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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리뷰

[검우강호] 어찌 강호를 쉽게 떠날 수 있으리오~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0.10.18 15:39



<검우강호>는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정통 ‘무협강호 드라마’이다. 원래 ‘강호’(江湖)라는 말은 무협과는 떼어 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심오한 용어이다. ‘홍콩 느와르’의 영향으로 흑사회(조폭)무리를 ‘강호’라고 인식들 하지만 인간사바세계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강호’는 어떤 살벌한 인간세계, 칼과 표창이 날아다니는 녹림의 최전선을 의미한다. 하지만 강호를 다룬 여러 영화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에 이런 게 있다. “강호를 떠나겠다지만 강호가 어디기에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김용의 소설 <<소오강호>>를 보면 무협(무술)계의 절대고수가 여러 무파의 최고수들을 모셔놓고 ‘금분세수’(金盆洗手) 이벤트를 펼치는 것이 있다. 천하에 위명을 떨치는 각 무파의 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금 세숫대야의 물로 손을 씻고는 “그동안 피와 복수가 횡행하던 이 무림에서, 이제 깨끗이 손을 씻고 완전히 은퇴하여 앞으로는 경치 좋은 곳에서 농사나 짓고 시나 읊으며 여생을 보내려하오~”라는 식으로 공식 은퇴식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수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했으리오. 그에게 복수의 손길을 노리는 자가 또 얼마나 많을까. 사부의 복수를 위해,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를 위해 평생을 칼을 갈았을 사람이 줄을 섰으리라. 무협 작품의 제 1조건은 바로 복수인 셈이다. 명분도, 이상도, 희망도 없다. 따지고 보면 단지 아비의 복수, 스승의 복수라는 명쾌한 이유만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절대 동력인 것이다.

 천하의 고수,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검우강호>도 검이 비처럼 쏟아지는 강호에서 이루어지는 ‘복수의 드라마’이다. 옛날에 서역의 천축(天竺)에서 한 고승이 중국으로 건너온다. 라마 대승이다. 엄청난 불심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굉장한 무술고수이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시신을 둘러싸고 유래없는 쟁탈전이 벌어지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으리오. 그의 시신은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나뉘어져서 세상에서 사라진다. 마치 사라진 성궤처럼. 수백 년이 지난 뒤 강호엔 이런 이야기가 떠돈다. 라마의 시신을 모두 손에 쥐는 자는 엄청난 ‘포스’를 가질 수 있다고. 최고의 무술대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지의 온갖 무파들이 소문을 듣고 나선다. 그중에는 흑석(黑石)파도 있다. 이들은 조정의 한 재상 댁을 급습한다. 재상을 죽이고, 그를 막아서는 아들(장인봉)까지 살해한다. 그런데 이 작전에 나섰던 세우(細雨)가 그 반쪽 시신을 갖고는 강호에서 표연히 사라진다. 흑석파 두목은 부하들을 이끌고 세우를 찾아, 그리고 라마고승의 나머지 반쪽 유체를 찾아 강호를 뒤진다.

세우는 얼굴을 바꾼다. (일종의 성형수술) 그리고는 한적한 마을에서 조용히 은거하며 산다. 그녀가 그렇게 맘을 먹은 것은 소림사 출신의 승려 녹죽(綠竹) 때문이다. 녹죽은 세우에게 “네가 익힌 벽수검법에는 4곳의 허점이 있다. 진정 고수를 만나게 되면 넌 죽은 목숨”이라며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준다. “유한 것은 강한 것으로....” 식의 알 듯 말 듯 한 비결을. 녹죽은 세우의 칼날을 가만히 받아들이며 “강호의 복수는 이러하다. 내가 너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길 바랄 뿐이다.”며 조용히 입적한다.

세우는 얼굴뿐만 아니라 이름도 증정(曾靜)이라고 바꾸고 시골마을에서 영원히 은거하려한다. 그때 그녀 앞에 한 어수룩하게 생겼지만 성실한 남자가 등장한다. 아생(정우성)이다. 둘은 결국 부부가 되지만 여자만큼 남자도 미스터리하다. 흑석파는 세우의 거처를 찾아내고 또다시 칼부림이 일어난다. 그런데 아생의 정체도 드러나는데...  천하제일의 절대 고수가 되기 위한 무림의 욕망과 사바세계의 고통을 잊고 싶어 하지만 끝내 한 가락 인연에 연연하는 인간만사가 폭풍우처럼 펼쳐진다.

■  대만영화계의 탄탄함

이 영화는 오우삼 영화로 홍보를 많이 했는데 오우삼은 제작에 참여했다. 감독은 대만의 소조빈(蘇照彬,수자오빈)이다. 소조빈은 오래 전 <운전수의 사랑>(같은 제목의 태국영화도 있지만 이건 대만영화이다)이란 소품의 시나리오를 썼던 사람이다. 일본 여배우(미야자와 리에)가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소조빈은 이후 <더블 비전>, <실크>(詭絲) 등의 독특한 시나리오를 썼다. 당연히 <검우강호>의 시나리오도 소조빈이 썼다. 오우삼의 느낌이 강한 것은 아마도 <페이스 오프> 때문일 듯. 멋진 무협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화려한 액션, 배우들의 아우라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와호장룡>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삼박자가 탄탄하다.

영화의 구성은 그동안 사라졌던(?) 무협의 정수를 충실히 따른다. 부모나 사부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나선 자들이 있다. 그들은 무림을 평정할 수 있는 절대 상징물- 그것이 청명검이 되었든, 규화보전이 되었든, 이처럼 라마고승의 시신이 되었든- 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암투와 대결을 펼친다. 결정적으로 강호를 떠나고 싶어 하는 고수는 결코 떠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알고 보니) ‘죽여야 하는 원수가 바로 자기의 연인이었다니...’하는 충격의 반전도 잘 꾸며져 있다. 이 영화에는 김용의 <녹정기>에 등장하는 절대고수 환관이 나오고, 조직내부의 변절도 등장하는 등 다양한 인간관계가 흥미를 더한다.

액션은 <와호장룡>의 고요함과 서극 영화에서 보게 되는 화려함이 교차한다. 액션감독은 동위(董瑋)가 맡았다. 서극의 <칼>,<칠검>에서 선보인 휘황찬란한 액션 장면이 그의 실력이다. 이 영화에서도 심심찮게 수려한 액션씬을 볼 수 있다.

 역시 무협영화의 정수는 출연 배우들의 면면이다. 양자경은<와호장룡>에서 장쯔이에게 밀린 히로인 역할을 여기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녀 역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강호를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측은한 인간의 굴레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흑석파 두목 왕학기(王學圻,왕슈에치)의 연기는 최고이다. 특히 한 순간에 절대고수에서 환관의 고통으로 떨어지는 순간 보여주는 그의 일그러진 표정은 한편의 드라마이다. 환관으로서의 특별한 연기는 <동방불패>의 유순 이래 최고이다! 얼굴이 바뀌기 전의 세우 역을 한 배우는 임희뢰이다. 정우성이 맡은 (수술 전의) 장인봉을 맡은 배우는 곽효동이다. 여문락과 대립인도 각기 사연이 있는 드라마틱한 역할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임희뢰만큼 아주 잠깐 등장하는 협녀로 오패자가 있다. 대만의 탑 클래스 모델연에인이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맹랑한 역은 서희원일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육탄공세도, 스승에 대한 배신도 마다않는 역할을 무난히 해낸다. 물론, 정우성의 연기도 멋있다. 정우성의 ‘중국어’ 연기도 괜찮은 편이다. 정우성은 오래 전 유덕화/장국영이 나왔던 영화 <상해탄>에 아주 잠깐 등장한다. 그리고 최근에 <데이지>, <호우시절>에 이르기까지. 정우성은 이제 중국시장이 낯설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무협물이 재미있으려면 근사한 칼싸움과 처절한 복수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는  한없이 애틋한 인간관계가 나온다. 소림사 출신의 녹죽은 세우에게 그런다. “죽으면 돌다리가 되리라. 500년을 햇빛을 보고, 500년을 비를 맞으며, 500년을 바람 속에서 당신이 건너가기를 기다리리다.”고. 반면 흑석파의 두목은 배신한 여제자를 산채로 다리 밑에 묻는다. 여기서 내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라고. 

천하의 고수가 되기 위해선 주화입마(走火入魔)하거나 자신의 ‘거시기’를 잘라버리는 설정은 무협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다시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 옛 사람의 시신에 목숨 걸다니... 강호는 역시 난해하다. (박재환 2010 10.18)

** 양자경의 극중 이름은 세우(細雨)이다. 영화 <好雨時節>에 나왔던 정우성은 정말 ‘급시우’(及時雨)이다. 이 장면은 많은 걸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난 .. 이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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