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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묵시록] DMZ다큐영화제 개막작 리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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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묵시록] DMZ다큐영화제 개막작 리뷰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1.09.28 12:58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에만도 수십 개의 ‘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 매주 새로운 ‘국제’영화제가 어디선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주 경기도 파주에서는 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열렸다. 민통선 너머 접경지역 ‘도라산역’ 역사 내에서 개막식 행사가 열렸다. 다큐멘터리만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DMZ영화제는 분명 매니아적인 -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오덕후스런 - 요소가 있다. ‘DMZ’ 특성상 평화와 자유, 항쟁과 저항 등이 키워드로 잡힐만한 영화제이다. 그런데 출품된 작품을 보면 다양한 시각의, 다채로운 작품이 포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만 해도 북한의 생생한 실상을 고발하는 <김정일리아>가 있는가하면 제주도 강정마을의 투쟁을 다룬 <잼 다큐 강정>이 있다. 모두 100편의 다큐가 상영되었는데 그중 한 편, 개막작을 소개한다.

이번 3회 DMZ영화제 개막작으로는 영국 안토니 버츠 감독의 <재앙의 묵시록>(After the Apocalypse)이란 작품이 선정되었다. 아마도 지난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스탈린의 선물>(▶박재환 리뷰보기)이라는 카자흐스탄 감독의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더 이해되기 쉬울 것이다. <스탈린의 선물>은 카자흐스탄의 너무나 평화로운 작은 마을이 스탈린의 핵실험으로 어떻게 비극의 현장이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재앙의 묵시록>도 바로 그  카자흐스탄이 배경이다. 이곳(은 옛 소련시절 소련의 핵 실험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1945년 미국이 먼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핵폭탄을 터뜨리며 ‘핵 개발’에서 앞서나가자 소련은 뒤늦게 더 위험하고 더 무서운 핵무기 개발에 올 인한다. 바로 이곳에서 말이다. 지난 40년간 얼마나 많은 핵실험을 진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남은 것은 마치 백두산 천지처럼 커다란 호수로 변해버린 거대한 구덩이. 그리고 아직도 방사능측정기기를 갖다 대면 신경질적으로 삑삑대며 최고치를 가리키는 방사능 잔류치. 문제는 이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40년 전에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안토니 버츠 감독은 마치 칼데라와도 같은 거대한 구덩이를 찾은 현지인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찾아간다. 관객들은 (영화소개를 위해 굳이 표현하자면) 조금 이상한 외모를 가진 할머니를 보게 된다. 정상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흉측한 얼굴. 그녀의 딸도 마찬가지 모습이다. 문제는 이 ‘비비굴’이라는 젊은 여자가 막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비비굴은 남편과 함께 이 곳(폴리곤)에서 가축을 키우며 오랫동안 살아왔다. 분명 방사능 낙진을 호흡하듯이 들이쉬고, 오염된 물을 평생 마시며 살아왔을 것이다.


안토니 버츠 감독은 이 지역의 의료실태를 보여준다. 비비굴은 한참이나 차를 타고 나가 병원을 찾는다. 이 지역에서 부인과병원을 운영하는 누르마감베토프 박사(Toleukhan Nurmagambetov)는 줄곧 이 지역에서의 ‘임신’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그의 실험실에서 놀라운 표본을 만나게 된다. ‘실험실의 개구리’처럼 진열된 수많은 낙태/사산아들의 표본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해외토픽’에서나 볼 수 있는 기형의 특성을 갖고 있다.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다. 그리고 낳자마자 버려진 기형의 아기들을 보여준다. 부모의 사랑을 잃어버린 아이들. 팔과 다리가 없는 아이지만 박사를 보며 웃는 것은 여느 아이들과 똑같이 천사의 모습이다. 누르마감베토프 박사는 이 지역 여성들에게, 그리고 임신한 여자들에게 이런 표본과 실제를 보여주며 이 지역에서의 임신과 출산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거의 협박하는 것이다. 실제 박사는 통계치를 들이대며 문제점을 설파한다. 옛 소련 핵실험과학자와 의료진은 이곳 주민의 피해실태를 면밀히, 오랫동안 관찰해왔음도 알게 된다. (즉, 정부가 피해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여기까지 보면서 관객은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곳에서 이루어진 핵 실험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 ‘지역주민’. 그들은 사랑을 할 수도 없으며 자식도 가질 수 없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것을 국가가 제지/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핵의 공포’를 뛰어넘어 인간 본연의 문제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아마도 너무나 많은 불행과 비극을 목격한 누르마감베토프 박사는 직업의식에 혹은, 종교적 사명감에 사로잡혀있는지 모른다. 의외로 카자흐스탄의 의료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 비비굴은 더 큰 도시로 나가 유전자검사를 받아보라는 박사의 요구를 거절한다. 그리고 결국 아이를 낳는다. 어떤 아이? 아주 건강하고 예쁜 정상아이다.

누르마감베토프 박사는 통계치를 읊조린다. 이곳의 기형아 출산율은 아주 높다고. 그리고 이 지역 방사능 낙진은 여전히 위험수위라고. 유전자검사를 꼭 해야 하고 22주가 되기 전에 처리(낙태)해야만 한다고.

아마도 올해 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 누출사고를  매 시 뉴스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와 핵의 공포를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고의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도 알 것이다. 소련은 체르노빌을 경험했고, 미국은 스리마일을, 일본은 1945년의 악몽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후쿠시마라는 실제적 위험을 또 맞이한 것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원전사고가 신뢰도에 큰 타격을 줬지만 여전히 포기할 이유가 안 된다면 원전개발을 지지했다. 게다가 최근 블랙아웃 위기를 경험한 국민으로서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영화(다큐멘터리) <재앙의 묵시록>은 그러한 엄청난 사고, 비극적 사건 이후에 펼쳐지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일상화된 위험과 두려움,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낙태율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에서는 여러모로 씁쓸한 작품임에 분명하다. (박재환, 2011.9.28)

박재환 리뷰 하나더 <체르노빌 관련 다큐>



http://www.aftertheapocalypse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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