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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을 존중한다: 주] 정지민 vs. PD수첩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0.06.04 17:00



주말에 평촌도서관에 갔다가 신간코너에 이 책이 꽂혀 있었다. 이 책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읽어봐야지 마음먹고 있었던 책이다. 그리고 지금 읽.었.다. 정말 ‘미친 듯’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광우병 파동도 지금은 너무나 조용하다. 얼마 전 피디수첩 방송 2년을 맞아 (내가 알기로는) 모든 언론매체들이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데 유독 조선일보에서만 <2년을 되돌아본다> 류의 기사를 실었다. 그러고 나서야 그 보도에 이름이 내걸린 사람들이 “조선일보 죽어라”라는 반응이 잠깐 나왔지만 그것도 벌써 잠잠하다.(물론, 인터넷 찾아보면 뒷북 많다)  <광우병-PD수첩>논란은 현재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가졌고, 어떻게 결론지어져야 정말 대한민국이 국격이 있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다 읽어보니 기대한 것 이상으로 ‘원더풀’했다. PD수첩을 씹는다거나, 한국 진보세력의 어줍짢은 실력을 까발려서 그런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면면을 고스란히 내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지민 이 여자가 무섭다. 이런 필력이 부러울 따름.

먼저, 상황을 복기해보자.

광우병은 어떻게 되었나? 모른다. 협상이야 MB랑, 당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알아서 잘 했겠지....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이마트 가도 미국수입소가 있는지, 얼마나 팔리는지 모른다. 전혀 없지도 않을 것이고 불티나게 잘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아직도 “수입 소는 군인만 먹고, 청와대는 안 먹고.. 어쩌고” 하는 기사를 보면 짜증난다.

PD수첩은 어찌 되었나. 담당 피디가 물갈이 되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검찰 스폰서>> 편이 보여주듯 한국 사회의 왕소금역할을 하고 있다.

소송은 어찌 진행되는가. 몇 가지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정운천 장관과 PD수첩과의 명예훼손 공방전,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내놓은 소송 등. 사실 우리나라는 방송관련해서는 판례가 적다. 어디까지가 언론의 자유이며, 어디부터가 방송사가 아닌 제작자의 책임인지 같은 기술적이며, 원칙적인 판례가 없다. 방송내용이 잘못되어서 유죄인지 조금의 잘못은 있지만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의도라서) 무죄인지에 대한 컨센서스도 없다. 넓게 보아 아무리 일반적인 방송이라 하더라도 혹 단 한사람만이라도 불편해서 ‘정신적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경우 그 한계에 대한 사례도 적다. 그러니 이번 법정 공방은 우리나라 언론사, 민주발전사, 지성사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종판결이 어떻게 나든 말이다!)

정지민, PD수첩과 싸우다

<<PD수첩>>은 우리나라 피디 저널리즘의 꽃이며, 한국 언론윤리의 최선봉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황우석사건도 그랬고, 스폰서검찰도 그랬다. 그 프로그램이 일군 수많은 위대한 승리 중에 ‘광우병’은 기이한 결과를 이끌었다. 2008년 4월 29일 방송된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는  출범 반년도 안 된 이명박 정권을 거의 파멸로 이끌 만큼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고, 이후 대한민국을 진보와 보수, 국익과 자존, 혹은 거짓과 참 이라는 미묘한 양분법으로 완벽하게 갈라놓았다. 수입소고기를 먹든, 중국산 농약 콩나물을 먹든 관심 없던 ‘불만에 가득한 사람들’은 <피디수첩>을 보고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촛불을 들고, 유모차를 끌고, 메신저로 내용을 전파하고, 청와대를 향해 외친다. MB정권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런 일이 2년 전에 있었다니... 한국은 참 소용돌이 속의 나라이다.

MB가 전열을 가다듬고 국민들을 추슬러야할 때 논쟁은 계속되었다. 그 논쟁의 한 복판에 ‘정지민’이라는 뜻밖의 인물이 등장했다. 방송작가로 알려졌다. 많고 많은, 그렇고 그런 방송작가의 한 사람? 광우병 논란 초기에 정지민의 등장은 의외였다. 그녀의 주장은 이랬다.

"내가 번역/감수해 준 것과 피디수첩이 방송에서 내보낸 것은 다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PD수첩>은 일부 동영상과 영어로 된 문장들을 왜곡하여 전체적으로 미국 소는 잠재력 위험을 지닌 아주 무서운 존재로 만들어버렸다고 주장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방송은 어떻게 만들고, 작가(번역/감수)는 어떤 일을 하고, 사실에 대한 저널리스틱한 표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사태가 악화될 때 참언론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한국에서의 대세는 “촛불을 든 사람은 MB가 싫다”에 초점을 맞춘다.

누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판단할 사람도, 그 근거도 없는 불행한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정지민은 100%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시각에서 이 책을 남긴 것이다.  이 책을 완독하는 것은 소름끼치는 경험이다.

피디수첩의 주장, 그리고, 그 주장에 대한 지지성 댓글과 격문은 많이 보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상황이 일러주듯 정지민 편에 줄을 선 사람은 정말 얼마 안 될 것이다. 네티즌이 읽어줄 만큼 필력을 가진 사람도 없고 말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지민의 글은 휘발성이 강하다. 폭발하고 장렬히 산화해버리는!

먼저 작가에 대해 궁금했다. 정지민은 영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후 귀국하여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서양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어쩌고저쩌고....

책을 읽어보니 나이가 30이 안 된 것 같다. 그리고 어린 시절 10여 년을 외국에서 보냈으니 이 여자가 정말 ‘한국적인 상황’을 100% 정확히 인식하고, ‘한글로’ 자신의 의견을 의도하는 대로 정확히 밝힐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런데 정지민은 놀랍게도 (책만 놓고 보자면) 정말 두 번 다시 만나보기 어려운 논객이다. 그녀의 언어실력은 감히 명함을 내놓기가 부끄러울 정도이다. 정지민이 보여주는 어떤 대상에 대한 논리적 접근, 그리고 학습 자세는 한국의 게으르고, 이벤트 중심의 인터넷 필진에게는 감히 오를 수 없는 나무같이 느껴진다. 그 점은 (난 아직도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CJD나 vCJD 등을 이야기할 때의  그녀의 전투적 말에서 확연하다.

정지민이 이화여대를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한국적 패거리 문화를 지양하고, 조롱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녀가 이화여대 대학원에 들어간 것은 뛰어난 영어실력(읽기/이해하기/쓰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내용이 있다. (피디수첩의 김보슬 피디이야기를 하며 젠더를 걸고넘어진 문장이다)

당시에 유일하게 영어 전 강의를 표방했던 특별전형 과에 가기 위해.... 여대에 처음 면접을 보러갔을 때에.... 공무원을 뽑을 때 여성 비율을 정해 놓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무조건 능력 순으로 뽑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더니 바로 오만상을 찌푸리는 여자 면접관도 있었다. 물론 내 답이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의 그 반응은 감정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대기자로 그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261쪽)

이 문장을 통해 정지민이 서구식 능력위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며, 모교에 대해서도 사심 없는 비판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문장에서만도 정지민 개인에 대한 호불호는 명확해질 것 같다. 정지민은 세계적인 석학에게 학문(아마도 유럽지성사일 듯)을 배우기 위해 출국할 계획인 모양이다. 학연, 지연, 게다가 정치적 신념 등으로 갈라선 한국에서는 시강 자리도 받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노벨상을 노릴 이학도도 아니니, 한국으로서는 지성의 1그램조차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정지민의 책이니 정지민의 주장을 들어본다.

이 책은 광우병 소동과 피디수첩을 비난하는 책이다. 그래서 당연히 피디수첩의 피디와 그 많은 그쪽 사람들, 그리고 인터넷의 수많은 추종자들이 보기엔 짜증스럽고 분노를 느끼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정치적 스펙트럼만 잠깐 접으면 엄청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지성, 국민을 앞세우며 진리수호자라고 자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겨눈다. 한번쯤은 생각해봐야할 논쟁거리로 가득하다. (만약 당신이 그에 해당한다면 몰래 문을 걸어 잠그고서라도 한번 정독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

 정지민은 MBC 피디수첩의 번역 작가로 관여했다. 수많은 외국 자료필름과 서적, 인터뷰 등을 번역하고, 핵심을 일러주고, 방향을 전해주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말단 알바 번역작가로 큰 의미가 없는 ‘88세대’일지도 모른다. 정지민 자신도 자신의 일을 크게 내세우진 않는다. 실제 방송국에선 자료조사, 리서치로서의 정지민의 역할을 내세울 일이 없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작가의 형편없는 실력과, 피디의 형편없는 제작방식을 비난한다. 우리는 ‘피디와 작가가 고생하고 열심히 일하고 공익을 위해 힘쓴다’고 생각하든지, ‘자기 멋에 자기 맘대로 대강 만든다’고 판단한다. 정지민은 후자 쪽을 택한 셈이다. 그리고 쏟아지는 인터넷의 반응에 대해서도 쿨하게 반응한다. 학문적 냉철함에 대한 오래된 습관인 듯. 물론 적을 마구 만드는 어법이다. 하지만 기자들까지 그런 데 낚일 필요는 없을 듯. 우리나라 기자들은 고전적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네티즌과 똑같은 열혈 마니아이거나 라이터를 들고 불붙일 곳만 찾는 방화범이다.

정지민은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자긍심으로 진중권을 씹고, 고재열 기자를 맹폭한다. 이 젊은 아가씨, 한국에서의 장래가 걱정된다. 그런데 감히 진중권과 고재열을 우습게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장래는 밝다. 물론 한국을 떠난 뒤 한국을 두 번 다시 안 볼 입장이 되어버리면 정말 아까운 일이지만. 좌충우돌, 동키호테식의 논객인 것이다.

 정지민의 <주: 나는 사실을 존중한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김상태라는 사람이 쓴 <도올 김용옥 비판>과 한국에 건너온 중국 유학생이 쓴 <왕샤오링의 한국리포트>이다. 읽으면서 뇌속의 세포들이 폭발하거나 부글부글 끓는 기이한 경험이다. 물론 그 속에서 묘한 희열을 만끽하게 된다. 궁금하다. 정말 궁금하다. 고재열 기자랑, 진중권은 이 책을 읽었을까? 정독하고 할 말이 있을까. 아님 집어던지고 비겁한 년이라고 욕설을 퍼부을까.

정지민은 공부나 하지, 왜 진흙탕에 뛰어들었을까. 불쌍하다. 미국 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스탠스의 차이일 뿐인데 말이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모든 것이 바뀌는 시간여행일 뿐인데.

정지민은 책에서 ‘사실’과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실력’과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그게 ‘한국적 능력’인 모양이다.

한번 읽어 보시라. (박재환 2010.6.4)

음.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예술적인 보도 사진이 꽤 많이 나왔네요.. 여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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