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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고통스런 ‘사랑’과 비극적 ‘추억’ 본문

한국영화리뷰

[백야행] 고통스런 ‘사랑’과 비극적 ‘추억’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9.11.11 13:57


  한석규, 손예진, 고수 주연의 영화 <백야행>이 곧 개봉된다. <백야행>은 일본의 인기 작가 히가시노 케이코(東野圭吾)의 동명의 소설 <백야행>(白夜行)이 원작이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는 한국에서 먼저 만들어졌다. 원작이 일본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이미 한국에서 큰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일본 대중문화의 규모가 어떠한지 알 수 있는 실례일 것이다. 한국의 신인감독이 왜 일본작품을 데뷔작으로 선택했는지, 한석규와 손예진, 고수라는 만만찮은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선뜻 출연하게 된 <백야행>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 드라마 그리고 영화

   히가시노 케이코는 추리, 서스펜스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많은 작품들이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다. 죽은 아내의 영혼이 딸에게 스며든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비밀>, 살인범 재소자 형과 동생의 이야기인 <편지>, 그리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이야기가 돋보이는 <용의자 X의 헌신> 등이 그의 소설 작품이다. <백야행>은 14년 전의 악몽이 어떻게 어린 영혼을 감싸서 저주에 빠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심리스릴러이다. 사건은 14년 전, 1991년 일본의 버블붕괴로 짓다만 한 건물에서 일어난다. 한 중년남자가 한 어린 소녀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고, 한 소년이 그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남자는 그의 아버지였고 소녀는 자신의 여자 친구였다. 소년은 얼떨결에 뾰족한 가위로 아버지를 찔러 죽인다. 그리고 그 살인의 용의자로 소녀의 어머니가 지목되지만 그 소녀의 어머니도 죽는다. 자살로 처리된다. 그 후 14년 동안 소년과 소녀는 그들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기실 소년과 소녀는 모두 불행과 비극, 비정상과 절망으로 가득 찬 집안에서 자라고 있었고 유일하게 도서관에서 ‘책’을 매개로 서로의 정신적 안식을 찾던 사이였다. 소년과 소녀는 그 후 어떻게 자랐을까. 둘 다 살인의 악몽에서 정상적인 삶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비밀을 아는 자와, 그 비밀을 이용하려는 자, 그 비밀을 추적하는 자가 생기면서 살인은 계속된다. 소년은 비밀을 위해, 소녀를 위해 기꺼이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들의 삶에는 태양이 없지만 소년은 소녀를 태양삼아 어두운 세상을 걷고 싶은 것이었다.

일드판 소년과 소녀 (TBS홈페이지에서)



어린 딸을 파는 엄마, 어린 아들의 여친을 사는 아빠

   <백야행>의 살인 동기는 세기말적이다. 끔찍한 가정폭력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가난과 술은 어린 딸을 중년의 노리갯감으로 만들고 그것이 원죄가 되어 소년은 끝없는 범죄의 길을 걸어야하는 것이었다. 그런 유년의 트라우마는 정상적인 성장을 불가능하게 한다. <사랑과 추억>에서의 아들처럼, <돌로렌스 크레이븐>의 딸처럼 말이다. <백야행>의 어린 소년과 소녀는 같은 과거를 가졌기에 서로 의지하며 미래를 헤쳐 나갈 것이다. 하지만 방식이 증오였고, 사적인 처벌이었고, 잔인한 제거였던 것이 문제이다.

   긴 소설을 짧은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감독은 적절하게 이야기를 압축하고 재구성한다. 소년과 소녀의 과거의 악몽도 무리 없이 그려지고, 14년의 시간도 적당히 추려낸다. 그리고 현재의 극한상황도 ‘또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완결성을 지닌다. 폐건물(실제로는 짓다만 건물)의 살인은 폐선박에서의 살인으로 바뀌는 설정부터 영화판 <백야행>은 몇 가지 다른 이야기가 곁들어진다. 14년 전 범죄를 끝까지 추적하는 형사(영화에서는 한석규)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다. 소설에서는 형사가 오래 전 잘못된 살인용의자를 체포하면서 그 딸을 자살로 몰았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한석규는 폐선박 살인현장에서 어이없게도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영화에서 형사가 왜 그리 살인사건에 집착하고, 사건해결을 위해 발버둥 치는지 동기부여가 된다. 그런데 원작에는 없는 ‘이민정’이라는 캐릭터는 꼭 필요한 인물은 아니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 외 몇 가지 인물과 사건이 적절히 재배합되면서 영화적 압축미를 제공한다. 특히 사건 날의 알리바이를 두고 “함께 TV를 봤어요. <동물의 왕국>이었어요. 원숭이는 새끼가 죽었어도 한동안 안고 다닌다는 내용이었어요.”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건 원작보다 훨씬 의미심장한 변용이다. 소설과 드라마의 완결성을 주장하는 팬들도 있겠지만 나름 괜찮은 영화 각색이다.


일드에서는 소년소녀가 신쵸사(新潮文庫)의 문고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본다.
한국영화판에서는 혜원출판사 판인 것 같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백조의 호수>

   일드 <백야행>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영화에서 한석규 형사는 소년과 소녀가 읽고 있던 책이 같은 <바람과..>라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장면으로만 처리되지만 그 소설은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소녀’ 카라사와 유키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을 동경한다. 남북전쟁 당시 타라의 저택이 그나마 남아있을 때 그 집에는 스칼렛과 방금 애를 낳은 멜라니 등 연약한 여인네 뿐이다. 북군 병사가 들이닥쳤을 때 그 위기의 순간에 스칼렛은 그 군인을 쏘아 죽이고 땅에 파묻는다. ‘소년’ 키리하라 료우지는 그런 스칼렛을 이해할 수 없다. 살인자였으면서도 행복해지겠다고 했으니. 이것은 일반적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을 경우 갖게 되는 반응과 비슷하다. 스칼렛은 이기적이며, 독단적이다. 전쟁에서, 배고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꺼이 렛 버틀러의 정부도 마다하지 않는 독기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절망의 시기에는 의지할게 전혀 없는 약골 애슐리에게 끝없는 연정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많은 <백조의 호수> 음악을 집어넣는다. 살인의 현장에서 발견된 결정적 테이프에도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녹음되어 있고, 손예진의 뜨거운 정사 신에서도, 고수의 살인 장면에서도 이 음악은 끝없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패션쇼 장면 에스컬레이터에서도 흘러나온다. 고수가 환상 속에서 보는 듯한 손예진과 어린 손예진이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빌리 엘리어트>에서 마지막 장면의 백조의 비상과 맞먹는 임팩트를 안겨준다.

 소설에서는 사회적 범죄에서의 가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드라마는 지고지순한 남자의 순정을 담은 멜로만은 아니다. 그럼 영화에서는? 영화는 그런 범죄물과 멜로물의 중간에서 멈춰 선다. 아마 감독은 한국적인 정서로 보아 범행의 동기를 보여주고 순수한 시절의 소년과 소녀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고통을 보여주며 그 남자의 순정을 돋보이려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정말이지 관객이 판단할 문제일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자면 정말 연기 고수들이 펼치는 절정의 연기를 맛볼 수 있다. 주연배우 말고도 조연들의 딱 맞는 연기가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한석규는 이미 몇몇 영화에서 인상적인 형사 역을 맡았었다. 이번 드라마에서 한석규의 이미지는 과거 미제사건의 담당형사가 가질만한 한과 사건 수사 중 자신의 실수로 아들을 잃은 부성(父性)을, 그리고 14년 전 사건의 실체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소년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모습을 절절히 연기한다. 박신우 감독은 한석규를 정말 ‘연기기계’라고 할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칭찬했다. 한석규는 기자간담회장에선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그제 TV에서 송창식이 나와서 노래 부르는 것을 보았다.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는 노래가사도, 곡도 너무 쉬운 거였다. 그런 쉬운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다니. 너무 놀라왔다. 연기는 그런 것 아닐까. 가장 쉬운 것을 정말 잘 표현하는 것, 쉬운 이야기를 얼마나 잘 쉽게 전달하느냐. 이 영화가 나의 17번째 작품이다. 최근 내가 나온 작품을 한번 쭉 봤는데 정말 못 볼 정도의 연기도 있더라. 그런데 갈수록 연기가 좋아지더라...”  한석규는 정말 <초록 물고기>이후 최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연륜이란 그런 모양이다. 손예진의 눈웃음은 의심 많은 재벌과 강력계 형사들과 질투심 많은 관객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족할 만하다. 14년 전의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았던 여자가 저주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한번 올가미를 멘 소년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는 방법과 생존방식을 터득한 것이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살인도 마다않는 ‘소년’. 하얀 눈이 내리던 날 눈앞에서 죽어가는 ‘소년’을 바라보며 ‘소녀’는 “저 사람 모르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는 자기 길을 걸어간다. 완벽한 스칼렛이다. 스칼렛은 살아남았고 살아갈 것이다. 스칼렛에게 타라의 저택이 있었듯이, 완전한 백조가 되어 비상했듯이....   (by 박재환 2009-11-11)






아, 갑자기 <빌리 엘리어트>가 보고 싶다... . <빌리 엘리어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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