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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유효기간 1994년 5월 1일까지 본문

중국영화리뷰

[중경삼림] 유효기간 1994년 5월 1일까지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2.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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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9/6/9]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어제 다시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중경삼림에 대한 글을 쓴다. 들어가기 전에 옛날 이야기부터 하나 힐까한다. 난, 중학교 2학년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었다. 나를 영화라는 악마의 소굴로 빠뜨린 첫 작품은 바로 <벤허>였었다. 그 때 그 영화를 보고나서, 많은 헐리우드 키드가 그러했듯이 나 또한 이런 잡지, 저런 포스터 긁어 모으느라 한 시절을 낭비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순간부터(군 제대후, 복학하며..)

영화라는 것이 내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환상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창간호부터 사 모았던 어떤 영화잡지를 모두 내다버렸다. 그리고, 극장 출입또한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데이트 코스 혹은 킬링타임용 유흥장소로 위상변화 시키고 말았다. 그러던 중 <<키노>>란 잡지가 나와서 순간 흔들렸지만, 그래도 꿋꿋이 영화를 멀리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중경삼림>을 보게 되었다. 아마 95년도 쯤이었던 모양이다. 춘천의 한 극장이었다.(당시 춘천에는 개봉관이 세 개 뿐이었다. 그러니 왠만한 영화는 전부 1주일 상영이었다. 하지만 중경삼림은 상영내내 사람이 꽉꽉 찼었던것 같다) 그 현란한 카메라와 경쾌한 음악에 아, 저런 감독이 있었구나. 그는 바로 <아비정전>과 <열혈남아>로 한창 줏가를 올리며 추종자를 양산하던 왕가위였다. 그리곤 그때부터 다시 영화를 좋아했고, 다시 잡지를 사기 시작했다.

중경삼림은 참 재미있는 영화이다. 깔끔하고, 유쾌하고, 그리고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들어가는 깊은 맛이 있는 멋있는 영화이다.

우선 제목부터 볼까. 중경삼림이라... 영어제목은 <충킹 익스프레스>이다. 중경(重慶 충칭)은 중국 남서부의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도시이다. 강의 지류를 이용한 수상수송뿐만 아니라 각지로의 연결이 뛰어난 교통의 중심지이다. 일본군과 한창 전쟁 중이던 1938년부터 45년까지 장개석의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주제가 때문에 유명한 그 '캘리포니아'도 안 나올 뿐더러, '중경'은 근처에조차 가지 않는다. 단지 좁고 칙칙한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사람들로 가득찬 홍콩만이 그 배경이다. 그런데 우리의 영웅 왕가위는 제목에서부터 '중경'이라는 지명을 붙임으로서 적어도 공간적 허무감을 남겨준다. 엄밀히 따지자면 임청하가 마약거래를 위해 사돌아다니는 그 공간이 바로 '중경삼림'이라는 곳이다. 동남아 불법체류자들이 이리저리 오다가다 머무르는 그러한 곳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곧바로 두가풍의 현란한 카메라와 진훈기의 긴박한 음악을 들으며 홍콩의 밤거리를 휘젓고 들어가야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요 인물은 경찰 금성무, 마약밀매꾼 임청하, 또다른 경찰 양조위, 스튜어디스 주가령, 스넥 바에서 일하는 왕페이 다섯 명이다. 이들은 각자의 삶속에서 떠나간 과거의 연인을 잊지 못해 몸부림치고, 남아있는 자기의 한쪽을 채워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홍콩의 밤거리를 헤맨다. 관객은 어지럽게 짜여진 구조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과 그 만남의 어긋남을 통해 운명과 인생의 절묘한 부딪침과 깨어짐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어긋남의 미학은 보통 영화와는 달리 <중경삼림>을 두번 세번 보게 만들고, 볼때마다 지나쳤던 그러한 운명의 마주침을 문득 새롭게 발견하게되고는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쁨을 갖게 된다.

우선은 금성무가 범인을 계속 놓친다. 그는 6개월동안 단 한 명의 수배자도 잡지 못했었다고 한다. 관객은 그가 경찰인지도 룸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경찰이다. 사회의 악을 일소하는 임무보단 떠나간 많은 여자친구들을 전화로 불러내어 과거를 끼워 맞추러 애절한 몸부림을 치는 장면 만을 보여준다. 그의 옆을 지나가는 여자가 있고, 57시간 뒤에 사랑에 빠질 운명이 있다. 바로 임청하이다. 그녀는 검은 선글라스와 금발의 가발로 분장한체 관객에게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녀는 동남아 불법체류자들을 끌어모아 마약밀매를 준비한다. 하지만 공항에서 그 동남아인들이 뿔뿔이 다 도망쳐 버리고, 그녀의 임무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녀는 지금 누군가를 쫓아 그 미로같은 곳을 헤매고 있다. 그러다가 방금 실연한 금성무를 만나게 된다. 금성무는 떠나간 애인을 기다리며 유통기간 직전의 캔을 무의미하게 먹어치우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팽팽한 긴장감은 외롭고 고독한 공간에 의해 더욱더 개인화된다. 그날 밤 침대에 엎어져 자는 임청하를 바라보며 금성무는 남은 캔을 다 먹어치운다. 금성무는 임청하의 하얀 하이힐을 벗기고는 그것을 닦아놓는다. 그리곤 그곳을 떠난다. 1994년 5월 1일 새아침. 금성무는 자신의 생일날 조깅으로 새로운 운명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날밤 같은 공간에 있었던 702호의 그 임청하로부터 생일 축하한다는 삐삐메시지를 받는다.

금성무가 범인을 쫓을때, 계단 위에는 양조위가 있다. 그리고, 임청하가 아기를 유괴할 때 인형가게에서는 고양이 인형(가필드^^)을 사들고 왕페이가 나온다. 그들은 각자의 운명과 각자의 역할에 쫓겨서 서로의 관련을 모른 채 지나치는 것이다.

<아비정전>에서의 유덕화같이 같은 시간, 같은 코스로만 움직이는 양조위 경관에게는 스튜어디스 애인 주가령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타고 떠나가 버린다. 이제 양조위는 언젠가 다시 그녀가 자기의 빈 공간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산다. 그러던 어느날, 매일 가는 스넥바에서 왕페이를 보게 도니다. 그때 그들 뒤로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흘려나온다. 그리고, 이제 왕페이는 양조위의 집에서 백일몽을 꿀 것이고, 양조위는 점점 야위어가는 비누와 눈물만 흘리는 수건과 고독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왕가위의 1994년 5월 1일에 얽힌 전설은 많은 분석과 해석을 나았다. 그리고 가장 많은 지지를 (아니 그러리라 동의를) 받은 것은 홍콩의 운명과 관련한 것이었다. 홍콩은 1997년 7월 1일로 중국의 품으로 영화롭게 귀환하게 되어있었다. 1840년 전후하여 아귀같은 서구제국에게 빼앗겼던 홍콩이 이제 다시 모국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왕가위가 보는 1997년 6월 30일-7월 1일이란 마치 유통기한 마지막날의 깡통같은 것이었다. 금성무는 편의점 점원에게 유통기한은 무슨 유통기한이라며 그 절망적 설정에 분노한다. 왕가위의 1997년 7월 1일은 <해피투게더>에서 장진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왕가위의 다다음 작품으로 거론되는 <2046>이란 영화로 흘려나오는 것은 홍콩 반환 50년 후 홍콩의 변화상을 다루는 것이란다. 과연 어떻게 변형되어 완성되어질지 기대가 된다.

이 영화는 상당히 감각적인 영화이다. 단지 촬영의 현란함과 편집의 널뛰기가 문제가 아니라, 종합적인 인식의 문제이다. 홍콩의 스타들이 펼치는 운명의 장난이나, 유치한 말장난까지 한데 어울려져서 전혀 다른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실연한 사람과 가슴아픈 사연들의 낙오인생의 해피투게더가 아니라, 여전히 고독하고, 영원히 외로울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다. 금성무는 여전히 전화기에 매달릴 것이고, 임청하는 선글라스를 설 터이고, 양조위와 왕페이는 캘리포니아의 햇빛을 꿈 꿀 것이다. 


重慶森林 (1994) Chungking Express
감독: 왕가위
출연: 임청하, 양조위, 금성무, 왕비, 주가령
한국개봉: 1995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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