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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돈황] 이노우에 야스시의 판타지역사소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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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돈황] 이노우에 야스시의 판타지역사소설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1.04.11 11:28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크로드와 둔황>이라는 전시회가 열렸었다. 우리에겐 너무나 잘 알려진 신라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발견된 곳이 바로 중국 감숙(甘肅,간쑤)성 돈황(敦煌,둔황)의 천불동 17호굴이니 어찌 관심 갖지 않을 수 있으리오. 돈황 석굴(정확히는 막고굴 천불동)에서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많은 옛 문헌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국립도서관이 고스란히 땅 속에 파묻혔다가 천년 만에 발굴된 것처럼. 그런데 이 천불동 장경동의 둔황문서가 발견된 것은 도도한 역사에선 허무한 발견과 강탈의 역사인 셈이다. 돈황에는 수백 개의 감동(龕洞,신주를 모셔두는 사당동굴)이 파여 있다. 20세기 들어서 한 도사가 이곳에 터를 잡고 동굴을 소제(掃除)하다가 한 동굴의 한쪽 벽면이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두들기다가 또 다른 동굴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 동굴은 근 천년이나 봉인되었던 문서 창고였던 것이다. 발견 당시 조정(중국 청 정부)은 너무나 멀었고, 역사적 발견을 신경 쓰기에 중국이란 나라는 엉망진창이었던 때였다. 이곳에서 발견된 고문서는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 외국 탐험가, 역사학자에 의해 잇달아 유출되고 말았다. 그 옛날 실크로드 시절, 죽음을 무릅쓰고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불교도승과 상인들, 군인들의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면 이 돈황 석굴 경전의 발견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천불동 장경동의  문서더미에 파묻힌 프랑스 사람 펠리오 (▶위키피디아)


일본의 소설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는 돈황석굴 장경동의 경전더미에 얽힌 장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언제 무슨 사유로 그 동굴에 그렇게 많은 경전이 쌓여있는지를 소설가적 상상력으로 복원시킨 것이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이 작품 말고 이 모래의 왕국을 배경으로 한  <누란>, <칭키스칸> 등의 역사소설을 쓴 작가이다. 물론 <빙벽> 같은 모험소설도 쓰기도 했었다.

송나라 문인, 돈황에 가다



소설 <돈황>의 주인공은 조행덕(趙行德)이다. 송(宋) 인종(仁宗) 때인 천성(天聖) 4년 (서기 1026년) 진사시험을 치르기 위해 당시 수도인 개봉(開封)에 온다. 워낙 문재에 뛰어난 인물이라 쉽게 장원급제하리라 믿었는데 그만 수험장에서 얼핏 잠이 들어 낙방하고 만다. 그는 꿈에 천자로부터 ‘하양(何亮)의 안변책(安邊策)’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다. 이게 뭐냐면 송나라는 건국 이래로 티베트 계의 당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로부터 끊임없이 중국의 서쪽 변방지역을 침탈당하고 있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 대책에 골몰할 수밖에. 조행덕은 ‘하양’이 내놓았던 대책에 대해서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낙심하여 개봉 거리를 맴돌다 길거리에서 한 서역상인이 계집을 팔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조행덕이 보기엔 범상치 않은 여인네 같아 값을 치르고는 여인을 자유롭게 해준다. 이 여자는 감사의 표시로 몸에 지니고 있던 헝겊을 하나 넘겨준다. 헝겊에는 알 수 없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한문자(漢文字)는 아니며 위글(回鶻) 문자도, 글안(契丹) 문자도 아니란다. 글/문자에 관심이 많은 조행덕은 곧 이 글자가 어느 나라의 글자인지 궁금해졌고, 이왕 이렇게 된 바에는 서역으로 가서 그 글자를 알아볼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훌쩍 길을 떠난 조행덕은 영주(靈州)를 지나 오량(五凉)의 땅으로 나선다. 이곳엔 이민족 서하 족이 흥경(興慶)에 수도를 잡아 웅크리고 있었고, 감주(甘州)에는 이름뿐인 한족의 귀의절도사가 있었다. 조행덕은 이곳에서 낙타 대상을 따라나섰다가 서하 군에 붙잡혀 병졸이 된다. 당시 서하는 이덕명(李德明)의 큰 아들 이원호(李元昊)가 군대를 증강시키며 송의 서역 땅을 위협하던 시절. 조행덕은 바로 이 서하군의 주왕례(朱王禮) 부대에서 기나긴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주왕례나 조행덕은 한(漢)족 이면서도 이민족의 편에서 전쟁을 치르는 셈. 소설 <돈황>은 하서 땅, 아니 이 사막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야기를 길게 서술한다.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서 문인 조행덕은 무인 주왕례와 마찬가지로 모래바람에 단련된다. 두 사람은 미스테리한 한 서역지방 여인이 건네준 목걸이를 하나씩 차고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의 무역상인 윗치광(尉遲光)도 그 목걸이를 갖고 싶어 한다. 윗치광은 이 지역을 한때 주름잡았던 우전(于闐)의 윗치왕족의 후예란다. 서하의 이덕명이 죽고 이원호가 왕이 되자 서하는 본격적으로 송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이원호는 사주(沙州), 즉 돈황을 공격한다. 오랜 전쟁에 조국도 고향도 잊은 듯 지내던 조행덕은 불교에 조금씩 빠져들게 된다. 이 서역 땅은 오래 전부터 불교가 흥성했었다. 송도, 이원호의 사하도 공히 불교를 숭상한다. 사주에는 수많은 사찰이 있었고, 이곳에서는 이 지역을 거쳐 간 수많은 나라의 문자로 불경이 번역되고 있었다. 조행덕은 이곳에서 수많은 문자와 수많은 경전을 보았고 자신도 번역작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은 불바다를 의미하고 사하성은 곧 모래먼지 속으로 사라질 운명인 것이다. 조행덕은 마지막 수단으로 사하성의 사찰에 보관된 모든 불경을 낙타 등에 실어 천불동의 한 동굴 속으로 옮긴다. 번역 작업 중이던 수많은 경전을 고스란히. 그리고 동굴은 급하게 봉해지고 역사적 인물은 칼과 불과 바람과 화살에.. 그리고 시간 속으로 영원히 사라진다.....


조행덕은 잊혔지만...


중국에는 3대석굴이 있다. 하남성의 용문석굴, 감숙성의 돈황석굴, 그리고 산서성의 운강석굴. 이제는 모두 유명관광지가 되어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입장료 내면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다. 그 엄청난 규모의 불교유적지를 보면 불심에 귀의하려던 그 옛날의 중국 왕족과 중국 서민들의 뜨거운 불심을 실감할 수 있다. 돈황석굴의 수많은 경전들은 절반은 서구인들이 가져가 버렸고, 뒤늦게 중국(청이 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이 나머지를 수거하였지만 북경으로 옮기는 과장에서 또 다시 수많은 전적이 중간에 사라졌다. 스타인에 의해 영국으로 건너간 것은 런던 대영박물관에, 펠리오가 가져간 것은 프랑스국립박물관에....  어쨌든 그런 식으로 잘 보존되고, 열심히 연구되고 있으니.. 어쨌든 1000년의 밀봉은 가치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돈황석굴>전에서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실물은 아니고 복제품이란다. 두루마리 필사본으로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227행에 5893자이다. 폭은 42센티, 총길이는 358센티란다. 혜초가 직접 쓴 원본은 아닐 테고 누군가가 필사한 것이리다. 그러니... 소설 <돈황>에서처럼 수많은 경전 필사작업, 번역작업의 과정에 포함된 수많은 문서들의 하나인 셈이다.

동굴에서 발견된 경전은 번역본, 혹은 번역 과정에서 나온 낙본/낙절이 부지기수란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회에 <장경동 폐쇄의 수수께끼>라는 설명문이 있었다. 11세기 전후하여 장경동이 폐쇄된 이유는 피난설/폐기설/서고개조설 등이 있단다. 피난설은 외적(서하나 이슬람)의 침입에 대비하였다는 것일 테고.. 폐기설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둔황문서는 당시 이미 실용가치를 잃었기 때문에 폐기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장경동에는 완전한 불경이나 진귀한 물품이 거의 없고, 앞뒤가 결락된 단편들이나 기한이 지난 문서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파편들, 결락된 문서들이지만 그 엄청난 양으로 인해 문서학, 서지학, 고고학적으로 대단한 발견을 한 셈이다. 특히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더욱 흥미롭다. 혜초의 책에 대해서는 따로 많은 책이 나왔지만 파란만장 정수일 교수의 책이 대중적이며 흥미롭다. 담에 이 책도 소개한다.




참,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돈황>은 그 많은 불교 전적들이 어떻게 돈황석굴 장경동에 수장되었는지를 한편의 근사한 역사소설로 완성시켰다. 실제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그 지역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2200년 전에 한무제의 명을 받고 서역경락에 나섰다가 흉노의 포로가 되어 수십 년을 이국땅에서 고생한  장건(張騫)의 이야기를 소설로 읽어보고 싶어진다. 참, 내가 읽은 <돈황>은 한진출판사에서 1981년에 발간한 최준호 번역본이다. 책이 오래되다보니 누렇게 바랜 종이가 떨어져 나갈만큼 책에 담고 있는 내용만큼 흥미로운 상태이다. 이번 전시회에 가니 로비에서 이 소설책도 있었다. 문학동네에서 <둔황>이라는 제목으로 임용택 씨에 의해 재번역 출간된 것이다.   (박재환, 201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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