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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니모] 아메리칸 인디언의 비극 본문

Book

[제로니모] 아메리칸 인디언의 비극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0.08.05 16:50

 

**** 먼저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병헌과 최민식이 출연하는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가 워낙 잔혹한 장면이 많아서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단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영화에서는 시신의 일부를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과 인육을 먹는 장면, 절단된 신체를 냉장고에 넣는 장면 등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한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아마 딸을 잃은 아버지가 복수심이 그렇게 잔혹하게 묘사된 모양이다. 영화를 개봉시키려면 편집을 다시 하여 수위를 좀 낮춰 ‘18세 관람가’를 받아야할 것 같다. 제작을 겸한 김지운 감독의 딜레마이리다. 그런데 사람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독립군)을 잔인하게 다룬 일본 순사에 대한 우리 식(1970~80년대 영화감독의 미학) 제작방식은 이렇다. 독립투사를 매달아놓고 채찍질을 하거나 손톱을 뽑아 고춧가루를 뿌리는 수준이다. 그런데 같은 시대를 다룬 북한영화를 잠깐 본 적이 있다. 일본 놈들이 말을 타고 와서는 독립군이 숨어있는 집을 불태운다. 아녀자가 울고불고 난리이다. 일본순사는 총검으로 울고 있는 아이 하나를 탁~ 찍어서는 불구덩이로 집어던져버린다. 그 잔인함! 인성의 잔인함일까, 표현방식의 잔인함일까. 인디언과 서부의 악당들을 다룬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

 태고에 드넓은 대지가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버팔로가 유유히 풀을 뜯어 먹고 산다, 산과 들과 물. 자연을 벗 삼아 평화롭게 자자손손 살아오던 원주민이 있었다. 어느 날 이 땅에 총칼을 앞세운 유럽 사람들이 들이닥쳤고, 이 땅은 유럽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그 땅위에 살던 사람들은 ‘인디언’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땅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건국되었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대륙의 서쪽으로 내몰리더니, 조금씩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집단수용소에서 자유를 억압당하고 비주류로 사라져갔다.

그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다룬 20세기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하나같이 잔인하고, 무식한 폭력모리배로 등장한다. 거의 벌거벗은 그들은 말 위에서 괴성을 내지르며 평화로운 백인마을에 몰려와서는 순박하고 정의로운 백인들을 학살하고, 양민들을 겁탈하고, 도적질하며 불태워버리는 인류문명의 적으로 묘사된다. 나중엔 백인마을의 술집 문밖에서 엎어져 있는 술주정뱅이 하류인종으로 나온다. 과연 그런가? 나중에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시각교정이 이루어진 새로운 영화가 등장했다. ‘나쁜 인디언’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이들 영화를 ‘수정주의 웨스턴’이라고 한다. 왜 인디언들이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하느냐는 것이다. 자기 땅을 빼앗기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내쫓겨 총칼아래 비참하게 멸족의 길을 걸었던 인디언들의 실질적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19세기 중엽, 백인들이 서부로 몰려오면서 인디언을 ‘박멸’할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난 인디언 영웅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용맹함은 아직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대표적인 인물이 제로니모, 시팅불, 크레이지 호스, 작은 거인 등이다. 이 중 제로니모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하나 소개한다. 소설 <제로니모>(포리스트 카터 지음/아름드리미디어)이다. 이 책은 할리우드 웨스턴에서 왜곡되거나, 조작된 이미지를 걷고, 역사에 남은 기억과 그들 종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다. 그들을 기억하라!

제로니모(1829~1909.2.17),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다


http://en.wikipedia.org/wiki/Geronimo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알 수 있듯이 인디언들의 작명법은 꽤나 재미있다. 치리카후아 아파치족의 ‘제로니모’의 원래 이름도 그러하다.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물과 진흙과 모래의 보살핌을 받으며 인디언 마을에서 무럭무럭 자랄 때 그의 이름은 ‘고크라예’이다. ‘하품하는 남자’라는 뜻이다. 평화로운 인디언 부락에서의 나무 그늘에서 귀엽게 하품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고크라예는 자라면서 평화로운 자신의 부락에 침입해오는 외부의 세력과 맞서 싸우게 된다. 고크라예의 마을에 처음 쳐들어온 것은 멕시코 군인이었다. 이들은 인디언 부락을 맘껏 유린한다. 학살하고, 강간하고, 불태우고....  인디언 여자와 어린 아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죽어갔는지는 정말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다음 장면은 소설에 나오는 아주 잔인한 장면임)

사브르(칼)를 든 군인의 손이 숙련된 솜씨로 반원을 그렸다. (어린) 탈라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머리를 잃은 통통한 몸은 여전히 엄마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또 한 걸음. 통통한 두 팔을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탈라는 엄마 가까이에서 쓰러졌다.  (지금 엄마는 멕시코 군인에게 겁탈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145쪽)

아기가 시끄럽게 울자 군인이 아기를 하늘 높이 던졌으며, 다른 군인이 창을 치켜들었다.... 이윽고 아기는 겁에 질려 조그만 검은 눈을 크게 뜬 채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빠른 하강 속도에 숨쉬기가 곤란한 듯 아기가 입을 벌렸다. 창끝이 뱀처럼 휙하며 떨어지는 아기를 받았다. 배에서 등 뒤로 꿰뚫은 창대를 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기의 얼굴은 놀람과 충격으로 뻣뻣이 굳어있었다. (146쪽)

그녀(엄마)에게는 창끝에서 꿈틀거리는 아기도, 사브르에 창자가 터져 나온 배를 질질 끌며 엄마 옆으로 기어오려는 레타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군인이 자기 몸 위로 올라온 것도, 심지어 칼이 자신의 조그만 양쪽 젖가슴을 도려내 자기 입안에 쑤셔 넣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알로페는 창끝에 걸린 아기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146쪽)
 
이 장면은 1858년 3월 6일, 멕시코 소노라의 호세 마리아 카라스코 대령이 지휘하는 400명의 멕시코 군대가 아파치 부락을 유린하는 장면이다. 그 때 아파치 남자들은 이웃마을에 가 있었기에 대부분의 아녀자, 노인들이 학살당했다. 고크라예의 모친, 아내, 아들도 그렇게 비명횡사했다. 이에 고크라예는 복수의 길에 나선다. 이미 3세기 동안 인디언들은 스페인 사람, 그 다음엔 멕시코 사람, 그리고 이제 미국사람들과 ‘문명의 생존’을 두고 전쟁을 계속한다.

  고크라예에게 ‘제로니모’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에 대해 이 책은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멕시코 마을 카쉬예의 수호성인인 성 제롬의 기념일 행사가 광장에서 열리고 있었다. 이미 내쫓기는 신세였던 제로니모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부를 죽이고, 추격하는 멕시코 군인들을 거의 몰살시킨다. 그날로 백인사회에 잔혹한 인디언 ‘제로니모’의 전설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그 땅위에는 인디언이 살고 있었지만, 주인 노릇을 하는 사람들의 국적은 바뀐다. 스페인(식민지)에서, 멕시코, 그리고, 또다시 미국으로. 그들은 열심히 인디언들을 몰아낸다. 초특급 성장을 거듭하는 백인들은 생존공간을 서부로 확대시켜나갔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을 어떻게든 ‘처리’한다. 때로는 학살하고, 때로는 문서로 속이고, 때로는 달래면서 인디언 세력을 분리하고, 일정 지역(황무지)로 내몬다.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백인 군인들과 전투를 치른다. 10년, 20년...  겨우 목숨을 유지하던 인디언들은 추위와 병마에 굶어 죽어갔고, 완전몰골이 되어서야 결국 하나둘 미군이 주둔한 요새 앞으로 와서는 항복한다.

백인과의 생존투쟁의 선두에 섰던 지도자 중에는 ‘만가스 콜로라다스’라는 용사가 있었다. 그는 한 평생을 백인들과 싸웠고, 결국 80의 나이가 되어 앵글로 색슨 백인들과 명예로운 평화협정을 맺고 싶어한다. 그는 비무장 상태로 말을 타고는 휴전 깃발을 들고 미군 요새로 들어간다. 요셉 로드만 웨스트 육군준장이 그를 체포한다. 그는 모든 인디언 종족의 말살에 앞장 섰던 인물이다. 만가스 추장은 그날 밤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늙은 추장을 바닥에 쓰러뜨린 다음, 총검을 달구기 시작했다. 그래서 총검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만가스가 누워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그걸로 그의 몸을 지졌다. 노인의 발바닥을 지지는 군인들도 있었고, 배와 성기를 지지는 군인들도 있었다. 만가스가 몸을 비틀며 엎드리자 그들은 등도 지졌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추장을 그런 식으로 밤새도록 고문했다. 만가스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지만 스페인말로 군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는 영어를 몰랐다) 동녘이 터올 즈음, 군인 두 명이 만가스 옆으로 가더니 장총을 어깨에 지탱하고 그의 몸에 몇 번이고 총을 쏘았다. 만가스 콜로라다스는 그렇게 죽었다. (278)

초로의 추장을 그렇게 모욕 끝에 죽인 백인들은 그 시체를 어떻게 했을까? 웨스트 장군은 만가스의 목을 자르라고 명령한다. 머리를 깨서 골수를 파낸 다음, 살갗을 벗기고, 끓는 물속에 넣는다. 그 머리는 워싱턴으로 보내지고, ‘문명화된 동부인들에게 널리 전시된 다음,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보내졌단다.

인류 최고의 문명의 전시장이라는 스미소니언에는 그런 약탈과 야만과 정복의 증거가 들어차 있는 것이다.

소설 <제로니모>는 인디언 영웅 ‘제로니모’의 드라마틱한 삶을 다룬 것이니만큼 잘 만난 영화만큼 흥미롭다. 제로니모는 동족들이 속속 미군에 투항할 때 겨우 몇몇의 용사만을 이끌며 끝까지 게릴라전을 펼친다. 그의 탁월한 전술은 도처에 빛을 발한다. 그가 미군을 유인하고, 매복 작전을 펼쳐 미군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쾌감을 느낄 정도이다.

 몇 안 되는 동족을 데리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끊임없이 미군을 괴롭히던 제로니모는 1886년 투항한다. 제로니모의 항복(조건)과 관련하여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제로니모를 잡는데 큰 공을 세운 탁월한 스카우트(정찰대)가 한 명 등장한다. 톰 혼(Tom Horn)이라는 인물이다. 이 사람도 서부시대 풍운아 중의 한 명이다.  미군 정찰병을 박차고 나서는 소몰이꾼, 보안관을 전전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교수형 당한다.

그리고. 제로니모가 죽은 뒤의 이야기

제로니모는 이후 전쟁포로 신분으로 미군 요새/수용소/거주지에서 감시 하에 살아간다. 이미 서부를 다 차지한 미국 백인들은 이 위대하고도 잔인한 인디언 용사에 대해 호기심과 경탄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1904년, 그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도 참가한다. 구경꾼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디언 전사’로 관람의 대상이 된다. 그는 자신의 사진이 실린 카드에 싸인을 해서 구경꾼에게 팔기도 한다. 그는 1909년 2월 17일, 79세의 나이로 오클라호마의 미군 실 요새(Fort Sill)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둔다. 죽고 나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가스 콜라라다스처럼 스미소니언으로 보내졌을까?

 제로니모는 실 요새의 아파치 인디언 전쟁포로 묘지에 묻힌다. 일단은.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예일대학생이 이곳 미군 요새에서 자원복무한다. 그들은 ‘해골과 뼈’(Skull and Bones)라는 교내 비밀 서클의 멤버였다. 그들은 제로니모의 묘를 파헤치고 제로니모의 해골과 대퇴부 뼈 조각을 훔쳐갔단다. 그 멤버 중에는 프레스코 부쉬라는 학생도 있었다. 죠지 부쉬 미국 대통령의 할아버지이다!  2009년에 제로니모의 후손이 미국 대통령과 미국 정부에 탄원서를 내고 한편으로는 소송을 건다. 아파치 영혼의 지도자인 제로니모를 고향마을에 묻히게 해달라고. 예일대학 측에는 그 뼈를 돌려달라고. 역사학자들은 이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대해 신뢰성이 없다고 말한단다. 실 요새에 있는지, 예일대 망나니 학생들이 빼돌렸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여하튼.. 불쌍한 영혼임에는 분명하다.

미국은 그렇게 건국되었다!!!!!!!  (박재환 201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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