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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백과 축영대] 저 낭자, 남장했어요~ 본문

중국영화리뷰

[양산백과 축영대] 저 낭자, 남장했어요~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0.09.08 10:48


지금 소개하려는 영화는 1963년에 만들어진 홍콩 쇼 브러더스의 영화 <양산백과 축영대>(梁山伯與祝英台)이다. ‘양산백’(량산보)이라는 도령과 ‘축영대’(주잉타이)라는 ‘낭자’의 이룰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양산백-축영대’, 이른바 ‘양축’ 커플은 중화권에서는 우리나라의 ‘이몽룡-성춘향’ 커플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캐릭터라서 여러 차례 영화와 TV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등으로 만들어졌다. 서극 감독에 의해 <양축>이라는 애니메이션도 있고, 일본작가의 ‘망가’도 있다. 이 영화를 오늘 갑자기 소개하는 것은 KBS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은 정은궐의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박재환 소설리뷰보기)을 극화한 것이다. 이 소설은 조선시대, 한 가난한 양반집 규수가 어찌하다보니 남장을 하고 ‘여자에겐’ 금단의 학당인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소동과 유생들의 알콩달콩의 연애담을 그리고 있다. 낭자 김윤희의 정체(여자라는 것)를 모르는 도령 이선준은 (동성인줄로만 오해하면서도) 점점 끌리는 것을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이다. 그런데 <양산백과 축영대>도 유사한 설정을 하고 있다. 여자가 남장을 하고 학당에 들어가고, 같은 클래스메이트인 줄만 알고 3년을 보내고 나서야 그 동안의 정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고,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는 드라마이다.

축 낭자, 서당에 들다

축영대(주잉타이) 낭자는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부모에게 매달려 좋은 학당에 보내달라고 조르지만..“어디 감히 여자가...”라는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앓아누울 지경. 이 때 한 의사가 진맥을 하고는 “이 낭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소원대로 학당에 보내는 것뿐이오. 남장을 해서라도...” 아버지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들통 나면 어떡하냐고 말한다. 그러자 이 의원은 “절대 들통 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분장을 지운다. 알고 보니 의사라는 작자는 남장을 한 축낭자 자신이었다. 결국 축 낭자의 애비는 딸의 향학열을 받아들일수 밖에. 축 낭자는 시녀 은심(銀心)과 함께 ‘최고의 명문학당’이 있는 항주로 향한다. 도중에 웬 잘 생긴 서생을 한 명 만난다. 양산백(량산뽀) 도령이다. 양 도령도 항주서당으로 가는 길. 향학열에 불타던 둘은 곧장 의기투합하여 금란지교(형제애)를 맺는다. 둘은 서당에서 열심히, 열심히 공부‘만’ 한다. 3년을. 양 도령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는 축 낭자. 하지만 눈치 없는 양산백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축영태가 남자인줄로만 안다. 축영태는 집으로 돌아가는 날 어렵게 에둘러 자신의 속마음을 비친다. “우리 집에 아홉째가 나와 똑같이 생겼어요. 둘이 어울릴 것이외다.” 축 낭자가 집으로 떠나간 뒤에 양산백은 학당 스승의 사모님을 통해 그가 ‘여자’였음을 알게 된다. 기쁜 마음에 축 낭자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축 낭자는 이미 마을 권세가의 자제 마문재(馬文才)와 혼례를 올리기로 양가 어른이 결정한 상태. 축 낭자는 아버지에게 자신은 이미 맘에 담아둔 남자가 있다고 말하지만 강권에 시집가게 된다. 둘은 몰래 만나 아쉬운 눈물을 흘린다. 결국 양산백은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만다. 양산백은 죽기 직전 자신을 축영대가 시집가는 길목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긴다. 축 낭자의 꽃가마가 양 도령의 무덤 옆을 지나갈 때 하늘이 캄캄해지고 일진광풍이 휘몰아치며 양 도령의 무덤이 둘로 쫘~악 갈라진다. 축 낭자는 그 무덤 속으로 뛰어든다. 무덤은 다시 합쳐지고.. 이 때 나비 한 쌍이 무덤에서 나와 나풀나풀 하늘로 날아간다.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 하늘에서 맺어진 것이다.

양 도령, 축 낭자 실존인물일까?

<워낭소리>로 유명한 경북 봉화에 가면 찾아가볼만한 곳이 몇 있다. 그 중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 가면 계서당(溪西堂)이란 오래된 가택이 있다. 이 고택은 소설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실제인물로 알려진 성이성(成以性, 1595~1664) 선생이 1600년대 초에 세운 집이란다. 성이성 선생이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른 동안 그곳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 년 뒤에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을 다시 찾았을 때 옛 연인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죽고 없더단다. 이런 이야기가 결국 <춘향전>이란 소설의 모태가 된 것이다. <춘향전>의 역사 찾기에는 남원과 한양만 중요한 게 아니라, 저 봉화에도 흔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사례이다.

전래동화나 소설, 설화의 원전, 출처, 모태를 찾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홍길동이나 심청의 고사의 근원을 찾는 것은 민속학자, 국문학자, 역사학자, 문헌학자의 즐거운 고증학이다. ‘양축’의 경우도 그러하다. 중국에서는 ‘양축’의 실존인물을 찾는 작업이 1,000년은 더된 작업이다. 그래서 꽤 많은 실적을 쌓았다. 오늘날 중국에는 ‘양축’관련 마을이 ‘적어도’ 아홉 군데는 있다. 각 마을이  제각기 역사적 근거를 주장하고 있다. 도령과 낭자를 기념하는 기념비, 묘비, 사택, 기록, 유적이 즐비하게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양축묘유지... 묫자리가 있었다는 터에 세워놓은 비석. 중국엔 이런게 많다.^^

많은 역사서, 옛 사람들의 문헌, 비석 등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양축’의 이야기는 대체로 동진(東晉, 서기 317~420) 시대의 일로 사료된다. 사건의 발생지점(?)은 오늘날 하남(河南,허난)성 마점시 여남현 마향진이다. 이 동네에는 양축의 묘, 양씨/축씨/마씨 집안의 유적지, 원앙지(연못) 등이 남아있다. 놀랍게도 이런 유적지는 중국 전역에 걸쳐 아홉 곳이나 있다니 놀랄 일이다. 물론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도는 없다. 진짜 묘지인지 알수도 없다. 그렇게 전해져올 뿐이니 말이다. ** 이몽룡이 실제는 성이성 선생이었고, 나중에 성춘향과는 재회하지 못했지만 소설은 소설대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양축>의 경우 무려 1800년 전의 중국 이야기이니 말이다! ** 후대에 세워졌을 수도 있다. 산동성 제녕시 추현에서 발견된 양축묘에는 유일하게 묘비도 있다. 묘비에는 843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내용은 지금 전해지는 ‘양축 고사’와 유사하다. 글공부 좋아하던 축 낭자와 양 도령의 이야기이다. 물론 또 다른 역사기록에는 두 사람이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던 인물로 묘사된 경우도 있다. 처녀총각으로 죽었기에 후대에 일종의 영혼결혼을 시켜서 오늘날 ‘양축 러브스토리’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1,000년 이상 전해지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갈수록 정제되고, 미화되고, 육화되고, 결국.. 영화화된 셈이다.

영화에서는 축영대가 아비의 강권에 의해, 혹은 정략적으로 마을 실력자의 아들 마문재와  억지결혼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양 도령과 축 낭자를 뒤쫓다보니 마문재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몇 년 전 중국에서 나온 최신판 <양축> 만화에서는 나쁜 놈(?)으로만 묘사되던 마문재가 꽃미남에 쿨 가이로 그려져서 화제가 되기도 했단다. (역사의 재해석! 역사인물의 재창조!! 콘텐츠의 재발견!!!)

황매조 스타일의 뮤지컬 <양축>




쇼브러더스 영화 <양산백과 축영대>는 일종의 뮤지컬이다. 중국 고유의 문화유산인 공연예술의 영향을 받았다. 바로 ‘황매조’(黃梅調)이다. 중국영화에서는 이런 지방 고유의 문화유산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패왕별희>에서는 경극(베이징 오페라)을, 장예모의 <인생>에서는 그림자극인 ‘피영희(皮影戱)’를, <천리주단기>에서는 ‘눠시’(儺戲/傩戏)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황매조’는 중국 ‘호북-안휘-강서’ 삼성 사이에 걸친 지방에서 성행한 희극이다. 주요 지역이 황매현(黃梅縣)이어서 황매조라고 한단다. 이 지역 사람들이 차(茶)잎을 따며 불러서 채차희(採茶戱)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경극, 월극,예극, 평극과 함께 5대 극의 하나이다. (이 다섯 가지의 차이는 정말 전문가라야 설명가능하기에 패스~)

1960년대 초에 홍콩에서는 황매조 영화가 대유행이었다. (아마도 할리우드 뮤지컬의 영향이리라) 영화사들이 앞 다투어 황매조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당시 홍콩에서는 쇼브라더스가 아닌 업계 라이벌인 국태(國泰)영화사에서 먼저 양축을 찍기 시작했다. ‘국태’는 당시 톱스타였던 이려화(李麗華)와 우민(尤敏)을 캐스팅하였다. 감독은 엄준(嚴俊)이었다. 당시 홍콩영화판 최고의 메이저 스튜디오는 ‘쇼 브러더스’였다. 쇼 브러더스는 왕우나 강대위의 무협/활극/액션/쿵후 영화의 명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영화사는 수많은 장르의 영화를 마구잡이로 만들고 있었다. 당시 쇼 브러더스의 탐욕스러움은 <양산백과 축영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태의 움직임에 대항하여 곧바로 <양축>제작에 뛰어든다. (이런 경우는 많다. 충무로에선 1961년에 ‘신상옥 감독+최은희’와 ‘홍성기 감독+김지미’의 춘향전이 동시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할리우드에선 1998년 혜성충돌을 다룬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이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쇼 브러더스는 ‘양축’ 벼락제작의 중임을 이한상 감독에게 맡겼다. 당시 이한상 감독의 조감독이 호금전이었다. 호금전은 이번 프로젝트가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보았다. ‘황매조’를 이해하지 못했고, 사실상 시간이 너무 없었고, 라이벌 영화사가 선택한  이려화와 우민은 최고의 톱 캐스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쇼 브러더스는 양산백과 축영대가 누군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이한상이나 호금전을 대단한 영화감독으로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양축> 제작 당시에는 조금 황당한 면이 있었다. 호금전이 도저히 못 찍겠다고 버티자 이한상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단다. “괜찮아, 그냥 대강 찍으면 되!”였단다. 두 사람은 결국 촬영을 강행한다. 둘이서 적당히 반씩 나누어 각본을 써가며 촬영을 시작한 것이다. 세트 짓느라 열흘. 그 사이 각본 대강.. 영화는 한달 만에 완성된다. 뒷이야기도 무성하다. 세트도 후다닥, 캐스팅도 후다닥, 촬영도 후다닥 진행하다보니 허점투성이인 것이다. 촬영 중에 서당 장면에 근사한 한자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호금전이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당(唐)시였다. 당나라 이전, 동진시대 이야기인데 말이다. 세트 고칠 시간도 없으니 나온 이한상 감독의 해결책은 “클로즈업 하지 마!”였단다. 이렇게 엉터리(?)로 만든 영화였지만 다행히(!) 라이벌 국태영화사 것보다 먼저 개봉되었다.  홍콩에서의 흥행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양축> 대만에서의 대성공

홍콩에서의 흥행부진과는 달리 대만에서 대박이 터졌다. 원래 당시 대만은 홍콩영화의 최대시장이었다. 대만에서는 경천동지할 화제를 불러 모았다. 몇 해 전 홍콩에서 발매된 <양축>DVD에는  당시 대만에서의 <양축> 인기를 엿볼 수 있는 셔플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에서 ‘양산백’도령을 맡은 능파(凌波,링뽀)의 인터뷰를 보면 흥미롭다. 주연배우들이 대만을 홍보차 방문했을 때 공항에서 극장까지는 마치 아폴로 우주비행사의 개선 카프레이드처럼 인파가 가득하다. 대만에서는 몇 달 동안 상영되며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린다. 이 영화를 10번, 20번 본 사람이 나타날 만큼 팬덤현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하나 기억할만한 것은 1963년 주연배우들의 대만방문에 맞춰 대만의 TV방송사가 황매조 노래대회를 열었는데 그때 1등을 차지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등려군(등리쥔)이다. 그때 그녀 나이 10살 이었다.


비운의 여주인공 축영대 낭자 역을 맡은 배우는 ‘락체’(樂蒂,러띠)이다. 락체의 본명은 해중의(奚重儀)인데 아명(兒名,어릴 때 집에서 불리던 이름)이 ‘여섯째’(六弟, 루띠)라서 나중에 연예계에서 예명으로 삼았단다. 이 여배우는 초절정 인기를 누렸지만 31살에 자살하고 만다. 당시 홍콩/대만 영화팬들은 충격을 받았다. 영화에서 양산백 도령 역을 맡은 배우는 능파(凌波)이다. 놀랍게도 ‘여자 배우’이다. 락체(러띠)가 이미 스타덤에 오른 여배우였던 것에 반해 ‘능파(링뽀)’는 신인이었다. 정확히는 무대 뒤에서 황매조 노래를 대신 불러주던 연기자출신이다. <양축>의 대박이후 스타덤에 올랐다. <양축>은 상도 많이 받았는데 대만의 금마장영화제에서 락체(러띠)는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능파(링뽀)는 (상 주기가 애매하여) 특별연기상을 받는다.

쇼브러더스의 고전 <양축>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인 중국 동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양축> 이야기는 중국인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소재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캐릭터에 대한 해석도 다양해지지만 결국 금단의 영역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감정을 키우다가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는 스토리 전개는 계속된다. 비극이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이 스토리의 특징이고 말이다. 쇼브러더스의 <양축>에서 서당 장면에 이런 게 있다. 스승이 앞 문장을 이야기하면 학생이 뒷 소절을 외는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遠之則怨
유여자여소인 위난양야 근지즉불손원지극원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을 한다.)

<논어>에서 고답적인 남존여비 사상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부분이다. 양도령이 이 문장을 읊는다. 나중에 남장한 축낭자가 이걸 빌미로 갑자기 귀여운 ‘페미니스트’ 논쟁이 붙는다. 영화는 영화일 뿐. 그리고 시대상을 염두에 두고 보아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영화는 문학적으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역사적 고찰 차원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물론 뮤지컬 ‘황매조’ 감상 차원에서도 흥미롭다. (박재환 20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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