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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헤드] 또 다른 ‘일본침몰’ 본문

일본영화리뷰

[드래곤헤드] 또 다른 ‘일본침몰’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11.24 16:42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재난관련 콘텐츠가 풍부하다. 지진이나 해일 같은 초특급 규모의 재난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만화, 영화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재난소설, 재난만화, 재난영화가 많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고마스 사쿄의 소설 [일본침몰]일 것이다. 이 소설은 오래 전에 출판되었었고 두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몇 해 전 우연히 보게 된 만화가 있다. 그 작품도 일본열도에서 벌어지는 초대형 재난을 다룬다. 지금 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모치즈키 미네타로(望月峯太郎)의 <드래곤 헤드>라는 만화이다. 일본망가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게 없는 나로서는 인터넷을 한참 뒤적인 끝에야 ‘모치즈키 미네타로’가 대단한 작가이며 ‘드래곤헤드’가 굉장한 작품인 것을 알게 되었다. <<드래곤 헤드>>는 지난 1994년부터 2000년 사이에 일본의 망가 매거진 <<영 매거진>>에 장기 연재된 작품이며 우리나라에선 ‘서울문화사’에서 10권짜리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었다.

    이 ‘경이적인 세기말 스토리’는 2004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걸 최근에 보게 되었다. 원작 만화랑 비교해서 어떨까. 만화이야기는 빼고 영화는 어떨까.



신간선 터널 붕괴. 지옥을 빠져나오니...

   <드래곤헤드>는 터널 붕괴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테루’는 신칸센을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 중 긴 터널을 통과하는 중 뭔가 번쩍하더니 순간 암흑으로 변한다. 터널이 붕괴한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차 안은 지옥 그 자체였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기차 앞부분은 돌덩어리에 깔려 있고 기차 안 객석은 온통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졌고 사람들은 처참한 꼴로 너부러져있다. 모두 죽은 것인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테루는 곧 살아있는 ‘노부오’와 ‘세토’를 발견한다. 노부오는 미쳐있었다. 평소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고, 이지메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던 노부오는 이제 모두가 죽어버린 이 생지옥 속에서 처절한 복수의 화신이 된다. 그는 선생의 시체에 매질하고, 친구들의 시신을 끌어 모아 제단을 차리고, 얼굴에는 떡칠하듯 화장을 하고는 ‘어둠의 제신’이 된다. 완전히 미쳐버린 노부오의 창끝을 피해 테루와 세토는 가까스로 천정 환풍 시설을 기어서 바깥세상에 나온다.

   그런데 맙소사..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대재앙의 흔적. 화산폭발이었는지, 핵폭발이었는지, 대지진이었는지 세상은 온통 새하얀 재를 뒤집어쓴 채 살아있는 생물체라고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목마름과 배고픔, 그리고 절망 속에서 테루와 세토는 걸어서, 기어서, 집이 있는 동경으로 향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고, 생존자는 없단 말인가.

공포와 생존

   재난을 다룬 작품은 과학적인 배경이 중시된다. 마그마가 어쩌니, 환태평양 지괴가 저쩌니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과학적인 소양이 뛰어난 모험가가 많다. 그래야 그 험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드래곤헤드>의 주인공은 그냥 볼품없는 ‘학생’이다. 수학과 과학에 능한 천재도 아니고, 평소 <로스트>나 KBS의 <위기탈출 넘버원>을 보았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더욱 공포스런 순간에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폐쇄상황에서 맞닥치는 ‘또라이’라니.

  기본적으로 <드래곤헤드>는 별안간 지구(혹은 일본인의 머리 위)에 떨어진 징벌적 재난재해를 맞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불쌍하고 죄 없는 인류족속을 무사히 구출해내고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영웅이야기는 아니다.

   테루가 ‘재앙’이후 다시 만나게 되는 인류는 ‘공포가 거세’된 신인류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감각하고 무표정하다. 그들은 ‘좀비’도 아니며 ‘사이보그’도 아니다. 그들은 아마도 머릿속에서 공포를 관장하는 뇌 부위에 의학적인 제거 조치를 당한 모양이다. 영화 중반에 이른바 ‘퓨마소년’이 등장한다. 콘헤드 스타일의 머리에는 수술자국이 선명하다. 그들은 공포를 주관하는 뇌세포, 아니 뇌의 한 부위에 대한 절제수술을 받은 모양이다. 이 꼬마는  피아노로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를 연주하지만 슬픔도, 기쁨도, 아무런 느낌도 느끼질 못한다. 영화 뒷부분에는 이런 ‘무감각’ ‘무공포’의 인류들이 한가득 모여 있는 지하 아지트를 보여준다. 이들은 특별히 제조된 ‘깡통식량’을 장기(?)취식함으로써 공포가 사라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 죽어가는 것이다.

  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재앙’ 뒤의 재앙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추악한 면을 강조한다. 비탄과 슬픔, 고통이 가득한 아수라 현장에서 강간과 절도, 폭행과 사적 복수가 만연한다. 이 영화에선 아마도 그러한 ‘생지옥’은 없다. 아마도 ‘공포의 절제’와 함께 ‘무질서의 근원’이 제거된 모양이다.

 ‘드래곤헤드’는 이들 이상한 상처 입은 머리(傷頭)를 일컫는 말인 모양이다.

    만화를 봐도 영화를 봐도 알 수 없는 것은 일본이 그렇게 된 것이 지진인지, 화산폭발인지, 지각변동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규모가 일본인지 전(全지)구적인지도 알 수 없다. 단지 인류의 근원적 두려움, 그 공포에 침잠(沈潛)한 작품이다.  (박재환 200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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