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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리뷰

[아티스트] 아바타 영상시대의 흑백무성영화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2.02.17 10:46



우선 인간은 꾸준히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술적, 과학적 성과와 함께 인간 인지의 진화도 포함하고 있다. 인간이 생각해내는 모든 것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도 그러할 것이다. 그 옛날 흑백동영상이 요즘은 컬러에, 3D로 진화되었고 청각적 영역에서도 진화를 거듭했다. 원래 소리가 없던 동영상이 어느 순간에 소리가 입혀졌고 다양한 입체사운드가 갖춰지면서 영화/극장을 찾을 때 음향시스템을 체크하는 영화팬이 있을 정도이다. 여하튼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하여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한 카페에서 짧은 흑백+무성 동영상들을 일반에게 공개하면서 영화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 1927년 미국에서 <재즈싱어>라는 유성(토키)영화가 나왔다. 그런데 유성영화는 영화필름에 소리가 입혀졌다는 의미이며 이미 그 전에 극장 관객들은 영화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스크린 뒤에서(혹은 앞에서)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변사가 영화를 ‘재창조’하는 식으로) 이후 특별한 감독의 의도가 없는 이상 영화는 컬러로, 유성으로 만들어졌고 극장시설은 그런 식으로 진화했고 영화관객은 그런 매체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작년 특이한 영화가 한편 개봉되었다. <아티스트>라는 제목부터 우아한 흑백영화이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무성영화’를 지향했다. 영화가 혁명적 진화를 하던 1927년 전후의 할리우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시절의 영화나 그 시절의 영화인을 알고 있다면 이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다.

무성영화 스타, 시대에 뒤처지다

때는 흑백무성영화의 최전성기. 나오는 영화마다 흥행 대성공을 거두는 슈퍼스타 조지 발렌틴의 새 영화 <러시안 어페어>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객석을 가득 매운 관객들. 영화는 흑백에 무성이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조지는 러시아 군인들에게 잡혀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힌다. 그런데 그의 파트너 우기(강아지)가 그를 깨워 감옥을 빠져나온다. 총을 쏘며 쫓는 적들을 뒤로하고 비행기를 타고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다.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우레같은(무성이어서 느낌만!) 박수소리. 제작자 짐머는 흐뭇하다. 이번 영화도 대박이라고! 조지는 우기와 함께 무대에 올라 끝없이 인사를 한다. 극장 밖은 팬들로 인산인해. 그 팬들 가운데 페피가 있다. 페피는 인파에 밀려 조지 쪽으로 넘어지고.... 조지는 팬과 함께 다정한 포즈를 취해주고 키스도 해준다. 그런데 그 장면이 (지금도 영향력이 있는 미국 영화산업 전문지) <버라이어티> 1면에 대문짝하게 실린다. ‘초특급 스타와 키스한 이 여인은 누구?’라고. 이후 페피는 우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엑스트라로 영화에 발을 들여놓는다.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짐머가 조지에게 ‘유성영화’란 것을 보여주지만 조지는 코웃음을 친다. “이런 이상한 것을 대중이 볼 것이냐고. 영화는 당연히 무성이어야한다고. 그런데 대중은 이미 무성에서, 악단의 음악연주만 나오는 영화에서, 배우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유성, 토키 영화에 몰려들기 시작한다. 끝까지 무성을 고집하던 조지는 쓸쓸히 영화판에서 밀려나온다. 그런데 한때 그의 열성팬이었던, 엑스트라였던 페피는 토키시대의 슈퍼스타로 떠오른다. 인기와 부와 명예가 연기처럼 사라져가고 비참한 인생이 되어가는 왕년의 스타 조지,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 우상이었던 그를 연모하는 페피. 영화는 그렇게 이어진다.

무성영화시대의 향수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선 먼저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시길. 무성이 막 유성으로 넘어갈 시절의 영화판의 삼라만상이 재미있게 묘사된다. 실버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멋진 영상만으로 대중의 슈퍼스타가 된 수많은 무성시대의 스타들은 ‘소리’가 추가되면서 날벼락을 맞게 된다. ‘확 깨는 소리’, ‘국어책 읽는 예쁜 배우의 발연기’에 대중의 환상도 팍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절에 ‘목소리 대역연기’를 하던 무명의 여배우가 화려하게 스타로 등극하는 유쾌한 뮤지컬이다.

조지는 왜 토키를 거부했을까. 대중이 원하는 새로운 미디어 방식을 왜 거부했을까. 그는 오랫동안 액션연기에 몰입했고 그걸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그것이 자신만의 자산이라고 자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화판에도 시대가 변하고 인물이 교체된다는 사실을 그는 (그 시절에는) 인식을 못하고 인정을 못했던 것이다. 정상에 한번 우뚝 섰던 스타가 낭떠러지로 떨어진 뒤 겪게 되는 심신의 고통은 지대하리라. 장 뒤자르댕이라는 프랑스배우가 연기하는 조지는 그런 쓸쓸한 스타의 뒷모습을 격정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토키시대가 되면서 새로이 대중의 스타가 되는 페피(베레니스 베조)도 흥미롭다. 팬에서, 엑스트라로, 조연으로, 착실히 자신의 캐리어를 쌓아가다 스타가 되는 여배우이다. 그가 신인이었던 시절 조지의 드레스 룸(대기실)에서 옷걸이에 걸린 조지의 옷을 어루만지며 마치 교감이라도 하듯, 영혼의 대화라도 나누듯 춤을 추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교활하고 영악한 팬(신인 여배우)의 이야기는 오래 전 흑백영화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이브의 모든 것>에서 이브(앤 박스터)의 운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지만 앤과 다른 점은 페피가 조지를 진심으로 연모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옷을 쓰다듬는 연민의 손길에서 바로 전해질 정도이다.

<터미네이터2>에서 <아바타>까지. 그리고 요즘 쏟아지는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영화의 기술적 진화가 끝 간 데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년에 <트랜스포머> 4편이 개봉될 즈음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영화란 매체가 이런 것이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시 돌아가서 1895년 프랑스의 한 카페에 모여서 뤼미에르 형제가 틀어준 ‘영화’라는 매체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면서 마치 자신들 앞으로 돌진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기겁하고 열광했던 그 시절의 영화팬의 DNA가 인류에게 간직된 이상 영화팬들은 영화의 기술적, 음향적, 시각적 발전에 곧바로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진화의 매체에서 영원한 것은 ‘인생의 연민’이 그려지는 드라마의 소구력일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사랑은 영원하리라고. 영화가 예술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박재환, 201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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