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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念

삐라를 허하라! 그리고 막아라!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2.10.23 09:03

현재 '삐라'가 남북한 대치의 한 빌미가 되고 있다.

(헐. 2008년에 쓴 글인데.. 2012년에 현상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네요...)

 

 

  

 

 

    삐라라니? 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1월) 20일 민간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홈페이지)과 납북자 가족모임(▶홈페이지)은  경기도 김포의 한  야산에서 북쪽으로 삐라 보내기 행사를 강행했다고 한다.

 

    이날 삐라 살포 현장은 국내외 언론에 공개되었다. '김정일 독재 타도'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쓰인 길이 12미터, 폭 1미터의 풍선 하단부에는 1만 장의 대북전단 뭉치가 매달려있다. 이 날 총 10개의 풍선(애드벨룬)이 하늘로 날아갔으니 모두 10만 장의 삐라가 바람을 타고 남에서 북으로 날아간 셈이다.

 

   남한의 시민단체가 북으로 삐라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한다. 지난 2003년부터 해마다 200만 장 이상의 전단을 대형풍선에 실어 북쪽 하늘로 보냈다고 한다.

 

   처음에는 종이 삐라였지만 지금은 특수재질로 만든다. 그리고 삐라 100장 가운데 한 장 꼴로 중국지폐나 미국 1달러를 붙여놓는다. 북한 주민들이 '돈'을 노리고 그 삐라를 더 많이 주워가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미국 돈 1달러면 북한 주민의 한달 생계유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삐라 내용은 (내가 보기엔)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고심한 흔적이 든다. (삐라 내용 생략)

 

   당연히 북한은 삐라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였고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남북관계의 경색을 우려 삐라살포 중단을 바라고 있다. 정부도 난감해하기는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문제는 민간인이 자기 신념에 따라 펼치는 '정치적 행동'을 어떻게 제어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많은 한국인들은 국내외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몰린 남북관계의 긴장감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이러한 ‘삐라살포행위’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막기 위해서는 ‘무슨 법’이든 적용시켜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 고압가스관리법’이란다. 대형 에드밸룬을 띄우기 위해 수소가스를 사용하는데 위험물질취급관리자가 아닌 사람이 이용하기 때문에 이걸 걸고 넘어지자는 것이다.

 

    이건 처음에 나도 그런 방법을 생각했다. 얼마 전에 보니 이 단체가 배를 타고 해상에 나가 풍선을 띄우기도 하더라.    털어서 먼지 안날 사람 없겠지. 잘 찾아보면 어떻게 걸고 넘어질 벌칙조항이 있을 것이다. 아마 사문화된 법조문까지 뒤지면 뭔가 '꼬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보니 이게 또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알겠다

 

   우리나라같이 '법 알기를 뭐 같이 아는' 나라에서 왠일로 ‘법’을 다 들먹일까.  그동안 독과독수이론에 대한 비난, 달을 보랬더니 손가락을 본다고 비난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저런 '사소한' 벌칙조항으론 애당초 문제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신념을 가진 '화학물 취급업자'가 법에 따라 수소를 주입하면 어쩔 것인가. 그리고 그 자격증이 대단히 어려운 것이 아닌 이상 화공학도가  자발적으로 나설 것이니 말이다.

 

   쓰레기처리위반, 일반 폐기물 관리법위반이란 걸 걸고 넘어지더라도... “난 벌금 내고라도 기어이 쓰레기 버리겠다”면 어쩔 수 없잖은가.

 

신념을 위해 감옥을 가는 것이 정말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자세이니 말이다.

 

  그래서 정부는 더욱 고심일 것이다.  그렇다고.. 특수 요원을(..이건 예를 들어 그렇다는 말임) 보내어 한밤에 '민간단체 주동자'를 쥐도새도 모르게 처치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문제는 남한과 북한의 상층부/고위급/정부차원에서 교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만한다면, 사실  하단부에서의 이러한 소동은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이다.

 

잠깐 중국과 대만의 경우를 살펴보겠다

 

중국과 대만의 위태로운 통일전선

 

    중국과 대만은 1949년 전쟁 뒤 갈라섰지만 언젠가는 재결합할 나라라고 서로들 생각한다. 우리처럼 말이다. 그런데 중국과 대만은 결코 통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 특유의 역사의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흩어진지 오래되면 뭉치게 되어있고, 뭉쳤다가도 오래되면 또 쪼개지고... 뭐 이런 역사의 반복!

 

   중국과 대만의 통일, 아니 정확히는 ‘교류협력’의 움직임은 ‘국가 대 국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면서도 국가단위의 협력은 아닌 기이한 형태이다. 중국 측에서는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兩岸關係協會, 줄여서 해협회)라는 것이 나서고 대만 측에서는 해협교류기금회(海峽交流基金會,해기회)라는 것이 나서서 협상을 한다.

 

   중국 해협회와 대만 해기회는 지난 20년 가까이 아슬아슬한 중국-대만 관계에서 아주 적절하게 그리고, 어느 면에서 보자면 너무나 ‘지혜롭게’ 자신들의 교류를 증진시키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의 대결이라거나 대륙수복 같은 심각한 문제는 일단 옆으로 제쳐두고 작금의 '상황악화'를 막고 최대한 공동의 이익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지난 8년 동안 민진단 진수변(천수이볜) 총통이 대만정권을 쥐고 있을 때는 ‘극한대결’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었다. 지난 4월 국민당의 마영구(馬英九,마잉쥐) 총통이 집권하면서 주춤했던 양안관계(중국-대만 관계를 이들은 바다해안을 사이에 둔 양쪽이라는 의미에서 양안관계라고 주로 표기한다)도 다시 봄날이 돌아온 것이다.

 

  지난 6월 북경에서 중국 해협회의 진운림(陳雲林)대표와 대만 해기회 강병곤(江丙坤) 대표가 만나 역사적인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이달 초 타이베이에서 2차 회담을 갖기로 했다. 그 사이 대만은 아주아주 시끄럽게 달아올랐다. 진수변 전 총통의 부정비리 관련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드러났다. 중국대표가 대만 땅에 발을 딛는 것과 관련해서 진수변 지지층은 제 3차 국공(공산당-국민당)합작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타이베이에서의 2차 회담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회담 열흘 정도를 앞두고 중국 해협회의 장명청(張銘淸) 부대표가 (아마도 분위기를 알아볼 겸) 미리 대만을 방문했다. 야당인 민진당 세력은 중국대표의 대만 입국을 적극 반대했다. 게다가 최근 일어나 중국 독분유 사건(멜라민)에 대한 대만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학술포럼 행사 참석을 명분으로 대만에 왔던 장명청 부대표가 대만의 타이난을 방문했을 때에는 그곳 시위 군중과 충돌하는 돌발사건이 벌어졌다. 장명청 부대표는 시위자에의해 땅바닥에 밀쳐넘어졌다. 중국대표가 대만민중에게 봉변을 당한 것이다.
 

 



이럴 경우 중국-대만관계는 다시 한번 경색될 뻔했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은 '폭행사건'에도 불구하고 교류를 계속 이어가야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11월 4일 중국 해협회 진운림 대표가 이끄는 중국대표단이 대만공항에 도착했다. 반대세력들은 공항에서 숙소까지 진운림을 쫓아다니면 반대시위를 펼쳤다. 이미 한차례 돌발사태가 있었기에 대만 당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역대 최대 경찰력을 동원하며 중국대표에 대한 철통같은 보호 작전을 펼쳤다.


대만독립지지자들은 공항에서부터 중국대표단을 따라 다니며 '대만국기'를 흔들며 시위를 펼쳤다
  



철통보안이 펼쳐진 호텔에 미리 들어가서 플래카드를 펼쳐보이기도..

내용은 이렇다

대만은 대만이다
공비 진운림(중국대표)은 꺼져라!

 

  대만 시위대는 주로 민진당 진수변 지지층이 많았지만 가장 열정적인 시위를 펼친 무리는 ‘티벳 자유’를 외치는 단체였다고 한다.

 

  대만에서는 이처럼 통일반대세력도 많지만 중국과 대만의 통일/교류를 위한 전체적인 흐름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만에서의 2차 회담에서 그들은 4가지 협정에 서명했다. 내용은 대만과 중국을 오가는 직항기 노선확대, 해운 직항문제, 우편개항, 그리고 멜라민사건 때문에 불거진 중국식품에 대한 안전관리제도 개선 등이다.

 

 사실, 중국과 대만에서는 그들의 교류를 방해할만한 돌발사태는 그들의 인구 수만큼 많다.

 

 지난 6월 중국의 단체관광객들이 전세비행기를 타고 대거 대만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가장 우려했던 사항은 대만‘민주’시민들이 중국관광객을 향해 정치 논쟁을 펼치는 것이다. 이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돈벌이를 중시하는 대만인이라면 알아서 해결할 문제일 것이니 말이다. 좀더 심각한 것은 ‘파룬궁(법륜공)’같은 중국에서는 금지된 단체의 대만 내 활동관련이다.

 

   파룬궁 신자들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을 따라다니며 그들 앞에서 ‘중국의 자유’를 외치고, ‘언론의 자유’를 외친다고 생각해 보라.

 

 더 나아가 티벳 유민들이 중국관광객을 상대로 ‘티벳독립’을 외친다고 해보라..

 

지금 당장 민진당 지지자들이 ‘대만독립’을 외치고 있잖은가.

 

  중국이 항의한다고해서 대만정부(경찰)가 이들을 저지하기란 여간 곤란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중국과 대만은 상호 교류단계에서 상상하기 힘든 많은 돌발 사태가 터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선에서, 그리고 대의명분에서 ‘옳다’고 여기지는 차원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듯하다.

 

다시,. 삐라 문제..

 

삐라 문제도 그러할 것 같다.

 

   서로가 서로의 체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상, 아니 적어도 한쪽에서 다른 한쪽의 특이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이상, 어떤 것이 가장 현명한 방안인지는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삐라는 저렴하게 효과적으로 상대의 민심이반, 심리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선전선동술이다. 전쟁 중에는 동과 서구분없이 대단위로 살포되었다. 우리나라 한국전쟁당시 수십 억장의 삐라가 뿌려졌다지 않은가. 그게 국가단위에서 민간단위로 옮겨졌을 뿐이다.

 

  문제는 그걸 국가나 정부가 인위적으로 제어할 방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천성산 터널 반대에서 한 비구니가 자기신념으로 단식을 펼칠 때 국가는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


  삐라 살포를 새로운 법률로 제지한다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현재 삐라를 보내는 사람은 사실 '한국민'이나 '한국정부'가 그렇게 잘 대접해준 사람들은 아니다. 북에서 악으로 깡으로 겨우 목숨걸고 넘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북한정권에 대해 그 얼마나 사무친 원한을 가졌는지는 짐작이 간다. 마치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 몰려가서 시위를 하는 그 심정일 것이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잠재적인  반김정일 세력은 엄연히 존재한다.   생각해보라.  삐라방지법을 만든다고 해서 만약 조갑제씨가,  황장엽이 삐라를 보낸다면.. 그 사람들을 잡아넣는다면 그  얼마나 나라 위신 꼴이 엉망이 되겠는가.

 
  북한주민이 어렵게 살고 그 원인이 북한의 집정세력의 잘못이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아닌가. 그리고 그 해법에 대한 서로의 의견차가 있다는 것도 알잖은가. 그러니 그 단체들의 행동에 대해 절대적으로 ‘제지’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해법일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남한 땅에서 하지 않으면 어디에선가 더 위험하거나, 더 첨단의 방식으로 진화할테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은...

 

    이 방법은 결국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민간단체가 ‘정의감’에 사로잡혀 풍선을 띄우도록 놔둬라.   한국정부는 그 이후를 책임지고 처리하면 된다.

 헬리콥터에 잠자리채를 달고 전단지를 수거하든지.. 아니면   첨단무기로 하늘에서 격추(폭파/소각) 시키거나, 첨단과학장비를 개발, 리모콘 프로펠러를 부착시켜 착륙장소를 공해상으로 이동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냉전시대 미국의 레이건이 이야기했던 우주방위전략, 일명 스타워즈 계획 (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우리 식으로, 우리 차원으로 축소시킨 것이다.

 

    이런 고육지책을 써야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우리 영토 안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민주화 노고를 인정해주고, 국경을 넘어갈 즈음에는 타국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이라고 우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민간단체들도 자기들의 할 일은 하는 것이고..

 우리 남한정부도 북한에 대해 “우리 국민은 워낙 자유로운 사람들이라 지 하고 싶은 거 막을 방도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철저하게, 막을 수 있는 한 다 막았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이 정도만 되면 남한과 북한 사이엔 훈풍이 불지도 모른다.

 

  그런 무기(?)개발 습득과정을 거쳐 미국을 능가하는 우주전쟁 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남한과 북한의 대치가 민간인 수준의 풍선날리기가 원인은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헤게모니 쟁탈전이며 이데올로기의 이니셔티브 쟁탈전인 것은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풍선이 문제가 되기 전에 남쪽과 북쪽은 좀더 진지하게, 좀더 우아하게, 좀더 근원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북한인민의 사고방식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있었던 일이다. 그때 북한에서는 150여 명의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보자면 이른바) '미녀응원단'이 대거 남쪽을 찾았었다. 경기 응원을 마친 이들이 탄 버스가 예천을 지나 대구로 들어갈 때 길가에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은 한반도기가 왼쪽에, 김대중전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때 만난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글자는 ‘북녘 동포 여러분 환영합니다. 다음에는 남녘과 북녘이 하나되어 만납시다’가 쓰여있었다.


 

 

   그 플래카드가 극우보수단체에 의해 훼손되었거나 철없는 네티즌돌격대가 김정일 사진에 ‘뷁’이라고 써넣은것도 아니다.  단지 그날 아침부터 비가 와서 현수막이 빗물에 젖어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본 북한 미녀원단이 버스에서 내려서는 울며불며 “어찌 이럴 수가 있냐..” “장군님 사진을 이렇게 대할 수가 있냐...”며 울며 탄식하고, 항의하고 그랬단다. 그리고는 김위원장사진이 앞으로 나오도록 고이접어 버스에 올라 탔다고 한다.

 

이른바 ‘현수막소동’의 전말이다.

 

   처음 개성에 우리 남한사람이 가 있을때 노동신문을 함부로 대했다가 큰일이 날뻔 했다. 하필이면 그 신문에 김일성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한때 신문을 화장지 대용(이른바 대변지)로 사용하던 남한 사람에게는 문화충격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어릴때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란다.

 

  그런 북한을 상대로 삐라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는 ‘북한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알수가 없다.

 

  그냥 생각나기에는 1달러 지폐가 결국 체제를 무너뜨리는 방도가 될련지 모르겠다.

"깁미 초코렛:하며 미군 쫓아다니던 우리의 반세기전모습이 생각나기도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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