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www.kinocine.com 박재환 영화이야기 (페이지 리뉴얼 중)

[최애] 장쯔이 주연, 에이즈시대의 사랑 본문

중국영화리뷰

[최애] 장쯔이 주연, 에이즈시대의 사랑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1.06.10 16:03

중국에 고장위(顧長衛,구창웨이)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장예모, 진개가와 함께 5세대 영화감독 군에 속하는 인물이다. 이 사람은 원래 촬영감독이었다. 장예모(붉은 수수밭), 진개가(패왕별희), 강문(姜文,장원)(햇빛 쏟아지던 날들) 감독의 촬영을 도맡아 초창기 순수 중국문예영화를 세계무대에 알린 사람이다. 그런 고장위가 2005년에 <공작>(孔雀)을 필두로 감독으로 전향했다. 자신만의 영상미학을 온전히 내보이고 싶었으리라. 촬영을 하다 감독으로 뛰어든 사람은 몇 된다. 루위에(呂樂), 유릭와이(余力爲), 그리고 크리스토퍼 도일도 그러한 사람이다. 다행히 고장위가 감독을 한 작품 <공작>과 <입춘>은 꽤 훌륭하다. 그의 세 번째 작품이 최근 중국에서 개봉되었다. 중국의 톱 여배우 장쯔이와 홍콩 스타 곽부성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최애>(最愛, Love For Life 최고의 사랑)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초 <마술외전>(魔術外傳)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개봉을 앞두고 <최애>라는 지극히 대중적인 제목으로 바뀌었다. 순전히 흥행을 위한 제작사의 고려였을 것이다. 개봉 후 5,800만 위안이라는 흥행성적을 올렸다. 이는 순수문예물로서는 중국에서는 톱 클래스에 속하는 좋은 성적이다. 그런데 감독은 나름 불만이 많다. 영화제목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50분이나 뭉텅 잘라내야 했다니 말이다. 50분이나 편집된 작품이라면 사실  그의 영상미학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힘들 것이다.

1990년대 중국 산골마을, 에이즈공포

영화는 1990년대 중국의 한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끔찍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 수십 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이다. 더러운 채혈과정을 거치면서 집단으로 전염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돈 몇 푼 준다는 치츄앤(濮存昕,푸춘신)에게 기꺼이 팔뚝을 내밀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알 수 없는 역병이 돌고 마을사람은 하나둘 죽어간다. 영화의 시작은 바로 그 치츄앤의 아들이 하굣길에 쓰러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는 에이즈라는, 처음에는 원인도 알 수 없던 역병으로 죽은 것이다. 죽기 전에 온몸이 끓어오르는 열병에 시달리다가 말이다. 이 병에는 약도 없으며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분노하며 절망에 빠진다. 치츄앤의 아버지 라오쮸(陶泽如,타오쩌루)는 죄책감에 마을사람에게 말한다. “산꼭대기 버려둔 학교에 갑시다.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당신들을 돌봐주겠소”라고. 그렇게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폐교 건물에 모여든다. 곧 죽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지막 모진 생명을 나누게 된다. 각기 사연이 있다. 짜오(趙自得, 곽부성 연기)는 이 마지막 안식처에 오기 전에 아내에게 담담히 말한다. “내가 죽거든 얼른 아이를 데리고 멀리 떠나 새로 시집가라”고. 친친(商琴琴, 장쯔이 연기)도 이 학교에 들어온다. 남편에게 떠밀려온 것이다. 어느 날 친친의 빨간 외투가 사라진다. 다음 날엔 한 남자의 일기장도 도둑맞는다. 좁은 학교, 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 불신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하지만 빨간 외투를 훔쳐간 남자는 자신이 죽기 전에 사랑하는 아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빨간 옷을 입혀보고 싶었단다. 이런저런 평범한 삶을 살던 1990년대의 가난한 중국 산골마을 사람들이 알지도 못한 채 걸린 에이즈 때문에 하나둘 죽어간다. 곽부성과 장쯔이는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서로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산골짜기에서 비참하게 죽어 내버려지듯 잊히는 것이 싫다. 죽어서 함께 묻히고 싶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질시와 저주, 그리고 동정의 눈빛이 교차한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른다. 함께 목매달아 죽으려고도 해본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정식 발급한 혼인증명서를 가슴에 안고 좋아한다. 그리고 여자가 죽고, 남편도 따라 죽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 영화는 순수한 픽션입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중국의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 것인지 안다. 1990년대 중국 하남(河南,허난)성에서 일어난 경천동지할 그 사건을 다룬다는 것을. 당시 중국에서는 헌혈열풍이 불었다. 인류애에 기인한 아름다운 헌혈 모습은 절대 아니다. 지방 당국에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농민들을 상대로 피장사를 시작한다. 돈 몇 푼에 농민들은 피를 뽑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병이 나돈다. 평화롭던 마을에 집단적으로 역병이라도 돈 듯이 하나둘 죽는 것이다. 이것이 에이즈이고, 비위생적인 채혈방식 때문에 전염된 것이 밝혀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죽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때는 그랬으니깐.


고장위 감독은 이 영화를 당초 제목만큼 판타스틱하게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처음 아이가 죽는 장면,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는 장면 등 계속 이어지는 장면은 마치 한편의 몽환극처럼 그려진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없는 일들을 겪게 되면서 그려지는 수채화처럼 말이다. 우리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중국 배우들의 성실하고, 진솔한 ‘시골연기’가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물론, 중국에서는 나름 유명한 배우들이다) 돼지를 치며 밥을 짓는 아줌마 장문려(蔣雯麗,장원리)는 고장위 감독의 처이다. <입춘>에서의 깜짝 놀랄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 작품에서도 예쁜 여배우 이미지를 완전히 걷어치운다. 중국에서는 엄청난 시청률로 인기를 끈 드라마 중에 <사병돌격>(士兵突擊)이라는 <전우>류의 작품을 봤다면 왕보강이란 특이한 배우를 기억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곽부성은 한때의 아이돌 스타의 기름기를 완전히 빼고 중국문예물에 적합한 날 것의 연기를 보여준다. 아마도 담가명의 <아버지와 아들>이후 연기변신을 확실히 한 모양이다. 장쯔이는 솔직히 <집으로 가는 길>이후 최고의 중국영화 연기를 한 듯하다. 세계적 배우라는 느낌은 전혀 없고, 중국 산골 마을의 빨간 옷 입은 아녀자 연기를 절절히 해낸다.


이 영화를 보면 후반부 장면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곽부성과 장쯔이는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결혼을 하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형(복존흔)에게 부탁하여 혼인증명서를 얻는다. 둘은 아무도 반기지 않는 마을로 가서 자신들의 혼인 사실을 알리며 자축하는 사탕을 돌린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마구 웃는다. 허탈한 웃음일수도, 사랑의 확인일수도 있다. 장쯔이는 절망에 사로잡혀 같은 손에 든 결혼증명서를 서너 번 반복하여 읽는다. “자오쯔드와 상친친은 자의에 의한 결혼임을 중화인민공화국 혼인법의 결혼규정에 부합하여 이 증명서를 발급한다.” (得商琴琴 願意結婚 經審査 符合中華人民共和國 婚姻法關于結婚的規定 發給此證.....)




고장위 감독은 자신의 영화 동료인 유명 영화감독을 카미오로 작품에 출연시켰다. 풍소강, 강문, 륙천 감독이다. 강문 감독은 기차 운전수로 잠깐 낯을 보인다. 그의 흥행작품 <양자탄비>를 떠올리게 한다. 풍소강 감독도 한 장면 나오는데 영화가 50분씩이나 뭉텅이로 잘리면서 풍소강 출연 장면이 통편집되었단다. 륙천 감독은 찾을 수가 없다. (자세히 찾아봐야겠다!)



50분이나 잘려서 그런지 영화는 조금 불친절하다. 아니면 감독의 의도가 그렇게 모호하거나, 덜컹거리는 현실을 담으려고 했든지. 감독의 말로는 당초 이야기를 두 개의 큰 축으로 이끌었단다. ‘곽부성-장쯔이’ 커플의 이야기와 복존흔 이야기로. 복존흔의 역할은 이른바 혈두(血頭)이다. 1990년대 당시 하남성 일대를 휩쓴 채혈열풍의 악당이다. 당시 하남성 정부 차원에서 채혈을 독려했다. 피를 뽑아 제약회사에 파는 구조였고 이런 피장사에 뛰어든 많은 ‘혈두’가 마을마다 있었다. 복존흔이 그런 인물이다. 자기 때문에 마을이 온통 에이즈 공포에 빠졌으니, 게다가 아들마저 죽게 되었으니....  고장위 감독은 곽부성-장쯔이 이야기를 살리는 대신 복존흔 이야기는 대부분 잘라냈다는 것이다. 그 장면이 온전히 상영되었다면 아마도 더 친절한 에이즈 공포극이 되었겠지.


비위생적 피뽑기, 에이즈 확산




이제 1990년 중국 하남성 이야기를 해보겠다. 당시 하남성에서는 ‘혈장경제’(血漿經濟)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헌혈-채혈은 광범위했다. 1990년대라면 중국이 경제 붐을 막 시작할 때이다. 당시 성장은 경제동력으로 돈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미국의 제약회사에 혈장을 제공하는 계약도 따낸 모양이다. 중국은 남아도는 게 사람이고, 넘치는 게 피인 모양이다. 한 사람당 500cc만 뽑는다해도 말이다. 제약회사가 필요한 것은 전체 혈액일 필요는 없는 모양이었다. 나중엔 일단 피를 뽑고 원심분리기로 혈장만 체취하고 적혈구는 다시 헌혈자에게 주입시키는 방식을 이용했다. 이렇게 하면 피 뽑은 사람도 건강하고 일상에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피를 뽑은 농민들은 50위앤(당시 6달러 정도!)의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당시 농민들에게는 ‘피를 뽑으면 건강에 좋다’라는 말이 나돌았단다. 그런데 일단 피를 뽑고, 그 피를 섞고, 고무 호스를 여러 사람이 몇 차례씩 거듭 사용하는 등 비위생적 채혈/수혈이 아무렇지도 않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단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이 엄청난 비극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하남성 전체 7천만 농민 중 10~30%의 농민이 1년에 한두차례 채혈을 하였다고 한다. 1991년 무렵에 광풍이 불었고 1995년경에야 이러한 방식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중국당국은 2001년에야 이러한 사실을 시인했다. 하남성 인구는 1억 가까이 된다. 이주 150만 명이 HIV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에이즈 환자 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 35만에서 50만 명 사이로 추산되고 있다) ‘혈장경제’가 휩쓸던 당시의 하남성 성장은 이장춘(李長春,리창춘)이었고, 위생청장은 유전희(劉全喜,류츄앤시)였다. 이 두 사람은 에이즈 창궐의 1차적 책임자였지만 이후 승승장구했다. (리창춘은 작년 구글에서 자기이름으로 검색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에이즈 천사, 고요결(高耀潔,가오야오제)





그럼 하남성의 에이즈 실태를 처음 파악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한 사람이 누굴까. 고요결(高耀潔,가오야오제)이란 여의사(▶고요결 할머니 블로그)이다. 올해 85살이시다. 1927년 산동 출신의 이 의사는 하남성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1996년 무렵 에이즈 환자를 진료하게 되었다. 당시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었고 당국은 그 이유를 난잡한 성교의 결과로 파악하고 있었다. 동성간 섹스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요결 의사가 보기엔 이상했다. 환자가 전혀 성생활을 할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수많은 환자를 검사한 결과 그녀가 내린 결론은 헌혈과정에서의 전염이란 것을 찾아냈다. 고요결은 이후 자비를 쏟아부어가며 에이즈 예방활동을 펼친다. 소책자를 찍어 사방에 뿌리며 비위생적 채혈의 위험을 홍보한다. 그녀의 노력으로 비위생적 채혈방식은 중단되고 에이즈에 대한 실태조사가 진행된다. 물론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염되었고 죽어갔는지 통계조차 잡히지 않았다. 6년 동안 100여 개 산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1,000여 명의 에이즈 환자를 직접 만나 에이즈 창궐을 막기 위해 뛰었다. 이후 고요결의 인생은 한동안 여느  ‘중국 민주화인사’들 처럼  가시밭길을 걸어야했다. 미국과 UN에서는  그녀는 에이즈투사라고 칭송하며  상을 주려고 하였지만 중국당국은 ‘중국의 국가기밀이 까발려진 것에 대한 체면문제’로 그녀의 미국행을 막고, 대중 활동을 저지하였다. 힐러리 클린턴이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보 총리에게 전화로 읍소하며 미국행을 성사시켰다. 그런데 이 고요결(가오야오제)의사의 개인사를 보면 피눈물로 점철된 인생이다. 중국 국공내전 당시 고요결의 아버지는 지주 신분이었고 세 번째 첩의 딸로 태어났다. 공산화 되면서 지주의 딸로 고생한 것은 뻔 한 일. 그러나 의대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의사가 된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의 광풍에서 그녀가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아마 장예모 감독의 <인생>을 보면 문혁 때 의사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실감할 것이다. 1967년 문화당시 고요결은 홍위병에 의해 두들겨 맞고 시체보관실에 감금된다. 홍위병은 죽어라고 가둔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몰래 음식을 넣어주어 고요결은 살아남았단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고요결은 간경화, 심장병, 만성 결장염 등 갖은 병마에 시달려야했단다. 고요결은 정말 중국인민이 기억해야할 인민영웅이다. 영화 <최애>를 보고나서 고요결(가오야오제)의사의 숭고한 직업정신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박재환 2011.6.1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