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www.kinocine.com 박재환 영화이야기 (페이지 리뉴얼 중)

[클락웍 오렌지]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본문

유럽+3세계영화리뷰

[클락웍 오렌지]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4.05 21:16

확대
[Reviewed by 박재환 1999-3-14]   지난 (1999년 3월) 7일 스탠리 큐브릭의 사망소식을 전해 듣고 조금은 우울했다. 나이가 되면 다들 죽기 마련이지만, 큐브릭 감독의 부음소식은 이전에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나서 듣게된 몇몇 감독들의 부음소식에 있어 서 "윌리엄 와일러" 이후 처음으로 슬픈 생각이 들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작년 죽었을때도 "음, 죽었군."했을 뿐인데 말이다. 내가 큐브릭감독을 좋아하게 된 것도 작년부터였다.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의외로 많이 비디오로 출시되었었다. 그리고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은 몇 작품들을 비디오로 구해보고나서는 더욱더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별로 찾지 않는 비주류 영화감독으로 치부되었지만, 죽고나서야 그의 작품이 다시 논해진다니 조금 씁쓸하긴 하다. 어쨌든 그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거장이며, 위대한 예술혼의 인물이다.

그가 "사진"에 관심을 갖고 이후, 영화계에 뛰어들고 내놓은 작품은 모두 13편이다. (장편극영화중심) 이들 작품은 모두 하나같이 어떤 의미에서든 모두 굉장한 반향을 불려 일으키는 작품들이었다. <스파르타쿠스>이후, 그는 미국의 영화제작 시스템(제작자의 입김에 의해, 출연 스타들의 유명세에 의해 감독의 의지와는 달리 각본이 뜯어고쳐지고, 연출이 제한을 받는 그러한 의미에서의 제작시스템)에 적이 실망하고는 영국으로 가버린다. 그래서 죽을때까지 영국에 머무르며 영국에서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 영화는 그의 아홉 번째 작품이며, 영국으로 건너가서 찍은 네 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의 장르는 imdb에는 sf로 나와 있다. 그렇다고, 비행접시나, 광선검, 외계인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영국 중산층 출신의 한 문제아, 불량청소년이 같은 또래와 함께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못된 짓을 하다가, 결국은 살인을 하게 되고, 교도소에 갔다가, 정부가 고안한 특수 교정장치를 이용한 치료를 받게되고, 갱생, 다시 사회에 나오지만, 그 치료의 영향으로 본래의 인간성은 상실되고, 고통받다가, 이전에 자기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들을 만나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고, 다시 병원으로 옮겨져서는 정부측의 이중적인 융숭한 접대-프로파간다의 대상물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 인간의 공격적 성향을 치료한다는 발상은 나중에 많은 영화에서 이용되어진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한 인간성 조작을 다루면서도 만만치 않은 현대사회의 병폐를 조목조목 보여준다.

시간적 배경은 원작소설대로 가까운 미래이며, 공간적 배경은 런던이다. 하지만, 빅벤이나 스모그의 런던 시내는 볼 수 없다. 알렉스는 나머지 패거리 딤, 죠지, 피터와 함께 어울려 다니며 거리의 부랑아-힘없는 노인네-를 집단폭행 한다거나, 패싸움을 벌이고, 강간, 절도, 강도 등의 짓거리를 한다. 이 영화가 영국에서 여태껏 상영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영화 공개후 너무 폭력적이라는 비난이 일자, 큐브릭 감독 스스로 영국내에서의 상영을 취소한다. 그는 그가 죽은 이후에야 이 필름이 영국에서 공개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미국에서는 1971년도에 개봉되어 그해에만 미국에서 1천 500만 달러라는 놀라운 흥행성적을 올렸었다) 그리고 큐브릭 사후, 영국 BBC방송에서는 이 영화의 영국내 상영을 이제 고려할때가 되었다는 단신을 보도했다. 얼마나 폭력적인가? 물론 오늘날 타란티노노 다케시 감독 작품을 본다면 그렇게 생각 안할 관객이 더 많겠지만, 감독은 보여주는 폭력보단, 그 폭력의 미학과, 폭력의 연관관계를 더욱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알렉스가 언제나 손에 들고 다니는 지팡이로 누군가를 내려치고, 칼로 동료를 그을때, 그리고 외딴 집에서 한 여인네를 죽이고 말때, 그 과정은 한편의 다큐멘타리같이 취급된다. 그러한 경향은 폐허가 된 극장에서 윤간당할 입장에 놓인 소녀와 곧이어 펼쳐질 집단 난투극에서도 잘 묘사된다. 관객은 십대의 치기어린 폭력을 혐오하면서 그러한 끔찍한 폭력을 밥먹듯이 하는 그들로부터 무언가 중요한 사회적 의무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의 제반 억압과 부조리를 조금이나마 눈치챌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도위원 뿐만 아니라, 경찰도, 목사님도, 정부의 높은 분들까지 이러한 폭력의 제어에만 관심이 있지, 폭력의 순화나, 원인제거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이다. 십대가 펼치는 이러한 개별적 폭력뿐만 아니라 감독이 담아낸 것은 체제와 권력으로부터의 폭력이다. 이 미묘하고도 설명하기 힘든 상관 관계를 그는 알렉스라는 한 어린-그러나 위험스런-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14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가지만, 그는 곧 "루드비코 요법"이란 세뇌교육을 받게 된다. 실제 그가 치료받는 과정은 이러하다. <양들의 침묵>의 한 장면처럼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채, 그의 눈에는 철사같은 장치가 고정된다. 그는 이제 싫어나 좋으나,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상을 지켜봐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분을 결코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으며 말이다. 2주동안 그가 지켜본 영상이란 것은 세계대전 중의 한 장면같은 기록필름이다. 폭격기가 다량의 폭탄을 지상으로 쏟아붓고, 사람들이 가득찬 광장에서 히틀러가 사열을 하며, 한 여자가 집단으로 윤간당하는 그러한 기록필름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웅얼거림과 베토벤의 음악들이 배경으로 쓰인다. (이것은 오늘날 진짜 SF답게 만든다면, 그의 뇌조직 속에 어떠한 전자장치를 끼워 넣음으로써 특정 영상과 특정 음파가 캐취될 때 온몸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비틀리게 된다는 식이다) 알렉스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도 좋아하던 베에토벤의 9번 "합창"의 4악장을 들을 수 없다. 이전엔 그 음악을 들으면 흥분하였지만, 이젠 그 악장을 들으면 죽을 것같은 고통이 온 몸을 엄습하는 것이다. 관객은 이러한 루드비코 요법의 결과, 황폐해진 알렉스를 보게된다. 무대 위에 내던져진 알렉스. 정부 고위 관리와 치료진들이 각 상황에 내던져지는 알렉스의 반응을 살펴보게 된다. 처음엔 한 남자가 이유없이 알렉스에게 시비를 걸며, 때리며, 구두 밑바닥을 핥으라고 강요한다. 알렉스는 반항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온몸에 두려움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다음엔 팬티 하나만 걸친 육감적인 여자가 그의 앞에서 육탄공세를 펼친다. 알렉스는 처음엔 당장이라도 그 여자를 바닥에 눕히고 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뻗치던 손을 거두어들인다. 어디선가 형사가 달려들어 자신을 짖이겨 놓을 것같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제 영국 런던에서 더이상의 악당은 없을 것이며, 감옥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치가가 그런다. 알렉스는 치료결과 이제 선택의 의지를 박탈당한 것이다. 육체의 고통이 두려워 해괴한 자기비하의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나쁜 짓을 못할 뿐더러 도덕적인 판단을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가의 입장에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런던은 이제 깨끗하고 살만한 동네가 될 것이며, 다음 선거에서 또 집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갱생된 것이다. 세뇌당한 것이다.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물론 그 뒷이야기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마치 <걸리버여행기>처럼 복잡한 영국내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리고자한 것은 폭력의 위험과 그 위험스런 폭력의 제어에 따른 또다른 폭력에 대한 우려인 것이다. 영화 설명에 따르자면, 알렉스가 갇혀서 베에토벤의 9번교향곡을 강제로 듣게 된다.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한다. 그 덕분에 그에게 장치된 것이 꺼져 - 혹은 사라져 버린다. 온몸에 기브스를 한 그는 또다른 이유로 정치적 이용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관없다.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고, 높은 사람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는 레이프 쇼(rape show)의 환상에 빠져든다. 그리고 영화는 끝나는 것이다.

알렉스가 레코드 가게에서 두 여자를 꼬실때, 그의 앞에는 <2001 우주의 오디세이 >레코드 판이 보인다. 알렉스가 강간하며 흥얼거리는 노래는 진 켈리의 <사랑은 비를 타고>의 "Singin' In The Rain"이다. 특별히 그것을 부른 이유는 촬영 중에 감독이 "야, 너 아무거나 하나 불려라 "했을때 말콤 맥도웰이 전체 가사를 다 알고 있는 것이 그 곡 뿐이었다고 한다. 물론, 촬영 후 감독은 저작권 계약을 맺었고 말이다. 명곡의 삽입 치고는 좀 웃긴다. 그리고 제목에 관해서이다. 이전에 이 영화는 <시계태엽의 오렌지>,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 등으로 번역소개 되었었다. 하지만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번역이었다. 영화에서, 알렉스와 그의 똘마니들이 런던교외의 한 작가집에 쳐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들어갈때 그런다. (딩동...) "여보세요. 전화좀 씁시다. 친구가 교통사고로 피를 많이 흘렸어요. 문좀 열어주세요.." 그러곤 들어가선 남자를 두들겨패고, 아내를 윤간하는 것이다. 그 작가(극중 이름은 Frank Alexander)가 집필하고 있던 것이 "A Clockwork Orange"였다. 영화의 원작소설은 Anthony Burgess의 1962년 동명의 블랙 코미디란다. Orange는 말레이지아 말인 Ourang에서 따왔다. 발음의 묘미 혹은, 동음이의의 익살(영어로는 pun이라함)인 셈이다. 갑자기 왜 말레이말을 사용하였는지는 알수 없다. 작가가 몇 년동안 말레이지아에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작가 Burgess에게는 좋지 않은 개인사가 있었다고 한다. 2차대전 당시 네 명의 미군 GI들로부터 아내가 윤간당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건의 충격으로 아내는 유산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그 작가의 아내가 고통 끝에 죽는 걸로 나오고, 작가는 휠체어 신세가 된다.

참,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갱생하여 세상에 내던져지지만, 세상은 그렇게 살기 좋은곳이 아니다. 그는 부랑자들에게 구타당하고 곧 경찰에게 구조되는데 맙소사, 그 경찰은 이전에 그의 똘마니들이 아닌가. 그들은 알렉스를 산골짜기 으슥한 곳으로 끌고가서는 또 죽도로 두들겨팬다. 이때 이 경찰의 견장은 665번과 667번이다. 그 사이에 낀 알렉스는 당연히 몇 번이 되나?  (박재환 1999/3/14)

A Clockwork Orange (1971) 시계태엽 오렌지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말콤 맥도웰
미국개봉: 1972/2/2
영국개봉: 1972/1/13  2000/3/17(re-release)
위키피디아  Stanley Kubrick  Anthony Burgess(novelimdb  네이버영화
신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