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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승리] 왕가위와 담가명 본문

중국영화리뷰

[최후승리] 왕가위와 담가명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2.17 19:15

우리나라에는 1년에 몇 개 정도의 국제영화제가 열릴까. 단순히 부산국제영화제만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거의 매주 하나 이상의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국제영화제란 것이 어디 UN에서 공인해 주는 행사도 아니고, 문화관광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국제행사도 아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매니아 중심의 영화제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그들만의 팬들을 거느린 채 나름대로 생존해 가고 있는 것이다. 호러만 다룬다든지, 흑백영화만 다룬다든지, 아니면 요즘은 여성관객을 위한 핑크빛 영화만을 다룬 영화제도 열렸다. 프로그래머의 미학에 따라 영화제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열린 충무로국제영화제는 흥미로운 영화제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고 한국영상자료원장으로 있으며 한국영화 복원에 힘썼던 김홍준 교수는 이번에 영화제의 대중화와 복고화를 내세우고 충무로국제영화제를 기획했다. 상영작 가운데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로 말로만 전해져오던 클래식, 컬트 필름들을 대형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제는 ‘올드’ 영화팬에게는 일단 호평을 받은 셈이다.

이번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 중에 중국영화팬에게 점수를 딸만한 작품은 단연 ‘아시아영화의 재발견’ 섹션에 포함된 담가명(譚家明,탄지아밍) 감독 스페셜이다. 홍콩 영화사(史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고, 왕가위 영화를 말할 때 꼭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담가명 감독이다. 그의 대표작 7편이 이번에 몽땅 소개되었다. 이럴 수가!!!!

여느 홍콩 영화감독들처럼 담가명도 TV에서 영상미학을 배운 사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7년 홍콩의 대표적 방송사인 TVB에 입사하여 방송현장에서 연출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0년 정도 TVB에서 몸담으면서 아직도 홍콩인에게 회자되는 드라마를 다수 찍었다. 그의 극영화 데뷔작은 <명검>(80)이란 작품. 다른 홍콩감독과는 달리 그는 많은 작품을 찍지는 않았다. 오히려 1988년, 7번째 감독작품 [살수호접몽]을 마지막으로 홍콩영화판을 떠난다. 말레이시아에서 영화학교에 교편을 잡으며 영영 홍콩영화계를 떠난 줄 알았던 그는 작년 17년 만에 [아버지와 아들]이란 작품을 들고 귀환했다. 물론 그 사이 그는 다른 감독의 부탁으로 [아비정전] 등 몇 작품의 편집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후승리]는 담가명 감독의 1987년도 작품이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왕가위’가 각본을 쓴 작품이다. 왕가위는 [열혈남아]로 감독데뷔하기 전에 10여 편의 ‘홍콩’영화 각본을 썼었다. 개중에는 ‘왕가위’ 작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소작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최후승리]는 왕가위 감독의 [열혈남아]와 짝을 이루는 컬트 걸작 느와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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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승리]의 주인공은 서극과 증지위이다. 두 사람 모두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홍콩에서 이름을 날리던 영화감독이었다. 여자 주인공 이려진(李麗珍)과 이전랑(李殿朗)은 주연급 배우는 아니었다. 담가명 감독은 캐스팅부터 가치전복을 노렸다. 영화가 시작되면 서극이 증지위를 닦달하는 장면이다. 서극은 곧 감옥에 들어갈 상황.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동생 증지위가 못 미덥다. “내가 들어가면 누가 널 보살피겠니. 넌 네 힘으로 살아야한다. 네가 그렇게 비실대니 여자 친구까지 빼앗기지. 어느 놈이야? 내가 시범을 보여주마...” 이 첫 장면에서 극중 인물의 성격이 다 드러난다.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 ‘따거’(서극)와 겁쟁이 ‘아슝’(증지위). 따거는 감옥에 가기 전 이 못 믿을 동생에게 특별한 임무를 부여한다. 자기의 애인 아펑(이전랑)과 미미(이려진)를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형편없는 위인 아슝은 이제부터 살벌한 홍콩 뒷골목에서 두 형수님을 보호해야하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형수님은 술집 마담, 호스티스. 형수님 보호가 쉬운 임무는 아니다. 게다가 작은 형수 미미는 일본에 돈 벌려 출국한 상태. 겨우 찾아가니 ‘핍쇼’ 업소에서 근무하고 있잖은가. 홍콩조폭보다 더 살벌한 일본 야쿠자들로부터 형수님을 빼와야한다. 형님 없는 홍콩에서 아슝의 말이 먹힐 리가 없다. 형수는 자꾸 사고만 터뜨리고... 그런데 형님 말에 순종하는 순박한 아슝의 행동에 미미가 조금씩 마음을 빼앗기고, 이래선 안 되는데 이래선 안 되는데 하면서 아슝도 마음이 기울어간다. 이 소식을 감옥에서 전해들은 따거는 출옥하면 다 죽여 버리겠다고 벼른다.

이 영화는 당시 홍콩영화계를 휩쓸던 조폭영화(흑사회,느와르)에 대한 철저한 자기복제 패러디 성향이 짙다. 과장된 연기, 독특한 편집, 찬란한 주제가 등은 당시 홍콩 조폭영화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내면서도 아주 특이한 효과를 낸다. 잘난 형님의 보호막에서 자란 못난 동생의 자아성찰을 다룬 점에서는 왕가위의 [열혈남아]와 궤적을 같이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비틀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라면 아마도 아슝이 카레이스를 펼치며 미미를 구해내는 장면. 극도로 과장된 액션과 결정적인 순간의 증지위의 코믹한 진지함은 이 영화를 단순한 ‘핏빛 홍콩 느와르’가 아니라 ‘숭배받을 홍콩영화’로 승화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최후승리] 마지막 장면은 출소한 따거가 바닷가에서 ‘아슝’을 손보는 장면이다. 과연 따거는 준비해간 칼로 아슝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아슝은 살아남아 미미에게 달려갈 것인가. 최근 담가명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왕가위의 각본’에는 따거가 단칼에 아슝을 찔러 죽이는 것이었단다. 제작자 잠건훈(岑建勳)이 증지위의 전화를 받고서야 이 결말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곤 왕가위를 설득해서 ‘죽이지 않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더 왕가위의 [열혈남아]를 함께 봐야할 듯!)

극중에서 증지위가 카라오케(노래방)에서 부르는 ‘深愛着你’란 곡이다. 진백강(陳百强)의 립싱크이다.  (박재환 200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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