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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사의 개] 개도 없다, 인식도 없다 본문

유럽+3세계영화리뷰

[안달루사의 개] 개도 없다, 인식도 없다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8.04.0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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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1998-9-8]  아주아주 오래 전에 쓴 리뷰입니다. 어제(2003/7/19) EBS-TV에서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자유의 환영>을 방송했는데 생각나서 다시 올립니다. 다음에 언젠가 다시 봐야겠군요...

  쩝. 이 영화를 몇 번씩이나 돌려 보았다. 17분짜리 짧은 필름이지만, 왜 그리 어려운지.. 어렵다? 아니다. 사실 어려운 것은 전혀 아니다. 원래 내용도 없고,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니, 목적이 있다면 스페인 출신의 두 천재작가 - 감독 Luis Bunuel과 화가 Salvador Dali가 기존 영화의 틀을 깨는 괴상망측한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데 성공한 셈이다. 이 영화는 이 괴짜들의 뜻대로 1928년 파리 개봉당시 돌팔매 맞은것 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알수 없는 영화의 전형으로 손꼽혀왔다. .
 
봐도 봐도 모르긴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슈아레알리즘"이란 것이다. 그것도 지금부터 70년이나 오래된 1928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황당하다.

이 영화를 엄격하게 분석하자면, "정말 뜻이 없다". 일부러 의미없는 장면만을 엮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내면에 흐르는 심층심리를 프로이드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만약 그러한 시도를 한다면, 브뉴엘과 달리가 의도한, 젠 체 하는, 잘난 척 하는, 현대 문화습득자들의 또다른 자기만족의 현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시대가 이리로 많이 흘렸으니, 과연 왜 이딴 쓸데없는 영화를 만들어 박재환의 영화홈페이지를 더한층 지저분하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유가 있기에 이렇게 찾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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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황당한 "줄거리 이어나가기"이다. 한 남자 (Pierre Batcheff)가 손에 면도칼을 쥐고 있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한 여자-그의 아내라고 설명 되어지는 - (Simone Marieuil)가 그의 뒷편 의자에 앉아있다. 이 남자 뒤로 돌아서서는 그의 아내에게 걸어간다. 그 면도칼로 아내의 한쪽 눈을 가른다. (인터넷에서 겨우 관련 동화상 -gif방식이지만-구했다) 눈물인지, 뭔지 여하튼 그런 것이 나오면서, 영화는 다음 장면으로 바뀐다. 사람의 손목 아래 부위가 달랑 잘린채 거리에 버려져있다. 그걸 이층에서 한 남자와 여자가 지켜본다. 한 여자(남자?)가 그 손을 상자에 담는다. 그리곤, 찻길 한 복판에 멍청히 서 있고, 지나가던 차에 이 사람은 깔려죽는다! 2층에서 지켜보던 남자는 순간 당황한다. 그리고, 이 남자가 갑자기 여자에게 달려든다. 한쪽 벽에 밀쳐 세워 놓고는 젖가슴을 더듬거리기 시작한다. 순간, 여자는 옷을 입은 상태와 벗은 상태로 (남자의 환상이겠지만) 나타난다. 여자가 남자의 뺨을 때리자, 이 남자는 피아노 두 대를 줄에 매어, 거실로 끌고 들어온다. 피아노위에는 썩어 문드러진 당나귀가 얹혀있고, 뒤에는 살아있는 목회자-신부님이 줄에 매달려 질질 끌려오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또 다시, 한 남자가 등장하여,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의 옷가지를 발코니 밖으로 내던진다. 그리고는 갑자기 <16년 전>이란 자막이 뜨고, 책을 들고 있던 남자. 어느새 책은 총으로 바뀌고, 총을 쏜다. 남자가 쓰러진다. 그런데 또 어느새 배경은 들판이다. 들판에서 쓰러지는 이 남자. 벌거벗은 여자의 등에 기대려하지만, 여자는 환상속으로 사라진다. 죽은 남자를 사람들이 실어간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는 파도에 밀려온 상자와 옷가지를 발견하고는 좋아한다. 그리곤, <봄>이란 자막과 함께, 모래 속에 반쯤이나 파묻힌 채 (죽은 듯한) 이들을 보여주며, 정말 허망하게 <FIN>이란 자막이 떠오른다.

17분간. 떨리는 화면을 바라보며 (비디오복사가 그래서가 아니라, 워낙 오래된 영화라서 그렇다. 음. 우리 나운규의 <아리랑>도 남아있다면, 저런 상태이겠지...) 줄거리를 따라 가 볼려고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나같은 멍청한 영화감상자가 안 생기도록, 충고하나 하자면, "슈아르레알리즘"이란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도 된다는 아주, 폭넓은 감상의 폭을 제공해준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사실, 프로이드의 책을 읽는 것처럼 어렵다. 곰곰히 몇 줄을 읽어가고, 겨우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 방금 읽은 앞 페이지 문장의 뜻을 잊어버리게 된다. 우와..이럴 수가... 이렇게 어려운 영화가 그때 나왔단 말인가. <동사서독>은 무척 쉬운 영화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뜻하는 것을 찾아내고야 말리라. 여자가 문을 열었을때 갑자기 바다가 된다든지 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는 실제로 사실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엇비슷한 등장인물과 관객에게는 그 어떠한 동화작용도 없다. (있다면, 나도 저러한 알수 없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프로이드적 관객이거나. 로스트하이웨이의 데이비드 린치 뿐이리다. 데이비드 린치는 많다. 나도 그런 꿈을 꾼 것 같으니까..^^)  (박재환 1998/9/8)

Un chien andalou (1929) 안달루시아의 개
감독: 루이스 브뉘엘 (Luis Bunuel)  상영시간: 16분
출연: Pierre Batcheff, Simone Mareuil, Luis Bunuel,Salvador D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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