틴의 두 딸이 여기서 열심히 운동했단다. 한국남자와 결혼한다고 소문났던 딸은 둘째 예카테리나이다. 여기서 예카테리나의 쿵푸 사진이 있어야 딱인데... 사진이 없네.... 음 러시아의 일급국가기밀인가? 인터넷 뒤져보니 러시아에서 푸틴의 딸에게 소림무술을 가르친 사람은 소림사 34대 제자인 석연강(释延康)이란다. 러시아 제자들과 찍은 사진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예카테리나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관련기사: 普京参观少林寺 观看武僧表演

 

 

 

소림사에 들어서면 <천하제일조정>(天下第一祖庭)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소림사의 위상!!!

 

 

 

 

산문(山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금가역사상(金剛力士像)이다. 금강역사는 불교의 호법신으로 무시무시한 모습에 한 손엔 금강저라는 방망이를 들고 있다. 불교 발상지 인도나 초기 중국불교사찰에서는 금강역사가 보통 하나인데 오늘날 짝으로 나타나는 것은 중국인의 대칭습관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오늘날 금강역사(金剛力士)는 좌우 대칭구조로 서 있는데 상반신에 옷을 입지 않고 다리를 벌리고 있다고 한다. 좌측상은 분노의 얼굴에 입을 벌리고 있는 반면 우측상은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한다. 진짜? 사진을 보니 정말 그렇네. 신기하네~ 우리나라 절도 이럴까. 찾아봐야지.

 

 

 

 

산문을 지나면 좌우로 대칭형 건물이 있다. 원래 전통 사찰에 들어서면(들어가는 사람 기준으로) 왼쪽엔 큰 북이 있는 고루(鼓樓)가, 오른쪽엔 종이 있는 종루(鐘樓)가 위치하고 있다. 그땐 종루와 고루의 중요성을 몰라 카메라에 담질 못했다. --; 그래도 고루에 대한 표지판은 찍어뒀네.. 나 참... 어쨌든 설명에 따르면.. "원래 종루와 대칭구조로 같은 높이이다. 원나라 대덕(大德) 원년(1297년)에 세워져서 4년만에 완공되었다. 1928년 전란에 불타버렸고 1996년에 중건되었다."

 

 

고루와 종루를 지나면 천왕전에 도달한다. 우리나라 절에 가도 볼 수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 오늘 제대로 공부해보자. 앞으로 우리나라든 중국이든 사찰에 갈 일 있으면 자세히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흥했듯이 사천왕(사대천왕) 또한 인도에서 기원한다. 원래 고대 인도설화에서는 수미산(須彌山)에 사천왕천이 있었다고. 네 개의 방향에 위치한 네 개의 봉우리를 수호하는 것이 곧 천하를 보호하는 형국이다. 물론 각각의 명칭이 있는데 이것이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조금씩 변형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중국식으로 차용/변용/습용된 것은 당연하리라.

 

 

전형적인 사천왕상 모습 (▶百度 :四天王像)

 

 

 <<장아함경>>(長阿含經)에 따르면 사천왕은 각기 방향을 따라 자리잡아 정법을 수호하고 마귀가 함부로 설치지 못하게 한다고. 동쪽은 지국왕(持國王)으로 비파(琵琶)를 들고 있고, 남쪽은 증장왕(增長王)으로 보검(寶劍)을, 서쪽은 광목천(廣目天王)으로 삼차극(三叉戟,삼지창)이나 용을 잡고 있고, 북쪽은 다문천(多聞天王)으로 사리탑(舍利塔)이나 은색 쥐(銀鼠)를 쥐고 있단다.

 

 

 

네이버 지식인을 찾아보아도 쥐고 있는 물건이나, 색깔이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꼭’ 그런 것은 아닌 모양. 중국 바이화원 교수가 쓴 <<중국사원문화기행>> 책을 보면 좀 자세한 설명이 있다. 중국불교미술에서 가장 중시되는 ‘북방 다문천’의 경우 당대 이후 비사문천왕 전설이 강화되었다고. 안서(安西)지방이 투르판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비사문천왕이 성의 북쪽 문 위에 나타나 커다란 빛을 발하고 아울러 ‘금색’의 쥐를 동원하여 적의 활시위를 끊었다는 것이다. 이에 당 현종이 크게 기뻐하여 도성의 성루마다 비사문천상을 세우도록 했고 이에 사천왕상의 북방 다문천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손에 왜 금색이 아닌 은색 쥐가 되었쥐? 사리탑은 왜 대용품인지는..... 찾아보면 전설이 더 있겠지. <봉신연의>에 따르면 비사문천의 권능이 나중에 이정(李靖)에게 빼앗기고 오직 혼원진수산(混元珍珠傘)만 갖게 된다고. 사천왕상 보면 ‘우산’ 같은 것 들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진짜 ‘우산’ 맞다. (이후엔 우산이 깃발로 변형되기도 한단다) 인도에서 건너오면서 창을 쥐고 있거나 뱀을 쥐고 있거나, 용을 감고 있거나...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내가 찍어온 사진을 보면 우산을 들고 있는 천왕, 사리탑을 들고 있는 천왕, 비파를 들고 있는 천왕이다. (하나는 찍지 못했다. 그래서 인터넷 뒤져보니... 뱀(혹은 용)이 한 손에 감겨 있는 상이었다)

 

 

중국의 규모 큰 절이나 사원에 가면 온통 비석이다. 수백 년 수천 년 지나면서 남는 것은 돌이란 것을 알기에 돌에다가 무언가 기념을 남기려는 인간의 의지인 듯하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나 왔다 간다.” 혹은 “너무 아름답다” 같은 기념사를 남긴 것이다. 그런 비석을 따로 모아 비림(碑林)을 꾸며놓기도 하고, 올라가는 길목 양옆에 주욱 세워놓기도 한다. 세월의 풍상에 비문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세월의 무게감과 더불어 소림사의 영광을 높여준다.

 

 



 

소림사에 들어서면 오래된 비석보단 최근 세운 비석들이 눈에 먼저 띤다. 자세히 살펴보면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의 헌사들이다. 잠깐 보니, 스위스 쿵푸무술태극권협회, 세계당수도협회장, 미국무술협회방문단, 대한불교조동종(曺洞宗)방문기념비 등 숱한 종교, 무술단체 이름이 있었다. 음.. 우리나라에 ‘조동종’이란 불교종파가 있는 줄을 소림사 와서 알았다. --;

소림사에 오면 원효대사기념비나 이태백의 헌시라도 찾아볼 요량이었다면 꽤 실망스러울지 모른다.

 

 

 

 

 

비석이야기 하는 김에 하나 더. 비석이 많다보니 이런 비석도 있었다. 영화 <소림사> 주제가를 비석에 새겨놓았다. 악보까지 함께. 조금 웃기긴 하지만.. 길게 보자. 지구에 핵폭탄이라도 터지고 천년이 더 지나면 이연걸의 <소림사>DVD는 없더라도 이 비석은 살아남아 후대 인류역사학자들에게 ‘중국인의 위대한 대중문화’를 연구하게 하는 자료가 될 듯하다.

 

 

 

 


곽말약(郭沫若)! 중국문학사 배운 사람은 곽말약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중국의 혁명가이며 문학가이며, 시인이며 사상가이며, 고문자학, 고고학자, 역사가이다. 그가 소림사에 대해 쓴 글이 있다. 유명 서예가답게.. 글씨체가.. 예술이다.. 음.. 저걸 읽을 줄 안다면....  어.. 1973년에 썼단다. 1892년생인 곽말약은 1978년에 돌아가셨다. 죽기 전 몇 해전에 남긴 글씨이다. 우와... (▶百度 :郭沫若)

 

 

 

곽말약 말고 또 유명한 사람 한 명 더 만날 수 있다. 홍콩이 낳은 세계적인 무협소설 작가 김용이다. 호~ 굉장히 반가왔다. 김용은 <천룡팔부> 때문이라도 이 동네에선 각광받을 것이다. ^^

 

 

禪宗初祖天竺僧(선종초조천축승) 斷臂求法入雪人(단비구법입설인)

 

 

더 들어가면 마침내 입설정(立雪亭)에 도달한다. 입설정도 소림사를 찾는 사람들이 꼭 가야할 곳. 입설정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져 온다. 그 옛날 달마대사 소림사에 있을 때 (9년면벽 전인지 후인지는 알 수 없다. 전설이니 말이다) 어느날 제자가 되겠다며, 도를 닦겠다며 누군가가 찾아온다. 달마대사는 알듯말듯한 소리만하자 이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겠다면 흰눈에 소복히 파묻힐 동안 밤새 밖에서 연좌시위(!)를 한다. 그래도 달마대사가 “넌 아니다.”고 하자. 혜가는 칼을 꺼내어 자신의 한쪽 팔을 자른다. 그제서야 달마대사가 “깨우침이 있다”며 제자로 받아들인다. 이 사람이 바로 2대 큰스님(二祖) 혜가(慧可)이다. (소림사엔 칼과 피가 많이 분다!!!)  (물론, 달마와 혜가 사이의 선문답을 오롯이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마음 속 번뇌를 떨치기 위한 철학적 문답이 오갔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쪽 팔을 자른 것이 아니고... 그리고 이때부터 이곳에서 스님들이 합장인사할 때 한쪽 손만 올린다는 그런 전설이 유래한 것이란다. )   (▶少林故事:立雪亭)

 

지금 소림사에 가면 혜가가 밤새 눈을 뒤집어선 곳에 입설정이라는 비석이 서 있다. 입설정 건물은 지금은 스님의 업무 사무실 역할을 한다. 그 아래 건물이 바로 소림사 방장 석영신 스님의 사무실. 입설정 안에는 달마대사 조상과 청의 건륭제가 썼다는 글씨가 붙어있다. 그런데 난 그날 석영신 방장 보느라 정작 입설정 내부 모습은 다 놓쳤다.. 오호 통재라!

 

 

 

김용 무협소설 안 읽은 사람도 장경각(藏經閣)은 알 것이다. 천년고찰 소림사엔 꽤 많은 서적이 있을 것이다. 불경이든, 소림사 무술교본이든 뭐든 말이다. 그러나 전란과 문혁을 거치면서 장경각은 텅텅 비었다고. 하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은 향을 사르며 소원을 빈다. 중국 어디가도 볼 수 있는 기복신앙.

 

 

헐.. 찍다보니 이런 것도 찍혔네. 석영신(釋永信) 스님이 소림사 주지(方丈)가 된 것을 기념하여 소림사무술학교 학생과 제자들이 세운 공덕비이다. 비석을 세운 게 1999년 8월20일이다.  짐작하다시피 석영신 주지스님은 만나보기가 어려운 사람. 그런데 난 기념사진도 찍었네.. 음...  소림사 갔다온 사람은 많아도.. 소림사 주지와 나란히 사진 찍은 사람은 드물 것임.... 푸핫!



 

 

소림사는 꽤 오래된 절이고.. 소림사는 중국 최고의 인기 관광명소이다. 석영신 방장의 탁월한 경영(?)수완으로 돈(온갖 수익, 기부금, 성금)이 쏟아지는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소림사 안과 팎은 항상 공사 중이다. 뭔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소림사 기행문을 올리면서 중국 인터넷에서 뉴스 검색을 해보니 소림사에 대한 새로운 뉴스가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전 세계로 사세를 확장시킨다는 뉴스와 국내외의 높으신 분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소림사에 견학온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런 뉴스 사이에 소림사가 상업적으로 혼탁하게 오염되고 있다는 뉴스까지... 이건 다음에 소개하겠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소림사엔... 스님이 산다.....  (4년전 소림사 갔다와서 이제 글 쓰는 박재환, 2012.4.24)

 

보너스... 명상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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